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차가운 현실, 문어와 죽순처럼 매일 하루의 꿈을 키워요
오랜 전 이런 글귀를 본적 있습니다. ‘동네 입구에 금은방이 하나 있다. 어느 시간에 지나가더라도 주인 아저씨는 손님과 바둑을 두고 계셨다. 혼자 있을 때는 바둑 TV를 보거나 바둑 책을 보고 있었다. 문득 이런 의문이 생겼다. 아저씨는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프로 기사가 못 되었을까?’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소위 ‘재무설계’ 라는 공부를 처음 접하던 시절 꿈과 목표에 대한 한 토막 글이었을 것입니다. 요즈음 꿈이 사라진 시대라고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저와 부모님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넓혀가는 것이 소소한 꿈이었고 목표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목표와 꿈을 가지고 삶을 살아내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지만, 요즈음 젊은 직원들에게는 말 그대로 ‘꿈’ 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달 지방에 있는 국립 대학교에서 지인 교수님의 요청으로 ‘재무설계’ 강의를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재무설계’가 무엇인지 질문해보았습니다. ‘돈에 대한 계획’, ‘부자가 되는 방법’, ‘수입/지출관리방법’ 등 여러 대답을 하더군요. 제가 생각한 ‘재무설계’는 ‘꿈이 사라진 시대에 꿈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돈에 대한 계획이 아니라, 삶에 대한 계획 말입니다.
‘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이 분들이 생각났습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였고 현대미술의 거장이었던 피카소, 그는 늘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던 사람으로 유명 합니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멋있는 그림을 그려 당대의 최고의 화가, 최고의 부자가 될 거야”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꿈을 얘기하고 나누었던 그는, 실제로 최고의 화가와 부자로 살았습니다.
콘래드 힐튼을 아시지요? 해외 또는 국내 호텔에서 숙박을 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벨 보이 출신이었지만, 매일 가장 큰 호텔 그림을 자기 책상 앞에 붙이고 호텔안을 어떻게 꾸밀지 매일매일 설계도에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꿈을 구체적으로 그렸던 힐튼은 15년만에 최고급 호텔의 사장이 되고 사망당시(1979년) 미국 185개, 해외 75개의 호텔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10대시절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신이 감독인 것처럼 수 년 동안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나는 미래에 잘 나가는 영화감독이 되고, 내 영화가 전세계에 상영될 거야” 라며 다짐했고 영화감독 꿈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세계최고 감독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꿈이라는 놈이 꼭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누가 그러더군요. 꿈이 존재하는 것은 ‘현실(reality)’이라는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라고요. 꿈을 가진다는 것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바라는 ‘이상’과의 차이를 줄여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문어의 꿈’이라는 노래를 혹시 아시나요? 동요 같은 이 노래 가사를 읽고 ‘꿈’의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사 내용은 문어가 현실이 너무 어두워서 꿈과 상상의 세계에 빠진다는 내용입니다.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단풍놀이 구경가면 나는 노란색 문어, 커피한잔 마셔주며 나는 진 갈색 문어, 밤하늘을 날아가면 나는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는 거”
깊은 바닷속은 우리 현실입니다. 외롭고, 차갑고 무서운 곳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문어는 꿈을 꾼다고 합니다. 그 꿈 때문에 삶의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참 재미 있습니다. 단풍놀이도 가고, 커피한잔도 마시고, 높은 산에도 올라갑니다. 꿈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가 있으니까, 매일 꿈을 꾼다고 하네요. 저는 문어처럼 소소 하지만내 삶을 단단하게 하는 꿈을 키우고 싶습니다.
까뮈는 “삶은 선택과 순간의 총합”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순간순간이 찬란해야 한다고 말했죠. ‘문장과 순간’의 저자 박웅현님은 매일의 삶이 성사 (聖事)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성스럽게 만드는 인생 말입니다. 꿈이요? 그게 별건 가요? 꿈이라는 놈도 하루의 꿈이 모여야 일주일, 한달, 일년이 되고 일생의 꿈이 되겠지요. 그러다 보면 내 꿈을 가로막고 있던 현실의 장애물을 이겨 내는 진짜 내 꿈이 거기에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50대 중반을 넘보고 있는 저는, 매일의 꿈을 꿉니다. 차갑고, 냉정하고 때론 외로운 현실에서 강단에 서면 선생님이 되고, 의자에 앉으면 학생도 됩니다. 책방에 가면 어느새 문학청년이 됩니다. 수고한 하루, 바닐라향이 그윽한 Maker’s Mark 버번위스키 한잔 들면 멋쟁이 아저씨도 됩니다. 일상이 어제보다 오늘이 진보(Progress)되는 그런 꿈을 매일 키웁니다.
대나무 중에 최고로 치는 것은 ‘모죽(毛竹)’ 입니다. ‘모죽’은 씨를 뿌린 후 5년 동안 아무리 물을 주고 가꾸어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해요. 하지만 5년이 지난 어느 날 손가락 만한 죽순이 돋아나면 갑자기 하루에 80cm씩 쑥쑥 자라기 시작해 30m까지 순식간에 자란다고 합니다. 아마도 ‘모죽’은 죽순이 돋아나는 순간까지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매일 하루의 꿈을 키웠을 것입니다.
모죽은 나이테가 없습니다. 과거를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데, 그것은 두꺼워지는 삶보다 단단해지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