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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운 Sep 29. 2022

기다림

창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넘치듯 집은 썰렁하다. 지금 하는 일이 새벽 2시에 끝나기 때문에 나는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대부분을 밤을 지새우며 책을 읽고 차를 마시다 잠을 청했다. 소중한 밤을 허투루 보내기 싫어서였을까. 창을 조금 열어 놓고 담배를 피운다. 밖으로 빌 에반스의 음악과 담배 연기가 흘러나간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시집 서점인 ‘위트 앤 시니컬’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유희경 시인님이 운영하는 서점인데 그 사람은 나의 즐거움을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시집을 많이 구매한다면 좋겠지만, 집에서 2시간 거리고 차가 없기 때문에 나중에 인터넷으로 구매할 것을 고려해 사진을 찍어두었다. 시집 세 권을 포장해 밖으로 나오다 사진 촬영을 금한다는 공지를 보았다. 속이 타들어 갔다. 조금만 더 일찍 보았다면 사진을 찍기보다 메모장에 적어두었을 텐데. 그 사람은 나를 기다리며 작은 스툴에 앉아 시집 제목을 눈으로 읽는 듯 보였다. 나는 한참 신나게 구경했고 어떤 할머니가 오셔서 시집을 한 권 사가셨고 손님이 한 분 더 오셨을 즈음 나는 그 사람과 서점을 떠났다. 뭔가 죄를 지은 기분을 가지고 서점을 떠났다. 다음에 또 갈 수 있다면 그 사람처럼 누구에게 방해를 주지 않으며 텍스트를 향유해야겠다. 그 사람은 유난 없이 나를 늘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해가 저물듯 사라져갔다. 나를 깊게 기다려주던 그 사람. 저 달이 떠오르면 늘 사랑스럽게 자고 있던 사람. 혹시 잠에서 깰까 봐 머리맡을 조심히 정리해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이마를 쓰다듬고 손을 살포시 얹고 자던 그날들이 밤과 함께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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