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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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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철 Jul 20. 2018

냉면의 맛


  고깃집에서 '이모, 불판 좀 바꿔주세요.'라고 3번은 외친 후 말한다. '그리고 냉면도 한 그릇 주세요.'라고. 양념 갈비를 야무지게 올려 냉면을 먹는다. 또 어느 여름날 땡볕을 해쳐 에어컨이 빵빵한 냉면집에 들어가 냉면을 먹는다. 냉면은 우리에게 그다지 어려운 음식이 아니다. 장소와 날씨 곳곳에 냉면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장소와 날씨에 냉면이라는 공통된 반응을 한다. 하지만 먹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식초와 겨자를 코가 찡할 정도로 넣는 사람, 신맛이 약간 날 정도로만 넣는 사람, 식초와 겨자 중 하나만 먹는 사람 등.


  어릴 때부터 난 냉면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식초든 겨자든. 신맛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부모님이 그랬기에 나 또한 당연했다. 나의 냉면은 밍밍하다는 것을 어른이 된 후 알게 됐다. 밍밍한 냉면을 맛본 자들은 '이거 왜 이래? 식초랑 겨자 안 넣었어?'하고 놀라곤 한다. 그들은 곧바로 식초와 겨자를 냉면 속으로 직행한다. 지금이 좋다며 그들의 행동을 막아서면 '하 정말 먹을 줄 모르네.'라며 핀잔을 주고는 한다. 그래도 난 밍밍한 냉면을 맛있게 마저 먹는다.


  어른이 되고 난 후 수많은 계획을 세웠다. 외국에서 살다 오기, 대외활동 3개 이상은 필수, 중국어 공부하기 등 알찬 20대를 보내기 위해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많은 경험을 했다. 외국에서 2주 이상 살아보지 않았고 대외활동은 3개는커녕 단 하나도 하지 않았고 전망 있는 중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배웠다. 버킷리스트의 절반도 해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많은 경험을 겪어 든든한 20대를 경험하는 중이다.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마음 한쪽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다.


  '워킹홀리데이 갔다 와서 시야가 훨씬 넓어졌어. 강력 추천이야.', '대외활동으로 경력도 쌓였고 관심사 같은 친구가 많이 생겼어. 한 번 해봐.', '저기 앞에 중국어 학원 괜찮더라. 생각 있으면 거기 다녀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이런 경험이 담긴 권유가 고스란히 나의 버킷리스트에 담겼다. 하나둘 쌓이다 보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늘어난 버킷리스트의 수는 죄책감의 무게와 비례했다. '하면 좋대'를 '해야 해'로 받아들이고 있던 내 잘못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똑같은 상황과 시기가 되면 공통된 반응을 한다. 예를 들어, 고3이 되면 사회에 나갈 준비를 모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누군가는 대학 갈 준비를 하고 누군가는 취직 준비를 하곤 한다. 대학 갈 준비를 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자기소개서만 종일 붙들고 있는 사람, 수시에 합격한 사람, 재수를 준비하는 사람 등. 냉면 같은 인생이다. 접하기 어렵지 않은 공통된 고민들을 기호에 맞게 헤쳐나가는 그런 인생 말이다.


  핀잔을 들어가면서까지 냉면의 밍밍한 맛을 지키던 나인데. 식초와 겨자가 필수라고 하던 사람들에게 '난 괜찮아'라고 말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던 나인데. 내키지 않버킷리스트를 죄책감과 함께 버릴 때가 왔다. 외로움이 많은 나에게는 오랜 외국 생활보다 짧은 여행이 더 뜻깊을 것이고 대외활동보다는 기고 글을 넣는 게 경력에 도움이 되며 프랑스어가 나만의 장점이 될 것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냉면 아니 인생을 맛있게 살아가야 한다. 식초와 겨자는 기호에 맞게!




Recipe_ 토마토 냉면


 죄책감을 떨쳐 버릴 시원한 냉면 한 그릇, 고명은 기호에 맞게!

토마토 1개, 양파 1/4개, 마늘 1쪽, 고추장 1큰술, 소금 1T, 설탕 3큰술, 식초 1T, 냉면 사리 200g

1. 토마토, 양파, 마늘, 고추장, 소금, 설탕, 식초를 믹서기에 간다.

2. 간 소스는 냉장고에 넣어 보관한다.

3. 끓는 물에 냉면 사리를 넣고 휘휘 저어주며 3분 정도 삶는다.

4. 삶긴 면은 냉수에 끈적임이 없어질 때까지 헹궈준다.

5. 면을 접시에 올린 후 시원해진 소스를 부어준다.

6. 무절임, 백김치, 오이, 달걀 등 기호에 맞는 고명을 올려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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