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의 증상(1)
조바심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다 보니 사람마다 나타나는 행동이 다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보인다.
우왕좌왕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만다
조바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성적 사고가 저하되어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 어렵게 된다. 만일 해결해야 할 일이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인 경우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한 번에 한 가지씩 일에 집중함으로써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모든 일들을 이리저리 떠돌기만 한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다 보니 해야 할 일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고 수박 겉핥듯이 지나쳐버린다. 시간은 시간대로 흘려버리지만 손에 쥐는 성과는 거의 없다. 마치 손으로 움켜쥔 물처럼 시간이 줄줄 새 나가 버리고 만다.
시험을 하루 앞둔 날을 생각해보자. 내일이 코앞인데 공부해야 할 과목은 많다. 국어도 해야 하고 수학도 해야 하고 영어도 해야 한다. 공부할 과목은 세 과목이나 되는데 공부할 시간은 하루밖에 되지 않으니 초조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마음먹고 책상 앞에 앉지만 막상 공부를 하려고 해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른다. 국어책을 폈다 수학책을 폈다 영어책을 폈다 하며 우왕좌왕하다가 겨우 국어책을 펼쳐 든다.
30분쯤 들여다보고 있으면 영어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보던 국어책을 내려놓고 영어책을 펼쳐 든다. 하지만 영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수학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단어 몇 개, 숙어 몇 개 외우는 듯하다가 이번에는 수학책을 펼쳐 든다. 당연히 수학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국어도 걱정, 영어도 걱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어느 하나를 꾸준히 하지 못하고 국어도 찔끔, 영어도 찔끔, 수학도 찔끔거릴 수밖에 없고 결국 세 과목 모두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
내가 잘 아는 동료의 사례를 들어보자. 2014년 10월 어느 날, 그는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작스럽게 그만두었다. 그리고 1년 반 동안 거의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그 기간 동안 겨우 책상 하나 들어갈 만한 작은 사무실에 틀어박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 무렵이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하루 12시간 가까운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지만 그중 제대로 무언가에 집중해서 일했던 시간은 겨우 서너 시간에 불과했다.
서둘러 경제적인 안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그에게는 피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하루빨리 백수생활을 청산해야겠다는 조바심만 있었을 뿐,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면 무려 18개월의 긴 시간이었으므로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렸다면 무언가 성과를 내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그는 주어진 시간을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으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선택과 집중이 안 되었다는 점이다. 안정적으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 때문에 늘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은 모두 하려고 했다. 그도 강의를 하고 책을 쓰고 싶어 했기에 공부를 위해 책도 읽어야 하고, 책을 내기 위해 집필도 해야 했다. 조금이나마 수입을 만들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학에서 강의도 했고, 혹시나 외부 강의나 강연을 할 수 있을까 해서 그 과정을 준비하는 일도 병행했다.
강의를 준비하는 일도 중구난방이었다. 오랫동안 기획 업무를 해왔으니 관련된 내용을 준비하다 가도 협상이 중요하게 여겨지면 협상을 뒤적거렸고, 신사업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면 신사업을 뒤적거렸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뇌 과학도 추가되었고 인문학을 위한 고전 공부까지 추가되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 모든 것들을 마치 널뛰듯 오락가락했다.
모든 것이 조바심 때문이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다 보니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은 많았지만 정작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지 우선순위가 구분되지 않았다. 어느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어 보였다. 하나의 일을 붙잡고 있으면 다른 하나가 중요하게 여겨졌고, 그래서 그것을 붙잡고 있으면 또 다른 하나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도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일로 옮겨가고는 했다.
그렇게 1년 반의 세월을 보내다 보니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책도 몇 권 되지 않고 출판한 책도 없었다. 강의 과정을 개발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끝을 맺은 과정도 없었다. 모두 다 조금씩 발만 담갔을 뿐 끝까지 파고 들어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놓으면 훗날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그것조차 하지 못했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두뇌가 가진 특성 때문이다. 조바심을 느끼게 되면 뇌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변연계에 에너지를 우선적으로 배당한다. 그렇게 되면 전두엽으로 흘러갈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두엽으로 흘러가는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회사에 여러 개의 공장이 있을 때 에너지가 부족하면 불필요한 시설부터 가동을 중단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 능력이 떨어진다. 무언가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집행하고 그 결과를 예상하는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억제하는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감정조절 능력도 저하된다. 이러한 두뇌활동의 변화로 인해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이 일에서 저 일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주어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게 된다. 마치 동네 북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조바심이 큰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첫 번째 특징이다.
