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식 Apr 26. 2018

어떤 특별한 취재원

요즘 보수언론의 형님 격인 조선일보가 언론탄압이라며 피켓까지 든 모습을 보니 새삼 지난 일이 떠오른다.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더불어 여론조작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바, 과거 그들이 저지른 ‘왜곡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010년 10월 6일 자 동아일보엔 <노조 가입하면 정규직 우선 시켜줄께>라는 기사가 실렸다. 요지인 즉 금속노조가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을 꾀어 돈을 받아냈다는 것인데, 노조에 가입하면 ‘우선’ 정규직이 될 수 있고,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근거 없이 선전하여 조직 가입을 유도하고 가입비와 조합비를 받아 낸다는 기사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비판이 쏟아진다는 보도였다. 당시 동아일보는 그 근거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말이라며 인용문을 넣었는데 그 어투가 섬뜩하다. “금속노조가 비정규직의 생계를 놓고 장난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동아일보의 취재원 B, 그의 근무처는 금속노조 자유게시판이었고 그의 이름은 ‘거짓말쟁이(ID)’였다.      

언론의 낯은 참 두껍다. 자유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익명의 악플러들에 대한 동아일보의 평소 생각은 이랬다.  

    

“심리학자들은 악플을 다는 ‘악플러’는 일상생활에 자신감이 없고 심리적인 열등감으로 위축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일종의 정신질환이라는 얘기다. … 학교와 가정에서 인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다 일부 사회 불만세력에 의해 의식화된 탓이다.”(2008/9/12일 사설) “포털들은 인격 살인 수준의 악플이나 근거 없는 악성 루머들을 방치하며 클릭 수를 늘리는 ‘댓글 장사’로 돈벌이를 했다.”(2008/12/25일 사설)     


악플에 대한 당시 동아일보의 감정은 거의 격분 수준이다. 최진실 자살사건 때도 동아일보는 1면에 “악플이 진실을 죽였다”라고 썼다. 그러던 동아일보가 금속노조를 겨냥한 기사에선 거꾸로 악플이 진실을 말해주는 취재원으로 둔갑했다. 그렇다 비단 동아일보만의 문제는 아니다. 천안함 애도정국과 우연히 투쟁 일정이 맞물려버린 민주노총에 헤럴드경제는 “비난의 글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홈페이지에 쏟아지고 있다”라고 보도하며 몇몇 글을 소개했다. 그러나 당시 민주노총 홈페이지를 보면 기사에서 언급한 것과 관련된 댓글은 고작 5개였다. 인터넷 댓글 문화에 비춰볼 때 20여 건의 댓글 중 5개 의견을 놓고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명백한 과장이었다. 게다가 그 5개의 댓글 중에는 난독증이 아니라면 ‘비난’으로 읽힐 수 없는 ‘정중한 의견’도 포함돼있어, 기사가 자의적으로 여론을 해석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필자로부터 항의를 받은 헤럴드경제의 기자는 “민주노총 게시판엔 비난글이 별로 없지만, 금속노조에는 많다”라고 변명했다. 금속노조 게시판을 확인해봤다. 당연히 사실과 달랐다. 결국 헤럴드경제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에 따라 “민주노총 자유게시판에 일부 비난 의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런 의견이 다수는 아니었다.”는 민주노총의 반론을 자기 신문에 실어야 했다. 한편 동아일보 기사를 쓴 기자는 필자의 항의를 받는 과정에서 진실을 실토하기도 했는데, 현대차 사측으로부터 제보를 받고 쓴 기사라는 것이다. 즉 현대차 사측이 악플을 조직적으로 쓰고 또 이를 언론에 제보해 보도를 만들어낸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을 헐뜯는 자유게시판 인용 기사들이 어떻게 쓰여 왔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첨예한 이해관계나 정치적 대립관계에 놓인 약자들의 단체는 대개 악플의 경험을 갖고 있다. 민주노총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악플을 이유로 댄 사이버모욕죄 신설에 반대해 왔다. 악플의 대표적 희생자인 탤런트 홍석천은 2008년 10월 당시 한나라당이 사이버모욕죄 신설을 추진하자 “지금까지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다가 이 시점(2008년 촛불항쟁 직후)에 하필 이러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터넷 자유게시판의 글은 그대로 기사에 인용할 만큼 신뢰성을 갖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법으로 재갈을 물릴 대상도 아니다.  

    

인터넷은 현대인의 중요한 생활공간이며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이다. 물론 의도적이고 반인권적인 악플은 해롭다. 그러나 악플의 개선은 인터넷 문화를 통제하고 처벌하기 이전에 교육과 홍보 등 사회 전반의 인권수준을 높이는 문제가 본질이다. 한편으론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란 우스갯말도 있지 않은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관심을 받아 마땅하고 관심이 있어야 응원이든 비판이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관심 없이 사회적 관계는 형성되지 않고 관계가 멀어진 사회는 강자들의 손에 휘둘리며 퇴행하기 손쉽다.

작가의 이전글 4월 23일은 책의 날,  사서선생님은 바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