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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민 Jun 06. 2020

육아에세이:: 작은 것으로 가득 찬 5월


5월의 마지막 밤, 모두가 잠이 든 호젓한 시간 책상 앞에 앉았다. 


딱 한 시간 후면 이런저런 메모들이 적혀있는 5월의 달력은 새로이 시작되는 6월에, 위풍당당하던 자리를 내어주고  조용히 넘겨지겠지.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고 생각한 시간이 조용히 흩어져 버리는 것만 같아, 아득한 저 너머의 세계 깊숙한 어딘가로 넘겨지는 것 같아, 괜스레 아쉬워진다. 


아쉬운 것과 마주할 때, 글이 쓰고 싶어지는데 마음을 달래는, 혹은 소중한 것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보듬는 나만의 방법이다.  



5월. 가정의 달답게 온갖 행사로 달력이 채워졌던 달이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을 비롯해 결혼기념일에 동서, 어머니의 생일까지. 적지 않은 행사들이 모여 있었는데 특히나 기억에 남는 날은  다름 아닌 '어버이날' 이었다. 


자식 된 입장일 땐, 쑥스럽고 머쓱하기만 한 날이기도 했는데 그건 평소에 자식으로서의 소임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약간의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꼭 이런 날이 되어야만 꽃 한 송이, 용돈 한 푼 챙겨드리는 무심한 딸인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괜히 찔렸다. 평소엔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에게 살갑지 못했던 불효녀의 반성이랄까.


매년 감사의 마음만큼이나 죄책감과 뻘쭘함이 공존했던 날이었는데, 이번 해엔 그 모양새가 조금 변했다. 


감사와 죄책감,뻘쭘함과 더불어 묘한 즐거움이 생겼달까.


어느새 엄마에게 꽃 한 송이 내밀 수 있을 만큼 자란, 기특하고 애틋한 나의 두 아이 때문이리라.



아직 세 돌도 지나지 않은 이 두 아이는 어버이날이 무슨 날인지 제대로 알 지 못해 평소와 다를 바 하나 없었지만, 


아이 손에 쥐여진 종이꽃 한 송이가 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주었다. 


선생님과 함께 만들었을 법한 종이 카네이션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어린이집 차량에서 내린 두 아이.


"이건 집에 가서 엄마, 아빠한테 드리는 거예요. 사랑해요! 하면서요."와 같은 멘트를 몇 번이고 들었을 두 아이가 내 눈엔 사랑, 그 자체였다. 



선생님이 거의 다 만들어 줬다는 건 까맣게 잊은 채, '이것 정도는 만들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늠름한 표정에  웃음부터 터져 나왔는데 어느새 자라 작은 사회에로 나간 두 아들에 대한 대견함 때문이다. 제 몫으로 주어진 한자리를 당당히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 부모로서 기특해 죽겠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특히나 기억아 남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반응으로 기가 막히게 만들었던 첫째. 덕분에 부모가 되어도 난 여전히 유치한 인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에게 자신의 소중한 카네이션을 빼앗길까 싶어 "이건 엄마 꺼 아니야. 아빠 거야"라고 말한 첫째 아이의 다급함에 그만 말문이 턱하고 막혔던 것이다. 


선생님은 차에서부터 '이건 아빠 거야' '엄마 꺼 아니야'라고 말한 첫째 아이 때문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내내 '엄마 주면 안 돼?'라고 구차하게 묻는 나를 향해 '안돼!'라고 매몰차게 대답하는 아이를 보며 섭섭하기보다 우스웠는데, 그동안 아이의 눈과 마음을 잘 맞춰 주었던 남편을 나 역시 좋은 아빠로 인정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마음의 고요에 큰 원인은 나에겐 아들이 걔 말고 하나 더 있기 때문이었다.



첫째와 나 사이의 묘한 신경전을 눈치채고 재빨리 '나는 엄마 거야'라고 말하며 내게 카네이션을 내밀어 주던 둘째.


4살 아이의 깊은 속이 마냥 고마웠고, 동시에 어버이날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게 되었다는 안도가 새어 나왔다.


역시 둘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는데, 바라는 것 없이 주기만 해도 행복하다는 부모의 마음은 사실 약간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부모의 마음은 하늘 같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던 날이었다. 


'네가 안 줘도 나한테 꽃 줄 사람 또 있거든?' 대충 이런 치사하고 유치한 마음이 들었다. 


자식 앞에선 영원히 패배자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으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고 사소한 것 정도는 챙겨주길 은근히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 네가 나에게 무언가를 주지 않아도 괜찮지만, 준다면 무척 고맙고 기쁘겠다는 얄팍한 마음. 엄마 역시 선물과 꽃, 다정한 말에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자라는 걸 지나가듯 넌지시 던지듯 알려주고 싶은 요상한 마음. 



