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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Jan 05. 2022

부칠 때는 부침가루와 튀길 때는 튀김가루와 상의하세요.


저녁 늦은 시간 작가님의 야채튀김 한 접시가 톡방에 올라온다. 그 시간 야채튀김은 나랑 거리가 멀기도 가깝기도 한 사이. 첫째 아이는 유독 야채튀김을 좋아하기에 사진을 보는 순간 묵혀두었던 커다란 고구마가 생각났다. 냉장고 안을 스캔해보니 당근에 양파, 대파도 눈에 보이니 조합은 딱이다. 그래 낼 오후엔 야채를 튀겨야겠단 생각이 문득 들게 한 사진이었으니...


다소 쭈글 거리는 큰 고구마를 잡았다. 감자 깎는 칼로 이리저리 돌려가며 깎아보니, 거뭇거뭇 고구마가 공기를 만나자마자 까매진다. 오랫동안 방치한 내 탓이기도 하거니와 오늘 고구마는 새로 태어나주는 걸로 부지런히 썰어본다. 양파도 적당히 썰어보고, 당근도 썰고, 써는 건 왠지 자신 있는 나이기에 가늘게 썰다 보면 기분도 좋아진다.

이리저리 뒤적이다 튀김가루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튀긴 적이 없다는 소린데 부침가루만 눈에 보인다. 부침가루로 함 해보자며 냉동실 치자열매 두 개를 물에 불러놓고, 밀가루를 반죽 만들어 썰어둔 야채를 넣고 뒤적뒤적 섞었다.


치자물은 노란 색을 띠며 튀기기도 전부터 색깔이 맛을 다했다. 내심 기분 좋게 기름 한통 다 붓고 기름 온도가 올라가기 기다렸다가 튀겼다. 시작은 좋았으나 튀겨지는 모습이 왠지 기름을 먹는 기분이 들게 한다. 부침가루 때문일까? 달라진 거라곤 튀김가루 대신 부침가루였건만 튀겨지는 게 아닌 부쳐지는 기분이 든다. 기름을 한껏 먹은듯한 야채튀김의 비주얼이 맘에 안 든다. 슬슬 불안해지기도 하다. 이미 반죽을 다 해버린 상태인데 말이다. 못 먹어도 다 튀겨야 한다.


사실 한편에 오징어도 튀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오늘 운동화도 튀길수 있는 전투력이였다. 튀길 때 한 번에 튀겨보자란 생각에 오징어도 썰어 물기 빼고 있었는데 이대론 불안해서 튀김가루를 준비해야 했다. 약간의 전투력이 상실되는 순간이였다. 둘째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동안 야채튀김을 두 번 튀긴다. 애벌 튀김을 하고 한번 더 튀겨내니 바삭한 느낌의 야채튀김이 나온듯하다. 고맙게도 둘째가 사 온 튀김가루에 오징어 반죽 튀김을 준비한다. 물기 빼고 밀가루를 입힌 오징어에 튀김 반죽을 퐁당!


야채튀김을 마친 기름에 오징어를 넣었다. 제법 바삭한 비주얼로 튀겨지는 오징어 튀김. 그래! 바로 이거지...

부침가루는 부침을 할 때, 튀김가루는 튀김을 할 때, 부침가루는 튀김가루를 대신할 수 없었다. 나름의 가루마다 역할이 다 있는 것이다.


갑자기 튀김가루와 부침가루의 차이가 궁금하여 지식인에 물어보았다.



<튀김가루나 부침가루에는 기본 밀가루에 여러 가지 혼합물을 첨가 합거예요 부침가루는 말 그대로 부침개 할 때 쓰시면 되고요.. 튀김가루 같은 데는 안에 베이킹파우더 같은 게 들어있어서 튀김을 하면 부풀어 오르는 효과가 있고 전분가루가 함유돼있어 더 바삭바삭해요>

https://www.menupan.com/cook/cookqna/cookqna_view.asp?id=80264




그래 튀김가루엔 베이킹파우더와 전분가루가 들어있어 부풀어 오르고, 더 바삭하게 해 준다 하니 이를 간과해버린 나의 불찰이 야채튀김을 두 번 튀기기 만들었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첫째 아이 친구 엄마가 잠시 들렀다. 야채튀김과 오징어 튀김을 저녁에 먹어보라고 덜어서 나눠주고나니 한편으론 야채튀김이 걱정되긴 했다. 맛이 어떨란지 말이다. 잠시후 지인의 전화에 맛있다고 연락을 주니 마음이 튀김옷처럼 부풀러 오르는 기분이였다.


학원 다녀온 첫째의 한마디에 나는 웃고 말았다.

"엄마가 내 엄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평소 튀김을 좋아하는 첫째는 야채튀김과 오징어 튀김을 번갈아 먹으며 기분 좋아했다.

이런 맛에 튀기는가 보다. 맛있게 먹어주는 이들이 있어 만드는 힘이 난다는 것!



두 번 튀긴 야채튀김은 식은 후 다시 먹어보니 구강건강이 시원치 않은 남편에겐 다소 딱딱할 정도였고, 오도독오도독 씹는 맛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겐 고소한 맛을 내었다.


부침할 때는 부침가루와 튀김 할 때는 튀김가루와 상의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무릇 모든일에는 자신만의 할수있고, 해낼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것을 부침가루를 튀기면 튀김가루처럼 나오지 않는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할수있는 일을 잘할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온집안 가득 기름냄새를 풍기던 소박한 오후를 보내며...


맛있게 먹었으니 칼로리는 없는 걸로 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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