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타비(我是他非) - ‘아빠찬스’와 아버지 이야기
기억할지 모르지만 20여년 전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베스트셀러가 됐던 적이 있다. 공무원 생활을 해온 아버지가 더이상 승진이 어렵자 스스로 은퇴를 결심한다. 직장에서의 한계 상황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버지에게 더 큰 좌절로 다가온 것은 가족과의 단절이다. 자식들에게 더 이상 ‘슈퍼맨’이 되지 못하는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로부터도 박대를 당한다. 그런 아버지가 받은 것은 췌장암 선고였다. 뒤늦게 아버지의 사형선고를 알아챈 가족들은 경주 보문단지 가족여행 등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췌장암의 고통은 참담했고 아버지는 스스로 안락사를 택한다. 소설이 한참 화제가 됐던 계절이 늦가을이었다. 박근형이라는 배우가 아버지 역할로 영화화 되고 신문과 방송은 ‘우리시대의 아버지’를 특집으로 다루며 희생의 코드에 아버지를 끼워 맞췄다.
아버지하면 비교적 최근의 영화 국제시장이 생각난다. 문재인 대통령 가족의 피난 실화가 한 장면을 차지해 화제가 된 국제시장은 여동생을 찾아 뒤따라 오겠다는 아버지가 장남인 아들 덕수에게 남긴 한마디와 노년의 덕수가 남긴 마지막 대사가 압권이다. 덕수 아버지는 흥남부두에서 아들과 헤어지며 당부한다. “내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들을 잘 지키라” 그 한마디를 신앙처럼 간직한 덕수는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갈아 입으며 21세기를 맞았다. 산업화시대의 아버지는 그랬다. 희생과 헌신은 아버지의 두 어깨에 찍힌 문신이었다. 백발의 덕수는 다시 아버지 앞에서 신음처럼 토해낸다. “아부지 내 약속 잘 지켰지요….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요. 아부지가 되게 보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시대를 산 아버지들은 슬쩍 눈물을 훔쳤다.
장황하게 아버지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아버지는 이제 ‘라떼’가 됐다. 아버지는 가고 아빠의 시대가 된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 세대는 아버지라는 단어에 발목이 잡혀 있다. 바로 그 아버지가 알고보니 ‘아빠’였던 이야기가 흉흉하게 세간에 떠돈다. 정의로운 아버지를 자처해온 곽상도 이야기다. 검사장 출신이자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저격수 역할을 자처해 온 인물이다. 문 대통령의 아들부터 딸과 사위까지, 곽상도의 레이더는 오로지 한놈판 팬다는 경구를 실천하듯 청와대 내부자거래에 온 신경세포를 집중했다. 설치미술가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는 주된 표적이었다. 핵심은 문씨의 예술적 재능보다 ‘아빠 찬스'의 둔갑술이 돋보인다는 이야기였다. 부동산부터 조국까지 ‘불공정'에 분노하는 청년세대들은 곽상도의 입을 주목했고 그의 한마디는 내로남불의 새로운 버전으로 기록됐다.
아뿔싸, 곽상도의 입이 삐쭉거리기 시작했다. 아들이 화천대유로 천화동인 한 사실이 까발려졌다. 이거야 원 체면이 말이 아니다. 보도가 나가자 아버지 곽상도는 발끈했다. 전형적인 ‘아빠 찬스' 로 보이지만 ‘내 아들은 문제가 없다'고 속옷 깊숙이 숨겨둔 ‘내로남불’ 카드를 번쩍 쳐들어 보였다. 50억 원의 ‘수상한 퇴직금'이 산재위로금이든 특별퇴직금이든 그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화천대유 해보자고 입사 권한 것도 아빠라는 아들의 고백이 더 신선하게 들리는 상황에서 곽상도는 여의도를 떠나라는 대성통곡이 진동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사회에서 장난스럽게 시작한 비꼼의 신조어가 공용어휘로 등극한 대표적인 경우가 내로남불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내로남불은 우리사회의 공식 어휘다. 사전은 친절하게 뜻풀이도 해뒀다.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내로남불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이다. 간통의 단죄가 횡행하던 시절, 내로남불은 불륜의 상징어가 됐고 정치판에 혼용되면서 단어의 수준이 업그레이드 됐다. 시중에 떠돌다 여의도에 입성한 셈이다. 그 공은 바로 정치인들이다. 국회 청문회가 시작되면서 다운계약서나 위장전입은 기본 메뉴가 됐고 이중국적이나 투기의 기술은 옵션이 됐다. 내로남불의 끝판왕은 정치인만이 아니었다. 어떤 재판관은 6차례나 위장전입을 하고 가짜 계약서까지 만들어놓고도 말간 얼굴로 국민들 앞에서 임명만 해주면 바르게 살겠다고 고개를 쳐들었다. 교육의 수장이 되려는 자가 스스로 비교육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해온 사실이 드러났지만 ‘그때는 어쩔수 없었다, 친정부모나 배우자의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이야기로 묻혀가길 원했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내로남불의 숙주는 또다른 내로남불을 먹이로 몸집을 키웠다. 내로남불이 주류가 돼 이만큼 몸집이 커진 책임은 바로 우리다. 우리가 묵인이라는 거름을 열심히 묻어준 결과다. 정치는 불륜의 현장을 들켰는데도 아차, 한순간의 일탈이라고 눈을 질끔 감는다. 그 눈을 뜨게 만들어야 하는 책임을 유보한 결과가 오늘이다. 책임이 실종되자 내로남불이 돌변한다. 몇몇 비난의 손가락질에 대고 확대 재생산은 정치공세라며 오히려 눈을 부라린다. 당장 야권은 ‘박영수 특검의 딸’이 도배된 신문을 펴들고 “우리만 그렇나 뭐!”라며 입꼬리를 치켜든다. ‘아빠찬스’를 보여주지 못하는 아버지들은 그저 “육시랄, 쓰레기 넘들…”이라며 푸념을 할 뿐이다. 그런 아버지들도 꼬물거리는 아들과 딸들에게 ‘아빠찬스’ 한번 제대로 사용해 보고 싶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