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꿈꾸던 괴짜 수포자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거머쥐었다. 한국고등과학원 허준이 석좌교수다. 허 교수는 이른바 수포자(수학 포기자)였다. 시인을 꿈꾸며 하늘의 별을 헤던 그의 눈빛이 수학으로 향한 것은 대학 졸업반 때다. 필즈상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곧바로 떠오른 영화는 맷 데이먼과 로빈 윌리암스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놓은 천재 이야기 '굿 윌 헌팅'이었다. 이 영화에서 맷데이먼은 MIT 공대 청소부로 일하면서 필즈상 수상자인 제럴드 랭보 교수의 퀴즈같은 수학문제를 한순간에 풀어버린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는 말은 거짓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영화를 볼 땐 99%의 영감과 1%의 노력이 천재의 조건이라 생각했는데, 허 교수의 이야기나 또 다른 천재들의 이야기를 엿볼 때마다 어쩌면 99%의 노력이 천재를 낳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완전히 다른 사례의 천재 이야기는 고산자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는 발바닥이 닳도록 대한의 땅을 누빈 끈기의 사나이다. 30년 넘게 전국을 답사한 결과물이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다. 대동여지도의 여(輿)는 수레다. 수레에 땅을 싣고 다닌다는 여지(輿地)는 결국 만물의 토대다. 30년 쯤 대한의 산하를 밟고 다녔으니 땅의 근간을 꿰뚫고 손바닥에 대한을 올렸음을 외칠법 하다. 아이큐 테스트는 안해 봤지만 고산자는 틀림없이 99% 노력형 천재다.
조선 중기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은 대한의 땅덩어리 위에 있는 모든 지역을 구역별로 정리해 놓은 지리서다. 예전에는 지리서(地理書)를 모두 여지서(輿地書)로, 지도(地圖)는 으레 여지도(輿地圖)라고 불렀다. 그만큼 여(輿)에는 깊고 넓은 뜻이 담겼다. 고서 곳곳에서 만나는 울산의 땅과 풍물 이야기나 사람과 생활의 이야기는 가슴을 뛰게 한다. 하지만 드물다. 아직 공부가 부족한 탓에 고서에 등장하는 울산 이야기는 한 주먹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은 다를까. 천만에다. 꽤 풍부한 서적을 진열해둔 책방에 가도 울산의 산하와 풍물에 대한 이야기는 빈약하다. 간간히 드문드문 만나는 책 속의 울산 관련 부분이 이산가족 만나듯 눈물겨울 정도니 괜히 속상하고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그나마 2011년에 나온 한삼건의 울산택리지 정도가 벌겋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서점 한귀퉁이에서 반기지만 일제강점기 이후의 안타까운 희생의 기록이 우리를 더 속상하게 만든다.
올해 초 첫 태양을 간절곶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고산자까지는 못돼도 힘 닿는 데까지는 걸어보자는 무모한 다짐이었다. 식구들도 의외라는 반응이다. 신불산 정상에서 119를 부른 낯 뜨거운 경험치에 '걸어서 고성까지'를 외친 아비에 대한 불신이 깔린 눈빛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해파랑길 770Km의 대장정을 지난 6월말 상반기 목표지점까지 마무리했다. 첫 목표는 오륙도에서 호미곶까지 해파랑길 14코스다. 이 코스는 대한의 동남쪽 둔부를 휘감아 오르는 200Km의 넘실거리는 바닷길이다. 신암바다 해안길 4코스부터 정자까지 10코스가 울산을 가로지른다.
울산이라는 땅은 참 오묘하다. 지구본을 위에서 바라보면 울산의 절묘한 장소성이 두드러진다. 지도 한 장 들고 울산의 가장 아랫도리부터 한발짝씩 걸어보면 안보이던 것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울산의 바닷길을 걸으면 감탄과 회한, 절망이 어우러진다. 한반도의 동남쪽 척추의 아랫도리를 받치고 있는 울산은 천혜의 지리적 요충지다. 대한의 출구이자 대륙의 입구였던 울산이기에 선사문화의 원류가 이 땅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울산처럼 오래된 과거가 퇴적암처럼 켜켜이 쌓인 도시는 드물다. 울산만 그렇나, 외면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바로 위의 포항은 1,000년 항구였고 바로 아래 부산은 태평양으로 나가는 국제항 아닌가. 그런 항구를 옆에 두고 울산만 절묘하다 이야기하는 것은 '울뽕' 아니냐고 정색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포항은 오래된 항구였지만 고대의 배들이 안전한 항해를 하기에는 거친 바닷길이었고 삼한과 왜, 그리고 동북아 해안길로 나아가는 거점으로는 항만 인프라가 부족했다. 부산은 물론 엄청난 국제항만이지만 근대의 일이다. 부산항이 고대와 근대, 조선조까지 활발한 무역항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격적으로 틀을 갖춘 것은 한국전쟁 이후의 일이다. 삼한의 중심인 신라의 수도를 품은 울산은 서라벌의 외항이라는 특별한 자격 때문에 1,000년전 이 땅에 최초로 만들어진 국제무역항을 가졌고 그 항만이 만들어낸 인적 물적 교류의 역사가 융합의 문화를 그물처럼 엮어냈다.
돌이켜보면 서라벌이 삼한일통을 이룬 뿌리도 울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울산은 서라벌이 존재하기 수천년 전부터 다양한 인류의 보금자리로 자리했다. 그 출발은 지구의 기후변화였다. 대륙의 북쪽 바이칼 주변에 모여살던 여러부류의 북방인류가 빙하기를 피해 남으로 이동했고 그 일부가 찾아낸 최적의 장소가 울산이었다. 태평양 적도부근에서 바다와 함께 한 또다른 무리의 인류는 이미 뜨거워진 지구의 중심을 벗어나 북으로 이동했고 그 한 무리는 대륙의 입구, 울산에서 해양문화를 확장하며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가던 시기였다. 바로 그 북방인류와 남방인류의 교차점이 울산이었다. 풍요의 땅은 침략과 노략질의 대상이었고 문화의 발원지였다. 선사와 고대문화의 뿌리였기에 오늘날에도 팔도의 사람이 공존하고 다국적 시민이 함께하는 글로벌 도시가 됐다. 지금의 울산은 조국 근대화의 산업수도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융합하는 첨단도시로 웅비를 꾀하지만 그 뿌리는 이만큼 엄청난 역사성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들을 울산여지도에서 풀어볼 생각이다. 울산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코너가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