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pielraum
May 27. 2024
지금껏 ‘중력’으로 살았지만, 이젠 ‘부력’으로 살아요
온몸에 피가 돌고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물마중’이 됩시다
석양은 도시에 닿아 숨을 거두고, 도시를 삼키는 일몰의 빛은 덧없이 가볍습니다. 겨울은 어둠을 다그치고 도시의 불빛은 초조합니다.
초조함은 불안입니다. 스위스 철학자 알랭드보통(Alain de Botton)은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라고 하더군요. 왜, 우리는 불안의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요? 저는 그 원인이 ‘결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이 결핍되면 불안합니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부재(不在) 시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낍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이 결핍되면 가족이 불안해집니다. 상사와 동료, 가족에게 ‘인정’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불안해집니다. 부(wealth)의 결핍은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지위(Status, 地位)의 결핍은 왜곡된 욕망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결핍이 잉태하여 불안을 낳고, 불안이 장성하여 욕망을 낳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알랭드보통은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라고 얘기했던 모양입니다.
하나 마나 한 얘기인지 모르지만 도적처럼 찾아온 퇴직도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퇴직은 ‘존재의 결핍’이고 ‘존재의 부재’ 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하지 않아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결핍’과 ‘부재’는 불안과 욕망을 꼬드깁니다.
그래서 불안과 욕망은 무언가를 꽉 붙잡고 싶어 합니다. 돈을 붙잡고, 명예를 좇고, 자존심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적당한 돈과 명예, 자존감은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나’라는 존재의 결핍과 부재를 채우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닐 것입니다. 힘을 주고 움켜쥐기만 하면 금방 기운이 빠져 삶이 병들고 사고가 발생할지 모를 일입니다.
여러분은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무엇을 꽉 잡고 있나요? 혹은 직장이라는 바다에서 부지불식(不知不識) 중에 무언가를 꽉 잡고 있는 것은 없나요? 만약 그렇다면 잡고 있는 힘을 조금씩 빼 보기로 해요. 그렇지 않으면 대해(大海)에서 가라앉기를 반복하다 결국 숨을 쉴 수가 없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동안 ‘중력(重力)’으로 살았습니다. 나의 지식, 나의 명예, 나의 지위, 나의 부(wealth)가 사람들을 잡아당겨 모이게 했고 그 힘으로 버티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력(浮力)’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력은 중력(重力)에 반하여 위로 뜨려는 힘입니다. 부력으로 살려면 힘을 빼야만 합니다. 그래야 바다라는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누가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결혼보다 본질적인 것은 사랑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직장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인가? 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움켜쥐고 있어야만 내 ‘일’이 된다면 그것은 진짜 내 ‘일’이 아닐 것이고, 힘을 빼고 무심코 내려놓아도 늘 내 곁에 머물러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진짜 내 ‘일’이지 않을까요?
어느 책에서 해녀 ‘물질’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읽었습니다. 해녀들이 바닷속에 들어가서 해산물을 따는 일을 ‘물질’이라고 합니다. 해녀가 ‘물질’하는 곳은 대부분 미끄럽고 울퉁불퉁한 갯바위주위가 많습니다. 해녀는 물속에서 해산물을 캐고 밖으로 나올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이때 밖에서 해산물을 물 밖으로 안전하게 들어주는 행위를 ‘물마중’이라고 하더군요. 누군가 ‘물마중’을 나와줄 때 해녀들은 온몸에 피가 돌고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고 들었습니다. 퇴직이 불안한 이유는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고 누군가 ‘물마중’을 나와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회사, 상사, 동료, 가족 간 서로 ‘물마중’이 되어줍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의 ‘물마중’이 되어주고 이런 선순환의 과정이 퇴직이라는 사건을 연착륙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당신이 지키는 것이 결국엔 당신을 지켜 줄 것입니다”라고 김창옥강사께서 얘기하더군요. 내가 지켜 낸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만의 공간에서 책 읽고 사색하는 혼자만의 시간? 이것도 지켜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시간과 공간을 오롯이 지켜내면 그 시간이 훗날 나를 지켜 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내가 지켜온 삶의 가치관, 태도가 나를 지켜 줄 것이라 생각하니 그것이 마치 ‘물마중’ 나와준 것처럼 내 몸에 피가 돌면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합니다.
염려, 불안해하지 맙시다. ‘나’만의 여유, ‘나’만의 시간 그리고 ‘나’만의 공간들을 지켜 나가면 인생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에서 ‘아름’의 뜻이 ‘나’를 뜻한다고 합니다. 내가 ‘나’ 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의미라고 하지요. ‘나’ 다움? 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솔직히 별 것 맞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