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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Jul 07. 2024

[독후감상] 사피엔스_유발 하라리

책을 읽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다시 읽었다.

8년 만이다. 반갑고 또한 새로웠다. 사피엔스의 도약을 이룬 3대 혁명(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에 관한 방대한 내용의 책을 읽어가다가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본 점들을 얘기하고 싶다.


1. 불의 발견과 사용

책의 1부인 '인지혁명'편에서 처음에 불의 발견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사피엔스가 불을 발견하여 사용하면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순식간에 등극했다. 다른 종(種)이 그 자리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에 비하여 너무나 빠른 진행을 거쳤다.


우리 주변에서 갑자기 성공한 연예인이나 사업가나 정치가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심리 증상이 있다. 그건 바로 '불안함을 수반한 두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능을 지닌 사피엔스에게도 아마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과연 이 최고의 자리에서 추락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의혹 같은 것들 말이다. 필요는 결국 공급을 얻었다. 언어를 발명한 것이다.


2. 인지혁명의 실체와 결과

다른 종들의 의사소통에서 사용되는 조악하고 단편적인 파편적 언어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하고 탁월한 언어 시스템과 그에 따른 위대한 창조, 즉 '보이지 않는 허구'를 만들어 내어 집단 간의 강력한 결속과 협력을 가능하게 했다. 이로 인해 사피엔스는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가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


공통으로 공유하는 허구를 공유하고 믿는 집단이 결집하면서 생물학적으로는 최대 150개체 정도에 머물렀던 공동체가 문화적 집단으로 변환되면서 이제 수천, 수 만 명도 결속하는 가능성이 태동하게 된다. 신화를 통해 후대에 사피엔스의 허구에 대한 신념 공동체는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해 먼 훗날 국가와 민족, 종교 집단, 기업으로 발전했다.


3. 몰살

집단 내 인구가 커지면서 결속만 이루어진 것은 아닌 듯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단에서 이탈하려는 무리가 발생했다. 권력에서 밀려났든, 허구에 대한 신념에 회의를 품었든, 아니면 순전한 호기심에 의해서든 삶의 기반이 되는 아프로아시아(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대륙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인 바다로 진출한 특이한 돌연변이들이 호주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디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곳에서는 사피엔스가 없었고 대신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거대한 동식물이 있었지만, 외부에서 침투한 사피엔스의 불(火)과 이미 습득한 허구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결속력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멸종된 것이다.


4. 농업혁명의 과정과 결과

앞서 말한 허구를 공유하며 최대 150명을 넘어서는 공동체를 구성하며 주로 수렵과 채취로 생계를 이어가던 사피엔스에게는 이동과 노동에서 자유로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동시에 지속할 수 있지 않은 경제 활동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을 것이다. 안정을 추구하려는 욕구, 즉 미래를 좀 더 확실하게 보장받고 싶어 하는 바람, 다시 말해 오늘은 배가 부르지만, 내일 사냥과 채집에 실패하면 어떡하느냐는 우울하고 현실적인 전망 말이다. 여기서 현대에 명쾌하게 정리된 유명한 명언이 떠오른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불확실한 사냥이나 채집 대신 농사와 목축을 고안하게 된 사피엔스는 이제 비로소 대규모 인구로 모여서 살아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생겼다. 농업과 목축은 노동집약적 생산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흩어져 살던 집단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수백, 수천 명 규모로 커지면서 질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법률과 제도들이 초기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치안도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잉여 생산의 불공평한 분배에 따라 계급이 발생하면서 갈등이 쌓여 폭발하며 마을이나 도시가 파괴되는 위험을 방지해야 하는 절대적인 필요가 생겼다. 교육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때의 교육이란 개개인의 계몽이나 이성 함양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언어를 통하여 만들어진 허구를 각인시키고 이에 순응하게 만드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5. 교육의 방법 세 가지

(농경/목축) 사회 구성원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조직화하는 질서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게 만드는 세 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1) 실제 세계에서 가치를 구현하는 장치를 만들어라.

2) 개인의 욕망이 상상 속의 질서 안에 부합된다는 것을 각인시켜라. (ex. 현대의 소비지상주의)

3) 개인을 넘어서서 구성원 전체에 퍼져있는 상호주관성을 공고히 하라 (돈, 法, 神, 국가...)


* 화폐(돈)의 경우 최근에 등장한 비트코인은 구성원 전체에 퍼진 신념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6. 농업혁명의 폐해들

사피엔스 인류는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 체계를 고안해서 공동체를 대규모 협력망으로 묶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위계질서, 청결의 법칙, 가부장제 등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었다. 마치 기름진 음식을 먹게 되었지만, 혈액 내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쌓이며 동맥경화를 초래하는 것처럼. 힘의 논리에 따라 약자를 짓밟는 계급 투쟁이나(위계질서), 인종차별을 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나(청결의 법칙), 남성우월주의에 따른 여성 비하 및 성 소수자를 향한 혐오감 표출(가부장제)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특히 최근에 환경 문제와 더불어 젠더 문제는 진보 진영의 필수 의제로 다뤄진다.


7. 전 세계를 단일화하려는 시도들

농업혁명이 마무리되고 과학혁명이 도래하는 시기에 사피엔스 인류는 다양한 문화공동(협력)체를 구축하고 갈라진 세계를 단일화하려는 길을 모색하여 점점 통합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여기에서도 대략 세 가지 방법이 고안되어 실행되었다. 돈(화폐)과 제국과 종교이다.


1) 돈(화폐) 앞에서 모든 인류는 편협하지 않고 보편성을 인정하고 거래를 하게 된다.

2) 제국: 순혈주의는 무의미하다. 모든 인류는 어떠한 형태로든 제국의 후예들로서 동일한 위치에 있다.

3) 종교: 초인적인 신이란 개념은 비록 허구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되면 인간은 단합한다.


8. 과학혁명

과학의 어원은 라틴어 '이그노라무스'(ignoramus)로 '우리는 모른다'라는 뜻이다. 과학혁명 이전의 종교, 정치, 경제, 사회적 질서는 '우리는 해답(신화)을 가지고 있다'라는 태도였다. 입장이 강력하고 공고할수록 결속하는 내부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권위주의에 정면으로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과학의 기본 정신이 무지를 인정하고 시작하는 분야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과학은 그 자체로 혁명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앞서 말한 전 세계를 단일화하는 시도 가운데 가장 취약하고 문제가 많았던 종교의 자리에 이제 과학이 초인간적인 존재로 등극하는 시대가 찾아오게 되었다.


9.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사피엔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나는 이 책이 독자 스스로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라고 밝혔다. 나는 거기에 더해 이 책에서는 결국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사색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종교의 자리에 올라선 지금, A.I를 비롯한 인공지능과 사이보그휴먼을 비롯한 인간 강화와 핵무기를 비롯한 인간 멸종과 우주탐사선을 비롯한 우주 개척 등 사피엔스는 자신들이 멸종시킨 다른 생명체의 자리(시험대)에 스스로를 올려놓았다. 저자가 후기에서 표현한 '신이 된 동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불멸의 생명체가 되어 호모 사피엔스(인간계)를 초월해 버리는 신이 될 것인가, 아니면 빙하기를 지나며 지구에서 멸종되어 사라진 제2의 공룡이 될 것인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 이후에 사피엔스는 과연 어떤 혁명을 이룰 것인가, 아마도 몇천 년 후에(혹은 몇십 년 후에) 누군가 <사피엔스2>를 기술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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