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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학원생 남편 Jul 09. 2023

어항 리셋

종의 멸망

[어항 리셋] 흔히 물생활 좀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사용하는 단어다.



어항 리셋: 기존의 어항을 전부 비운뒤 새롭게 레이아웃을 꾸미는 행위



오늘 약 6개월간 잘 유지되어 오던 어항을 하나 리셋하였다. 어항 속에는 크게 총 3가지 생명체가 있었는데, 크게 수초, 달팽이, 물고기이다.


수초는 뽑아서 옆의 작은 수조에 옮겼으며, 물고기는 곧 새롭게 꾸밀 어항을 위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잠시 이동시켰다.


남은 것은 달팽이. 오늘의 주인공은 [뾰족 달팽이]이다.

자연환경을 구현하는데 달팽이는 큰 역할을 한다. 흙 속으로 들어가 헤집고 다니며 퇴적물이 지나치게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고, 어항 벽면과 구조물에 자리 잡은 이끼를 정리하기도 한다.


역할만 보면 참 감사한 생명체이지만, 이놈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1. 못생겼다.

2. 못생긴 주제에 엄청난 번식 속도로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가정집에 수조를 들이는 것은 관상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징그럽게 생긴 달팽이 군단이 수조를 기어 다닌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느낄 것이다.


처음 달팽이가 생겼을 때 나는 그냥 두었다. 분명 이 아이들이 나타나는 자연적인 이유와 물고기들이 살아가기에 역할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고 그 어항이 나의 어항 중 가장 건강한 어항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종의 멸망을 선언하였다.


번식의 양이 감당이 안되었고 불이 꺼지면 너무 많은 달팽이들이 벽면에 오글오글 붙어있는 참혹한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기를 죽이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다음생을 기원해 주는 나의 성격상 수조세계의 달팽이 종의 멸망은 굉장히 큰 우울감으로 다가왔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너무나 이기적이지 않은가.. 애써 외면하였지만 우리는 이러한 선택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나는 적어도 그 순간에 모두가 죄책감을 느꼈으면 한다. 잊지 말자 모기도, 달팽이도 다 저마다 자신의 길을 향해 수백 년을 살아왔을 것이다. 


유튜브 채널 : https://youtube.com/@graduate_aqua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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