남편이 늘 내게 했던 말이 있지. "넌 왜 이랬다, 저랬다 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사람이 완벽하게 한 가지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겠어? 부모님을 잘 생각해봐. 괜찮다 괜찮다. 우린 괜찮다 하면서 은근히 곁눈질을 하고 있잖아? 다 그런 거야. 나라고 뭐 다르겠어?'


이런 핑곗거리를 만들고 있는 걸 보니, 찔리는 건 확실한가 보다. 



나의 간사한 마음에 대한 확인과 구차한 변명으로  5월을 끝낸 건 아니다. 


역시 아직 난 더 자라야 되는 인간임이 증명되긴 했지만, 더 나은 인간으로 자라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음을 떳떳하게 보여주듯, 5월엔 새로운 일이 여러 개 있었다. 


아니, 여태껏 하던 일이 작은 결실을 맺었다고 해야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출간 계약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표지를 받게 되었다. 아이가 18개월 정도 될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두 돌이 좀 지난 후 완성 한 글이었는데, 세 돌이 다 돼가는 지금에서야 표지가 나온 것이다. 출판사와 첫 계약을 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책에 대한 내 마음이 무덤덤해져버렸는데, 다시금 마음이 쿵쿵 뛰게 만들어 준 것이 표지였다. 


마지막 교정작업을 앞두고, 긴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어 본채 만 채 책상 한편에 툭 하고 던져두었던 원고 더미를 표지가 나오자마자마자 소중히 내 앞으로 다시 가지고 왔다. 


'그래, 그래. 나의 첫 글아. 우리 다시 잘 해보자.'


당근이 없으면 일도 하지 않는, 간사한 인간. 이것 참, 성장하고 있다는 걸 떳떳하게 보여주기가 이렇게나 힘이 든가 싶지만 이걸로 끝은 아니니깐.



5월, 어버이날의 임팩트만큼이나 나에겐 중요한 두 가지 일이 일어났는데, 하나는 <와락 글방>을 열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와락 글방>의 글쓰기 프로젝트로 오프라인,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글쓰기를 사랑하게 된 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나의 작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만든 나의 글방, 글쓰기 공간이 와락 글방이다. 물론 실제적인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건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서, 또 나와 함께 글을 쓰기 될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서 만든 가상의 글방이자 나 자체인 셈이다. 


이 한 걸음이 나중에 '와락 글방'이라는 실제 간판을 건 책방 겸 글쓰기 공간으로 바뀐다면 더없이 기쁘겠다는 상상을 막연히 해 본다. 



글쓰기 모임은 처음이다. 처음의 그 한 걸음의 가치를 용기가 늘 부족했던 나는,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무척 기쁠 뿐이다. 내딛을까, 말까 사이를 오가며 숱한 고민의 시간을 지새웠는데 결국은 '하게'된 나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


대단한 무언가를 알려줄 정도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때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겐 작지만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객활동을 위해 그간 블로그를 하며 익힌 기술들을 있는 대로 끄집어내 쓰고, 글방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글방의 방향을 고치고, 또 고치며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었는데 그 자체가 나에겐 배움이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프라인 모임을 2회 진행하고,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2주간 이어오면서 없는 밑천이 바닥이 날까 싶어 혼자서 전전긍긍, 바동바동 안간힘을 썼는데 딱 그 순간, 내가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5월엔 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인 소만이 있다. 작을 소, 찰 만. 


작은 것으로 가득 차는 달.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로 채워지는 달.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들어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의 달. 


나의 상태가 딱 소만과 맞물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부모로선 여전히 더 많은 것들이 차야 할 것 같지만,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무언가를 하나, 하나 채우고 있는 중이니깐. 무에서 유가 되기 위해선 아직 한참이나 가야 할 것 같지만, 그동안 뿌려둔 씨앗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싹트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한 인간으로서 내 삶을 싹 틔우기만 한다면, 부모의 삶 역시 점차적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간사하고 치사하고, 얄팍한 마음이 충만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것들에 의해 점차 옅어지지 않을까. 


그런 의미로 본다면, 5월. 난 부모로서도 무척이나 열심히 살아온 것이다. 


어버이날에 엄마에겐 꽃을 절대 줄 수 없다고 했던,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 꺼 아니야!'라고 소리 질렀던 솔직하고 당돌한 나의 아기가 좀 나빴던 거라고 생각해야지. 


작고 사소한 감정과 사건들로 가득 찬 우리의 5월. 잊히지 않을 소만에 대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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