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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Jan 02. 2024

삼겹살, 고민이 있을 땐 언제나

불편한 사람과의 식사 자리에 가면, 늘 체한다.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인지, 겉으로는 티를 내지 못한 불편한 마음이 위장이 먼저 알아차리고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다. 조용하고 부담스러운 분위기에서 먹는 소고기는 고기를 굽는 시간은 짧아도 말하는 시간이 더 많다. 그래서인지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기에 더 진지해지고, 어떤 말도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분위기에 저절로 차분하게 만든다.      


하지만 삼겹살은 다르다. 대게 식당은 왁자지껄하고, 나의 힘듦을 툭 터 넣고 얘기하더라도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섞여 묻히다 보면 내가 한 고민은 별일이 아니라는 듯 넘어가게 된다. 걱정과 불안을 덜어내는 일에 머리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진다.      


그래서인지 고민이 있을 땐 자연스레 삼겹살을 찾게 된다. 큰 고기 한 덩이를 숯불 위에 올려놓고, 고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먹기 좋게 한 조각씩 잘라내며 마음의 짐도 조금씩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돼지고기도 핏기 가득한 생고기도 먹기 좋게 익으려면, 뜨거운 숯불을 버텨내야 한다. 막연한 기다림에 대한 걱정과 막막한 미래에서 오는 불안은 돼지고기가 구워지는 시간 동안 누구에게나 익어가는 시간은 필요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한다.      


삼겹살은 고기를 굽고, 먹고, 올리며 챙겨야 할 것도 많고, 고기가 익기까지 시간은 소고기보다 더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돼지고기는 어색한 사람과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음식이 된다. 고기가 구워질 때까지 말할 시간은 더 많고,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하는 시간도 길어도 고기가 잘 익을 때까지 잘 뒤집어 줘야 하고, 타지 않고 잘 구워지는지 지켜봐야 하기에 부담스럽지 않게 상대와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보다 누구랑 먹느냐가 더 중요한 사람은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이 눈앞에 있어도 그 맛을 못 느낄 수 있다.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서 어색하게 마주 앉아 먹는 것보다 조금 시끄러워도 여럿이 둘러앉아 마음 맞는 편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에게 어떤 사람일까. 비싸고 부담스러운 소고기보다는 친근한 돼지고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고민이 있을 땐 언제든 부담 없이 연락하고,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툭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였으면 좋겠다. 가볍게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걱정 없이 웃고 즐기고,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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