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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모 Jul 29. 2019

핀란드 소단퀼레 <백야 영화제>

밤이 없는 그곳에서 밤새 영화를

백야를 오래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작년 여름을 겪고 나서 백야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밤이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이곳, 새벽녘에 잠깐 지는 몇 시간 동안의 하늘은 내내 떠있던 해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만 같다. 너무도 짧은 휴식이긴 하지만.

백야 영화제, Midnight Sun Film Festival
홈페이지 https://msfilmfestival.fi/ohjelmakartta/

신비롭기만 한 백야의 하늘 아래서 펼쳐지는 영화제는 영화제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지만, 단지 백야 영화제라는 그 이름만으로 순간 매료되어 러시아에 사는 동안 꼭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6월 하늘은 백야의 시작을 알리고, 나는 핀란드 소단퀼레로 향했다.

베이스 캠프

소단퀼레는 핀란드 북단의 작은 마을로 산타마을로 알려진 Lapland에서 40분가량 더 버스를 타고 들어간다. 버스에서 내리면 뭔가 시끌벅적하고 영화제 분위기가 온몸으로 느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조용했다. 베이스캠프에서 사전에 보고 싶은 영화 티켓을 사러 갔다. 상영되는 영화의 포스터는 핸드 드로잉으로 재탄생하여 이곳저곳에 붙어있었다. 귀엽기도 따뜻하기도 한 포스터들이다. 상영장소를 안내하는 맵마저도 너무 사랑스럽다.

핸드 드로잉 포스터와 맵

칸, 베니스 영화제와 같은 큰 영화제는 아니기 때문에 아마도 핀란드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영화제이지 않을까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세상에 외국인이 단 한 명도 없는 느낌이었다. 영어가 조금 들리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주변에 들리는 언어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언어(핀란드어 일 것이다)뿐이었다. 게다가 동양인을 영화제 기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더욱 이국적인 느낌이 들어 왠지 모를 설렘이 더 컸다.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4곳으로 3곳은 서커스 텐트처럼 큰 텐트와 조금 작은 텐트들, 1곳은 베이스캠프 건물에 있는 극장이었다. 대형 텐트 안에서 보는 영화는 나를 더욱 들뜨게 했다(의자는 불편했지만..^^)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사이에는 베이스캠프 옆에 있는 플리마켓들을 구경했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있지만, 특색 있는 물건들로 다양한 그곳에서 꼭 마음에 드는 스카프 두 개를 5유로에 샀다. 쇼핑에 있어 이보다 더 큰 희열이 있을까 하는 순간이었다. 낯선 곳에서 어떤 스토리가 있을지 모를, 게다가 너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너무나 싼 가격에 산다는 것, 그것이 여행 중 하는 쇼핑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깨끗하게 세탁을 하고 목에 감으면서 또 한 번 뿌듯함을 느꼈다. 이 스카프들은 나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를 써가겠지,,

텐트 뒤로 돌아가 보니 강가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어떤 이는 잠시 누워 햇살을 즐기고, 어떤 이는 팬티까지 홀딱 벗고 물속에 뛰어든다. 갑자기 낯선 이의 엉덩이를 보게 되어 당황스러웠지만 마냥 평온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도 가방을 베고 선글라스를 끼고 강가의 잔디밭에 누웠다. 햇살이 뜨거웠지만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이 뜨거운 햇살을 잠깐씩 가려주었다. 영화제의 최고의 순간이라면 이곳 강가에서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태어나서 이렇게 평온하고 자유로운 순간이 있었나.. 영화제에서 만난 소단퀼레의 자연은 가슴 벅차게 아름답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자 한 여자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친구분과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찍어주다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사람이라고 이야기한 순간  K-pop이야기가 제일 먼저 나온다. 헬싱키에서 온 그녀는 딸의  K-pop 사랑을 못 말리겠다며^^ K-pop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다.

백야 영화제 최고의 순간, 강가에서의 낮잠

마지막 영화를 보고 나온 시간은 새벽 1시였지만 태양은 여전히 쉴 생각을 안 하고 밝기만 했다. 눈의 피로가 시간을 말해주었다. 한편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무거워진 눈꺼풀을 어찌하지 못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세일즈가 이루어지고, 어워드가 있어 경쟁하는 영화제와는 분명히 다른 매력이 있는 영화제였다. 작은 마을을 거닐면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 마음을 들뜨게 하는 텐트 안에서의 영화 상영, 티끌 하나 없는 소단퀼레의 자연이 어우러져 힐링이 된다. 이 깊은 자연 속에서 열리는 백야 영화제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아 지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꺼내보면 다시금 힘을 주는 그런 기억을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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