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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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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철 Oct 06. 2018

매실차의 맛

 너의 행복을 축하하며 이 편지를 쓴다. 취업했다는 소식 들었어. 경쟁이 심했다고 하던데 대단하다. 수고했어. 그동안 고생 많았지. 아 참 로맨틱한 애인도 생겼다며. 비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너였는데 그 사람과의 결혼을 약속하다니. 어떤 사람인지 안 봐도 멋진 사람일 게 분명해. 승승장구를 언제나 응원할게.



 는 개뿔. 난 사실 이 편지를 이어가기 불편하다. 진심이 썩 없기에. 첫 문장부터 완전한 거짓말이다. 그의 행복을 축하해 줄 마음은 일절 없다. 할 수만 있다면 발바닥으로 박수 치고 싶다. 날 옹졸하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이를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긴 과분하다. 그를 이기고 싶다는 생각은 없을뿐더러 경쟁자라 여기지도 않는다. 그저 소인배의 복통 정도라고 하고 싶다. 난 대인배까진 아니더라도 중인배를 유지하기 위해 편지를 쓸 뿐이다. 그러니 그가 나의 진심이라 착각했으면 한다.



 어려서부터 축하의 순간을 위한 연습을 해왔다. 미워하는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며 노래했고 상 받는 얄미운 친구를 위해 박수쳤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진심 어린 가식을 배웠다. 어른이 된 지금,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능수능란하게 축하하는 내 모습이 장하다. 하지만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복통은 여전하다. 오히려 강도가 세졌다. 남들의 성공이 더 거대해졌으니.



 축하는 받을 일보다 할 일이 더 많다. 이기적인 동창, 얍삽한 동기, 꼰대 선배에게 말이다. 모르고 지나갈 수는 없다. 이 재수 없는 소식은 기가 막히게 빠른 속도로 내게 전해온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를 우연히 만나 축하를 건네야 할 것이다. 가식적인 축하에 죄책감 따위 없다. 진심 담긴 축하를 모든 이에게 하는 것이 과제는 아니니깐. 문제는 점점 잦아지는 복통이다. 요즘 난 그들의 작은 성과에도 배 아파했다. 그의 코딱지만 한 행복에 온종일 우울해하다니. 대처법이 필요했다.



 언제 한번, 이 모습을 엄마에게 들켰다. 엄마는 '어디 아프냐?' 물었고 난 '배가 아프다'고 솔직히 답했다. 그러자 매실차를 건넸다. 소화가 안 될 때나 체했을 때나 이유 모를 복통에 마시던 그 매실차 말이다. 이거였다. 달달한 플라시보 효과를 찾았다. 매실차는 유치한 우울에서 빠져나올 구멍 역할을 해낼 것이다. 고작 그의 성공담에 술을 찾을 순 없다. 그만큼 의미 있는 우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난 이제 매실차 한잔하고 마저 축하해주려고 한다.




Recipe_매실장아찌


이런 매실 장아찌 같은 자식, 축하한다.


 매실 1kg, 베이킹소다 1큰술, 식초 반 컵, 소금 1큰술, 설탕 300g


1.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푼 물에 매실을 박박 문질러 씻는다.


2. 물기를 빼준 후 이쑤시개를 이용해 꼭지를 뗀다.


3. 매실의 씨를 제거한 후 4등분으로 잘라준다.


4. 아삭함을 더 해주기 위해 소금을 넣어 섞은 후 설탕을 부어준다.


5. 소독한 용기에 담고 2~3일 냉장 보관 후 맛있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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