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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운 Oct 24. 2022

그래도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람은 다면적이다. 그래서 충분하지 못하고 충분토록 기대할 수 있다. 어찌 모든 면을 사랑할 수밖에 없던 사랑이 있었다. 그 깊은 곳. 하릴없이 헤엄치고 싶던 곳에서 더 이상 호흡할 수 없게 되었으니 손과 발은 마비되고 눈동자는 자꾸만 위로 향한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이상한 곳에서 희박한 빛이 아른거린다.


잘게 부서 둔 마음 탓에 더욱 고립되어간다. 나는 버림받은 자일까. 성향과 살아온 다르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던 일이 쌓여 미래를 향한 약속이 틀어진다. 첫 번째로 성향과 살아온 시간과 환경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더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그래도 이해 보려 노력해야 한다. 내적으로 판단하고 바깥으로 뱉어내는 건 상대를 향한 존중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해보고 미래를 약속한 사이는 더욱이 그런 발언은 조심해야 한다. 둘 사이 모두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는 안 된다. 다름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아서 티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정확한 그 수준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티를 냈기에 그 사람 모르게 먼저 정리를 한 뒤에 함부로 관계를 끝낼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게 아니다. 제발 함부로 상처 주지 마라. 회피하지 마라. 결국 고독으로 귀결된다. 영혼에 입이 있다면 둘 사이의 대화는 평생 소진되지 않을 것이다.


실체가 없는 대상이 몰려온다. 감정은 늘 그렇게 온다. 사랑은 그것을 실체화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생기며 시작된다. 하지만 그 증명이 압박돼서는 안 된다. 못난 모습에 실망하고 인식하지 못한 또 다른 모습에 내면의 사랑이 반항한다면 오래도록 편지를 써라. 마음이 할 수 있는 한 쓰고 또 써라. 증명이 아닌 인식이 이해의 첫걸음이다. 독자적인 설명으로 쓰는 말은 반성문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랑은 이해와 배려 또 그 이상의 감정이다. 각자가 서로를 신뢰하고 생각하기에 도달할 수 있는 감정. 계속 같이 걸어 나갈 수 있는 에로스적 사랑. 사랑의 숨 자국이 소탈하더라도 길게 충만하기를.


짙게 타고난 그리움은 살아있음으로 더 길어진다. 온몸이 바스러져도 그 사람에게 가고 싶다. 관성 따위에 무너질 사랑도 아니었는데, 그만큼 더 중심에 가까워진다. 자문의 자폐를 반복하다 한낮의 빛을 자세히 읽고 마음결을 다독인다. 어른이 되는 사람은 사랑에 한 발 더 가까운 사람이라던데 나는 한발 멀찍이 그 사람의 동심을 추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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