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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an Apr 26. 2018

3_낯선 설레임_
'장미의 도시'로 향하는 여정

잃어버린 서울의 여름 (3)_프랑스워킹홀리데이

프랑스로 보낼 짐을 부쳤다.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 안의 카페에서 커피와 베이글로 배를 채웠다. 프랑스에서 당분간 살아보겠다는 나의 갑작스러운 결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는대도 그 중에서 전화를 준 사람들이 있었다. 공항에서 그저 그렇게 어중간한 언어로 비슷하게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답을 하고 고마움도 전했다. 비록 내가 떠날 것을 의심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기분 좋은 말로 대답했다. 


비행은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샤를 드골 공항(Charles de Gaulle Airport)에 도착하자, 어렴풋이 지난 가을날이 생각났다. 그때와는 다르게 파리(Paris) 시내에 들어가는 일이 정신없이 일어났다. 파리에서 사업을 준비중이라는 한국인 남자 두 명과 우연히 동행하게 됐다. 그들은 사실 같은 비행기 안, 바로 옆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파리로 입성하는 열차(RER B)를 타기 위한 공항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시 마주친 것이다. 우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인사를 했다. 늦은 시간에 파리에 도착하는 바람에 나는 그들의 동행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열차 안에서 우리는 파리와 여행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뒤에서 지켜보던 두 명의 흑인여성이 우리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가방을 잘 챙기고 항상 그것을 무릎 위에 올려두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도둑맞을 수 있다고 점잖게 충고했다. 우리 뒷좌석에 앉아 있던 가족들은 재미있다는 듯 우리들을 번갈아 보면서 맞장구를 쳤다. 열 살이 채 안되어 보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있던 남자는 나에게 일본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하고 프랑스어를 공부하러 왔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될 말이 '일본인이세요?' 혹은 '중국에서 왔나요?'일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어쨌든 그는 스위스에서 왔으며 아이들과 할아버지와 파리를 여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상이 무척 좋았다. 


우리는 파리의 북역(Gare de Nord)에서 내렸다. 나는 벨빌(Bellevielle)역으로 가기 위해서 2호선으로 갈아타야했고, 함께 내린 그들과는 방향이 달랐다. 그래도 그들은 나를 2호선 입구까지 바래다주었다.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하고 파리에서 재회할 것을 약속했다. 


다시 만난 파리의 지하철은 낯설었다. 나는 두번째 파리방문임에도 샤를 드골 공항에서 파리 시내까지 오는 지하철을 타본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캐리어를 들고 느리고 힘들게 계단을 오르는 나를 보고 처음으로 도와준 사람은 흑인 청년이었다. 이 후에도 벨빌(Bellevielle)역까지 가는 동안 파리 지하철의 계단이라는 문제를 봉착했을 때마다 도움을 받았다. 커다란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던 청년이기도 했고, 한 손에 신문을 든 머리가 회색빛인 남자도 있었다. 낑낑거리며 한 계단씩 느릿하게 걸어올라가는 나의 모습이 왠만큼 딱해보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들은 나를 도와줄 의무가 없었기에, 매번 고맙다고 힘주어 말했다. 


열차를 갈아타고 역에 도착해 지상으로 나오자, 어두운 길이 보였다. 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길을 따라내려갔다. 지도가 나의 목적지와 현재 위치가 일치한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내 앞에는 커다란 바(bar)와 그 앞에서 연신 담배 연기를 품어대는 젊은이들만 가득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불 켜진 가게와 그 안의 사람들을 힐끗했다. 터키 디저트를 파는 가게로 들어간 나는 처음으로 마주친 손님에게 길을 물었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말했고,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가게 주인이 연신 무성의하게 대답하자 결국 그는 내가 숙소를 찾는 일에 책임감을 느꼈는지 내가 들이내민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 봤다. 우리는 가게밖으로 나와서 약 10미터도 안된 곳에서 숙소를 발견했다. 고마워하는 나의 인사를 그는 무뚝뚝하게 받고는 돌아섰다. 


