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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Oct 09. 2023

친정엄마의 가을

콩알밤의 맛은 코스모스 향기를 담아내듯 고소했다.

긴 추석 연휴를 지난 주말 친정으로 향했다. 한글날이 껴서 연휴를 연상케해주니 명절에 못간 나들이를 다녀올만 하다. 예상대로 도로는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량으로 가득하다. 모두 한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순간 동지애를 느낄정도다. 맑은 가을하늘은 이런 우리를 설레게하듯 멋진 햇살을 덤으로 주고 있었다.

밝던 낮은 금방 휘발되어 어둠이 그자리를 대신한다. 아직 이른 저녁시간인데 어두컴컴 해졌으니 마음도 더불어 쪼글어 드는 기분이다.

최근들어 무기력해진 팔순이 넘으신 친정엄마의 몸과 마음이 걱정이다. 팔순 넘기 전까지 '힘들다'란 말씀한번 못들어 봤는데, 작년여름 부엌 싱크대를 잡고 일어서시며 당신도 모르게 내뱉던 한마디.

"아휴~ 힘들다~!"

옆에서 설거지하던 내 귀에 쏙박혀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평생을 밤이나 낮이나 짐을 머리에 이고 다니시던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렇게 무릎은 닳고 닳았을 팔순이 넘으신 엄마의 두다리.

이젠 웬만해선 지팡이없이도 잘 걸을수도 없으시다. 아픈 무릎은 엄마의 마음과 다르게 자꾸 주저앉게 했다.

그리고 찾아온 엄마의 무기력증.


몸이 아프시니 아무것도 하기 싫다시는 통에 홀로계신 엄마의 안부가 더욱 걱정된다.

오전에 고혈압 약을 드시고, 격일로 소일거리 삼아 다니시는 공공근로도 하고 오시면 그대로 신생아처럼 깊은 잠에 빠지신다. 오전 일찍 서두르신탓에 피곤하실법도 하신다. 가끔 저녁시간 전화를 걸면 계속 주무시고 계신다. 밥도 안드셨다면서 말이다. 초저녁에 잠들면 다음날까지 주무시니 이렇게 오래 잠들어도 되나 싶다.

무기력이 엄마를 둘러싸고 동여메고 있었다. 만사 귀찮음에 라면조차 끓이기 귀찮다 하셨다.


간단하게 친정엄마의 죽을 포장하고, 집에 도착하니 우리를 기다리시느냐 저녁도 드시지 않으셨다. 재잘재잘 떠드는 손녀딸의 한마디에도 함박웃음 짓는 엄마다. 주름가득한 얼굴엔 예전과 다르지 않은 엄마의 모습에 안도감도 살짝 들었다. 다같이 둘러앉아 먹는 한끼의 힘은 쎄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냈다.


이른아침.

주섬주섬 친정엄마는 바쁘시다. 장화까지 신고 말이다. '무얼하시려고 그러나싶어' 잠이 덜깬 채 엄마께 여쭤본다.

"엄마! 어디가? 장화까지신고..."

"..."

아무말씀이 없으시다. 그리고 이내 마당으로 나가셨다. 비몽사몽 뒤따라 마당으로 나갔다. 긴 막대기까지 한손에 잡고 결의에 찬 엄마는 전쟁터 나가는 장군과 다름없이 늠늠하셨다. 이렇게 비장한 모습으로 어딜가시는건지 재차 여쭈었다.

"밤 주으러가~ 조기 콩알같은 밤들이 많이 떨어져"

"아~"

끄덕끄덕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 예전 같았음 잔소리를 했을 나였지만 밤주시러 가시는 모습이 전화기 너머의 무기력한 엄마의 모습과 다르게 느껴져서 속으로 고마웠다. 따라가서 같이 주워드리면 좋으련만 마당 한켠에 꼬리를 흔들고 반기는 엄마의 반려견과 아침인사를 나누며 엄마를 기디렸다.

그리고 잠시뒤,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처럼 돌아오시는 엄마의 한손엔 전쟁터 전리품마냥 검정 비닐봉지가 쥐어 있었다. 그안엔 동글동글 밤들이 나를보고 반질반질 웃고 있는듯 했다.

'이런걸 왜 주워와~ 허리아프게...다리 아프다면서 왜그래~증말~!'하며 예전엔 핀잔을 드렸던 나였기에 엄마는 내게 어딜간다는 말씀도 못하시고 가만히 다녀오시려 했다 들킨것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내가 달라졌다.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드리기. 매년 가을이면 밤 줍는게 즐거운 엄마시다. 어릴적부터 엄마의 밤 줍는건 못말렸다. 꿈속에서도 밤주우러 다니신다고 가끔 말씀하시는 엄마시기에 엄마의 밤은 특별한 힘을 가진듯 하다. 비록 줍는 밤알은 콩알처럼 작아도 엄마를 씩씩한 장군으로 만든 콩알밤은 위대했다.

씨익 웃으시며 내미신 콩알밤은 바로 깍아주신다. 오독오독 씹어먹는 생밤의 맛은 남이해준 밥맛 이상이다.

"와~ 엄마 진짜 맛있다~! 고소하다~"

옆에서 어미새가 물어다주는 새끼마냥 입벌리고 받아 먹는다. 이런게 친정맛인가보다. 매년 엄마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듯하다. 주름은 더욱 크게 패이고, 눈꺼풀은 삶의 무게처럼 축 져가며, 걸음걸이는 마음과 어긋하게 더디다. 엄마의 나이듦이 점점 두렵게 느껴졌던 요즘이였다. 무더운 여름내내 무기력해 보인 엄마의 목소리에 적잖은 걱정을 안고 있었기에 콩알밤에 에너지 넘치는 엄마의 모습이 고마웠다.


그리고 막대기를 잡은 한손엔 엄마의 가을이 따라왔다. 밤나무 아래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들려 있었던 것이다. "꽃을 사시오~!"하며 내미는 엄마의 감성에 마음이 흐믓하다. 가을을 함께 느끼고 돌아오는 귀경길엔 안부전화를 더 자주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을 사시오~ 코스모스



막히는 차안에서 씹어 먹으라며 한손에 쥐어주신 깐콩알밤.

서울 도착전 이미 다 먹어버렸지만 오독오독 씹히는 맛 만큼이나 막히는 차안에 여유를 느끼게 해주기 충분했다. 팔십두번째 엄마의 가을은 이렇게 깊어가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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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는 옆에 이웃분께서 허락해주신 하에 주우시는 거랍니다. 평소엔 빈집으로 두시기에 가끔 오신다고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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