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가로막힌 나. 그리고 물고기
연구를 하다 보면 그만두지도, 계속 진행할 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떠넘길 수도 없는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와서 마주한 나의 15cm짜리 작은 어항을 보고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 「사방(四方)에서 들리는 초(楚) 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敵)에게 둘러싸인 상태(狀態)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孤立) 상태(狀態)에 빠짐을 이르는 말 - 네이버한자사전
나는 우리 연구실의 선임연구원이다. 박사과정에 이제 곧 들어가기 때문일 수 도있겠지만 일명 새싹교수님(임용 10년 이하의 젊은 교수님)의 첫 제자이기 때문에 선배가 없다. 이것은 많은 이점과 많은 단점이 공존한다.
장점은 젊은 꼰대 선배들이 없기 때문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없어 보다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우리 연구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연구실의 정체성을 정하고 교수님과 함께 방향성을 설정해 나가는 과정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즐겁다.
단점은 이래라저래라 알려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굉장히 많은 벽을 이 한 몸 바쳐 뚫고 나가야 하고 뒤에 나를 쳐다보는 삐약거리는 석사과정과 연구실을 지켜내야 한다. 내가 석사 때 투고하고 게재됐던 논문들을 바탕으로 새로 들어온 석사과정들의 확장 연구가 시작된다. 얼마나 부담스러운 자리인가..
이렇듯 내가 뚫고 나가야 할 것이 많은 나의 위치에서 연구를 하다 보면 그만두지도, 계속 진행할 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떠넘길 수도 없는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에 퇴근을 했는데 항상 기다리던 와이프가 잠자고 있었다. 항상 사랑보단 미안한 감정이 먼저 올라오는 그 모습을 보고 어항 앞에 잠시 앉았다.
물고기 한 마리가 작은 어항에서 밥을 달라며 나에게 다가왔고 생각 없이 밥을 주는 동안 4면이 아닌 6면이 모두 막힌 어항 속에 갇혀 살아가는 물고기를 보고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도 너 나름대로 힘든 삶을 살고 있구나. 자연의 넓은 곳에 살면 훨씬 행복할 텐데 미안하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세상 속에 갇혀 살고 있다. 물고기와 다르게 그 세상을 깨부술 수 있는 힘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박사과정을 계속해나갈 것이고 그것을 위해 오늘도 새벽까지 한 발자국만 더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한 발자국만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