숙소로 들어서자 일층은 마치 작은 바(bar)같았다. 젊은 사람들이 많은 숙소였다. 세계각지에서 여행을 온 젊은이들이 맥주를 마시고 탁구를 치고 있었다. 이름과 예약번호를 부르고 열쇠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거대한 짐을 앞세워 기어이 엘리베이터앞에 당도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하나의 문을 더 지나자 201호가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너무 굶주린 채로 잠이 들어서인지 새벽 6시쯤 눈을 떴다. 준비를 마치고 7시부터 시작되는 호스텔의 조식을 기다렸다. 조식은 3유로. 나는 커피와 바게트 그리고 시리얼 조금을 우유에 적셔 삼켰다. 그리고는 바게트 한조각을 더 챙겼다. 앞으로 6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툴루즈(Toulouse)'라는 도시로 가야했기 때문이다. 


다시 온 파리에서의 첫 아침식사


프랑스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고 결정했을 무렵, 나는 서울에서 에밀리(Emillie)라는 이름의 단정한 단발머리의 프랑스 친구를 만났다. 당장 파리로 들어가기가 겁이 났던 나는 두번째 프랑스 방문인 만큼 '프랑스 남부를 보고싶다'는 말로 뭉뚱그리며 그녀에게 어디로 갈지를 물었다. 에밀리는 나에게 자신의 고향인 툴루즈로 가라고 했다. 툴루즈는  '장미의 도시'(La Ville Rose)라고 불리는 프랑스에서 네번째로 큰 남부도시이면서 학생도시라고 했다. 실제로 툴루즈에는 대학교가 많았고, 외국인 학생들도 꽤 많았다. 또 자동차로 3-4시간이면 스페인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스페인과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었다. 


툴루즈행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엽서 몇 장을 샀다.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편지를 붙이는 일은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어떤 이에게 손편지를 쓸까, 생각하는 사이 열차 시간이 다가왔다. 갑자기 화장실 생각이 났다. 프랑스는 거리 곳곳에 공중화장실이 있기는 했지만, 서울과는 달라서 시설이 많지 않을 뿐더러 작은 부스와 같은 공중화장실을 제외한 건물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대부분 이용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기차를 타기 전, 안내 역무원에게 열차 안에 화장실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고마워요(Merci)'라고 간단히 말하고 돌아선지 얼마 안되서 그를 다시 마주쳤는데, 사실 내가 머리를 정신없이 양쪽으로 흔들면서 열차 번호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툴루즈로 가기 위해 잠시 멈춘 기차역에서


