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자니 마음 아픈 것
사람이든 물고기든 수초든 아픈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마음 아픈 일이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아프지 않으면 참 좋으련만
수초의 갈변: 초록 혹은 붉은색 등 본연의 색을 잃고 잎과 줄기가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여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다.
집에 작은 수초 어항이 있었다. 싸구려 조명과 삐질삐질 나오는 자작 이산화탄소 그리고 다이소에서 산 2,000원짜리 여과기가 달려있는 크게 공들이지 않은 내 생에 첫 수초 어항이었다. 첫 한 달은 푸릇푸릇 생기가 돌고 이끼가 생겨 새우와 물고기까지 키웠던 어항이다. 수초를 공부하다 보면 욕심이 생긴다. 이렇게 하면 더 잘 큰데 저렇게 하면 더 잘 큰데!라는 말을 듣고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공급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조명도 물생활 하는 사람들 사이에 저명한 조명을 장만했다. 초록색과 물고기의 발색은 눈 부셨고 폭풍성장할 것을 설레하면서 매일밤 잠들었다. 그건 딱 1주일 뿐이었다.
1주일 뒤에 수초에 갈색빛이 돌기 시작했다. 한번 생긴 갈색 빛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물을 열심히 바꾸어주고 영양분이 부족하다고 하여 액체비료, 고체비료를 써가면서 영양분을 보충해 주었다. 거기서부터가 문제였나 보다.
지금의 이 수초어항에는 가을이 찾아왔다.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노력이 문제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과영양화]였던 거다. 이미 적은 광량의 싸구려 조명과 적은 영양분에 적응을 해버린 수초들이 너무 많은 영양분을 받아 시들어버리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다 뽑고 다시 시작하라고 하는데 마음이 그것이 쉽지 않다.
수초를 키우는 것은 사람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 참 많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상대에게 주는 것이 언제나 이득은 아닌 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 얻었다. 사회생활을 처음 하기 시작했을 때 있는 정 없는 정을 다 퍼줘 가면서도 상대도 그렇기를 바랐던 것 같다.
전에 있던 회사의 부서장은 구성원 간에 이간질을 시켜 성과를 내는 것을 리더십이라 칭하시던 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끼리 더 딴딴히 모여 부서장 욕도 하고 서로 입조심하자고 도원결의를 다졌다. 그러던 중에 나는 그런 환경이 힘들어 그만두게 되었다. 예상했겠지만 그중에 한 명이 계속해서 부서장에게 우리의 도원결의와 그 외 모든 것을 전달하고 있었다. 절대 그러지 않을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은 없나 보다.
회사를 그만둠으로써 정비된 마인드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수초항은 뽑아버려야 할까? 동료에겐 주진 못했던 기회를 어항에겐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