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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다 Feb 20. 2023

점선 같은 지속을 계속할 것

구멍은 아주 작고 지속은 거대하니까





어느덧 23년도에 그럭저럭 적응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작년과 다름없이 2019년도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새해가 되면 의욕이 넘치다가도 기세가 풀썩 꺾여 19년도 다이어리를 23년도까지 써도 될 만큼 공백이 넉넉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머쓱하다.


한 해의 다이어리를 제때 다 써야 한다는 점에선 실패했지만, 어쨌거나 다이어리를 꾸준히 쓰는 사람이라는 점에선 꽤나 성공한 듯하다. 연말을 맞으면서 흐지부지해졌던 일본어 원서 읽기도 다시 시작했다. 까맣게 필기한 부분을 다시 쓰다듬어가면서 살풋이 앉은 망각의 먼지를 털어나가는 중이다. 그야말로 점선처럼 얇은 지속이다.


나의 지속은 오와 열을 맞추고,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정반대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지속이 만약 눈에 보인다면 어딘가 너덜거리고, 중간중간 빠진 부분이 있는 모습일 게 분명하다.

이전에 나의 지속은 ‘매일 조금씩 꾸준하게!’를 구호로 외치며 열심히 달렸다.

목표를 작게 쪼개고, 허들을 낮추는 것에 많은 힘을 쏟았다.


물론 그 노력들이 아예 의미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지속에 대해 훨씬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선 반박의 여지도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 간과했던 사실이 있었다면, 계획을 아무리 작게 쪼갠다 한들 어쨌든 공백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긴다는 점이다. 난 그 사실을 정말 끝까지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지속이 아주 얇을지언정 매끈한 선의 형태이길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약간의 강박 같은 것도 생겼다. 그 강박 덕분에 매일 목표를 해냈다기 보단, 공백이 생길 때마다 이것마저도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꾸 자책을 반복하게 했다. 은은한 자책이 반복될수록 공백은 훨씬 신경 쓰였고, 지속은 쉽게 끊겼고, 다시 시작하기란 더욱 힘들었다.


지금은 알고 있다.

나에게 지속이란 깔끔하고 촘촘하게 채워진 누군가의 다이어리처럼 아름답기만 할 순 없다는 것을.

매일 처음의 초심처럼 반듯하지도 않고, 방심하면 구멍이 숭숭 뚫리기 일쑤다. 당장 눈앞에 구멍이 생기면 그 구멍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만 느껴진다.  


무수한 구멍을 넘을 수 있게 발돋움한 건 아마 점선 같은 지속도 얼마든지 괜찮다는 마음 가짐 덕분이리라. 차라리 구멍이 일정하게 난다면 그건 그것대로 보기 좋을 거라며  눈을 꽉 감고 어제의 구멍을 뛰어넘어 오늘의 몫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간다.


그 구멍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지속할 수 있다.

뒤돌아보면 구멍은 아주 작고, 지속은 거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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