그는 나에게 '괜찮아요?(C'est bon?)'하고 물어왔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열차표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아무말없이 들여다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그는 나를 열차앞까지 데려다주고는 짐가방까지 플랫폼 위로 올려주었다. 열차 안으로 들어와 좌석을 찾고나자, 방(room) 형식으로 된 열차였다. 모든 좌석이 각각의 방안에 배치된 모양새였다. 내가 먼저 얼굴을 들이밀었고 역무원은 내 뒤를 따라왔다. 방 안에는 안경을 쓴 백인 아저씨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역무원과 잠시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나에게 프랑스 말로 무언가를 물어왔다. 내가 어리둥절해하며 잠시 아무말도 없자, 그는 금방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짐을 머리위의 선반에 올려주었고, 종착역을 말해주면 그때 다시 내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나서도 그는 나에게 몇가지를 친절하게 물어왔고,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내 남자의 여행 동반자가 도착했다. 그녀는 갈색의 긴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었고 무거운 앞머리가 눈썹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크로와상(Crossaint)이나 음료수 등의 간식거리를 그에게 내밀었고 그는 옆에 있던 종이백안에서 잡지와 만화책(Bande Desinée) 몇 권을 꺼냈다. 서로 건네받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이내 조용히 손에 들린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다지 할 일이 없었다. 한국어로 된 읽을 책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잠시 후회했다. 나는 기차역에서 산 엽서를 꺼냈다. 에펠탑과 샹젤리제 개선문 사진이 엽서 한 면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나는 미리 편지를 쓰기도 하고, 노트를 꺼내 끄적이기도 했다. 안경 쓴 신사는 나보다 먼저 내리게 됐다. 그는 약속한 것처럼 나의 짐을 미리 내려주었다. 옆에 있던 여자는 나에게 마침내 예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좋은 여행되세요!(Bon voyage!)'. 그들이 떠나자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갑작스레 텅 비어버린 열차 칸에서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고 복도로 나가 바깥을 구경하고 있는데, 다시 한 여자가 탑승했다. 그녀는 창백하고 작은 맨 얼굴에 마른 몸매를 드러내는 치마와 검정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그녀의 짧은 갈색 머리와 날카로운 콧등에 올려진 안경도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날씬한 다리를 꼬고 앉아 곧바로 책에 집중했다. 그리고 가끔은 초콜릿을 꺼내 먹기도 했다. 나는 그녀와 말을 하거나 눈을 마주치는 일이 없었지만,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결국 내리기 몇 분전에 나는 그녀에게 선물을 하나 주기로 마음 먹었다. 어색함을 먼저 달래보려는 심보로 나는 화장실에 다녀왔고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걸까 고민하면서 커다란 짐가방 앞주머니에서 하회탈과 각시탈 모양의 열쇠고리를 꺼내 주머니 속에 넣었다. 손으로 그것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열차가 흔들리면서 짐칸에 있던 텅 빈 물통하나가 떨어졌다. 우리는 동시에 작은 탄성을 질렀고 덕분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나였는데  그녀가 이야기를 더 많이했다. 그녀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툴루즈에 가는 이유, 왜 프랑스에 왔는지 등을 물었다. 그녀는 내가 프랑스 말로 어렵게 대답해 가는 것을 한번도 재촉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들어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의사라고 했다. 그리고 어린 딸이 하나 있다고 했다. 지금은 프랑스 여러지역의 병원을 다니면서 일을 배우고 있다고도 했다. 그녀는 툴루즈에 살고 있는 친구를 방문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툴루즈는 무척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파리에 살고 있고, 파리를 더 좋아한다고도 말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툴루즈에서 떠나 결국 파리로 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그래도 파리는 역시 아름다운 곳이지라고 어렷품한 생각만한채 온통 붉은 빛의 벽돌로 장식되어 있을 툴루즈를 상상했다. 우리는 함께 종착역에 내렸고 그녀는 나에게 누군가 데리러 왔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고, 그녀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연락처를 나에게 주었다. 마고(Margaux)는 파리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말했고 우리는 작별인사를 했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녀도 나도 인파속에서 모르는 사이가 되었고, 나는 얼른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마중 나오기로 했던 친구가 혹시나 연락을 했을까해서였다. 


에밀리(Emilie)는 나에게 툴루즈에 살고 있는 그녀의 친구 엘렌(Hélène)을 소개시켜줬다. 나는 당분간 엘렌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엘렌(Hélène)은 함께 동거중인 남자친구 세바스티앙(Sébastian)과 나를 역으로 마중나오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또다시 낯선 사람들을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서울에서 떠나오기 전, 나는 스스로 혼자있을 것을 택하고 새로운 만남을 거절해왔다. 그것은 그동안의 내가 살아왔던 태도와는 사뭇 달라서 본인도 적응할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무력감과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이 생경한 장소에서 새로운 이들을 만나야 한다니, 나는 여행이 주는 일종의 용기에 의지해 지상으로 올라갔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진속에서만 봤던 꼬불꼬불한 아름다운 갈색빛 금발을 가진 여자가 상기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챙이 넓은 초록색 모자를 쓰고 검정색 수염으로 기른 남자가 서있었다. 엘렌과 세바스티앙이었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지하철안으로 들어왔다. 엘렌과 세바스티앙은 내가 표(ticket)을 사는 것을 도와주었고 우리는 지하철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툴루즈까지 오는 여행이 어땠는지와 에밀리에 대해서라는지 등의 시시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툴루즈가 어떤 모습일지, 앞으로 그들과의 생활은 어떨지 그것들을 상상한 겨를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들뜬 마음으로 대화에 집중할 없었다. 엘렌은 내일 저녁 그녀의 집에서 작은 파티(la petite Fête)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2017년 4월 1일 


[다음이야기: 엘렌(Hélène)과 세바스티앙(Séba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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