쓸 데 없는 짓에 시간을 낭비하고 작은 성과에 만족한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은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한 가지 일에 몰입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하던 일에서 벗어나 자주 딴짓을 하도록 만든다. 산만해지는 것이다. 과제를 하다가 포털 사이트를 열어 관련 없는 뉴스를 검색하거나 전혀 필요치 않은 쇼핑몰을 둘러본다. 책을 읽다가도 딴생각이 떠올라 방금 읽은 내용이 무엇인지 기억할 수 없다. 전화가 오거나 문자가 도착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들여다보거나, 방금 전에 열어본 메일함을 다시 열어 보기도 한다. 쓸 데 없이 자주 물이 마시고 싶거나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책에 눈이 가기도 한다. 언뜻 보면 집중력 장애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결과가 우려될수록 마음을 다잡고 더 열심히 과제에 몰입해야 하지만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지면 괜히 쓸 데 없는 짓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 이유는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해서다. 끝마쳐야 할 일이 있으면 긴장 상태가 되고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때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게임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할 일을 피함으로써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피하는 것인데 이를 기분 회복(mood repair)라고 부른다. 칼레튼 대학의 심리학과 부교수인 티모시 파이킬(Timothy Pychyl)은 당장 눈 앞에 놓인 일을 연기하는 것은 기분을 조절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일종의 보상심리 혹은 상쇄효과로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을 그런 식으로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오랜 시간을 자리에 앉아 있어도 집중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고 쓸 데 없는 짓으로 흘려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도 막상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이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당연히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패턴은 하루 중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절대적으로 짧게 만든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오전 시간이나 이른 오후 시간에는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다가 오후 세, 네시가 되면 그제야 ‘아차’하며 해야 할 일을 찾는다. 하루를 풀(full)로 활용하는 것에 비해 성취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큰 사람들은 그 작은 성취에 만족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쓸 모 없이 흘려보내고 겨우 몇 시간 반짝 집중할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 집중이 끝나고 나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회피’는 나중에 부정적인 감정을 더욱 증가시킬 뿐이다. 딴짓을 한다는 것은 당장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이고 그렇게 미룬 일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첫 학기에 공부 대신 즐거움을 추구한 학생들이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적고 건강해 보인 반면, 두 번째 학기가 되자 그 현상이 역전되었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는 기분 회복으로 인해 편한 마음 상태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누적되면 더 큰 조바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만일 자신이 자주 딴짓을 한다고 느낀다면 집중력 장애일 수도 있지만 조바심 때문일 수도 있다.
실행력이 약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무엇인가에 쫓기듯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지면 의외로 실행력이 약해진다. 해야 할 일을 제 때 하지 않고 차일피일 뒤로 미루거나 흐지부지 없애 버리기 일쑤다. 그 결과 게으르게 보이거나 우유부단하게 보일 수 있다. 게으름은 한편으로 보면 조바심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도 조바심이 많으면 게으르게 보일 수 있다.
해야 할 일이 있는 경우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할애하여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조바심에 시달리게 되면 그 일을 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낭비처럼 여겨져 실행을 주저하게 된다.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뒤로 미루거나 다른 구실을 찾아 미루는 일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아예 처음부터 안 해도 되는 일이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핑곗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출판사에 투고할 책을 쓰는 동안 이제 만 12살이 된 반려견 이슬이의 눈에 문제가 생겼다. 낮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가도 밤만 되면 한쪽 눈이 빨갛게 충혈되곤 했다. 평소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봤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없어 종합병원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이슬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 하니 오가는 시간과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진료시간 등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 시간 동안 책을 쓰는 작업은 당연히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책 쓰는 일을 끝내고 싶은데 글은 마음대로 쓰이지 않아 조바심이 난 상태에서 하루 반나절 혹은 그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오늘은 사람이 많아 힘들 거야. 나중에 좀 한산해지면 가자’
‘별 일 아닐 거야. 나중에 종합검진하면서 같이 진찰해보자’
‘어쩌면 예약을 안 해서 오늘은 진료받기 힘들 수도 있어. 먼저 진료예약부터 하고 내일 찾아가자’
이렇게 이슬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 없는 수 만 가지 이유를 떠올렸지만 알고 보면 모두 조바심으로 인해 행동에 옮길 수 없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것들일 뿐이다. 결국 이슬이의 진료를 뒤로 한참을 미룰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치료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질병은 하루라도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건만 나의 조바심과 그로 인한 우유부단한 결정으로 인해 이슬이의 상태만 더 나빠진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이처럼 조바심을 내게 되면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여우처럼 합리화의 덫에 빠지게 된다.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걷다가 맛있게 보이는 포도송이를 발견했다. 여우는 그 포도송이를 따기 위해 있는 힘껏 뛰어올랐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꽤 오랜동안 포도송이를 따기 위해 열심히 점프를 했지만 여우는 끝내 그 포도송이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러자 여우는 포도송이를 포기하고 돌아서며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저 포도는 시어서 먹기 힘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