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실에는 정규직인 영양교사도 있지만 비정규직 영양사도 있다. 영양사들은 영양교사와 같은 일을 하며 마찬가지로 흰까운을 상징처럼 입고 일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영양사는 학교에서 일하지만 정작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 밖에 존재”한다고 ...
이 글은바로 우리 영양사들의 이야기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평등과 존중의 철학을 가르치지만 노동자 앞에선 그 철학이 사라진다. 모르는 사람들은 학교를 모범적인 공간으로 여긴다. 그러나 학교 밖의 기대나 시선과 달리 학교 안의 현실은 너무 다르다. 학교는 교육과 현실이 대립하는 모순의 공간이다.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 좋은 제도만 만들면 그만이 아니다. 그 제도를 운영하는 노동자를 고려하지 않는 현실도 바꿔야 한다. 맛있게 밥 먹는 아이들을 보면 사명감이 생기지만, 영양사에 대한 처우는 그 사명감을 흔든다. 가장 좋은 재료로 가장 싼 값에 먹여야 한다고 학교와 학부모들은 요구한다. 모순적이며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해왔다. 식재료 한 개에 적어도 아홉 개의 서류가 필요하다. 그 외에도 책상 위에는 많은 양의 서류가 영양사를 쥐어짠다. 노동강도와 책임은 큰데 임금은 소망만큼 오르지 않고 같은 일을 하는 영양교사의 80%에 근접조차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터에서 영양사는 외롭다. 중간관리자들이 그렇듯 양쪽에서 눌리고 치인다. 학교장 등의 압박이 가장 힘들지만 때론 무리지어 항의하는 조리사분들도 무섭다. 조리사와 영양사는 애증의 관계다. “당신은 반드시 필요한 동료지만 때론 밉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같은 노조의 조합원들이도 하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바로 우리 노조를 통해 알았다. 노동을 존중할 때 세상 모든 것이 더불어 존중받는다.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존중받을 때 아이들도 더 사랑받고 행복하다.
나도 영양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 고맙고 자부심도 생긴다. 그러나 솔직히 이 직업을 권할 마음이 쉽게 생기진 않는다. 누구는 시험만 통과하면 자격이 생기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레시피도 못 만드는 사회초년생 영양교사가 있다. 즉 시험이 곧 자격은 아니다. 영양교사든 영양사든 영양실무 능력 외에 상담능력, 공감능력, 교육적 사명감이 필요하다.
조리사분들을 포함해 우리들은 맛있고 깨끗한 급식을 만들고자 애쓴다. 등교하는 내 아이에게 학교급식이 좋으니 많이 먹으라고 말한다. 정말 걱정 마시라. 그런데 때론 음식은 교장과 학부모의 무기가 된다. 다른 일로 맘에 안 들면 평소 잘 먹던 음식이 맛없다며 트집을 잡는다.
억울하기도 하고 서글프다. 이따금 “엄마, 라면 먹을 거야?”하며 익숙하게 묻는 내 아이 앞에서 울컥하곤 한다. 내 아이는 라면을 먹이며 다른 아이들 밥을 준비하기에 분주한 나는 가끔 아들과 딸에게 미안하다. 남들은 영양사니 자기 아이들 영양 잘 챙기고 잘해이먹는 줄 알지만, 시켜 먹기 일쑤고 집에 돌아와 긴장을 놓으면 사실 주방에 들어가기도 싫고, 뭘 먹을까 생각하는 것조차 싫다.
이런 우리를 학교에선 나가길 바란다. 정부는 영양사를 중장기적으로 영양교사로 대체한다고 하고 있다. 그런 시선을 던지는 곳에서 일하는 건 쉽지 않다. 내가 나가길 바라는 존재라니.... 그땐 노조마저 우릴 놓아버릴까봐 걱정이다. 그래도 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나의 버팀목이고 연대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412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