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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오 May 10. 2023

울산여지도 蔚山輿地圖  6

이수삼산, 언젠가는 왕이 나올 땅


여름이면 울산을 관통하는 태풍으로 태화강국가정원은 물난리를 겪는다. 국가정원 지정 이후 해마다 물에 잠기는 일은 반복적인 현상이다. 자맥질하는 반구대암각화에 익숙한 울산인들에게 태화강이 넘실거리는 풍경은 익숙하다. 그 물길이 하류로 이어지면 이수 삼산(二水三山)과 만난다. 오늘 울산여지도가 조망할 삼산벌이다. 이 일대는 신정동 일부와 달동 여천동까지 품은 땅이다. 


 오래전 도사 한 사람이 울산 땅을 밟았다. 울산의 진산 문수산에 올라 사방을 살피고 남산 열두 봉우리를 밟다가 은월봉에서 발길을 멈췄다. 지금의 달동 방향을 응시하던 도사는 거침없이 갈대숲을 헤치며 벌판으로 나아갔다. 사방을 살피던 도사는 쇠말뚝 하나를 꺼내 냅다 뻘 속에 꽂으며 "여기가 왕생혈(王生穴)"이라 외쳤다. 말뚝이 땅심을 굳혀 들판이 되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바로 그 혈자리 부근이 '임금이 날 곳'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 때부터 삼산벌은 '왕생이 들'이 됐다. 왕생이 들은 예로부터 '두 줄기의 큰 강과 세 봉우리의 풍광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해 '이수삼산(二水三山)'이라 불렸다. 여기에 도사의 혈자리 서사(敍事)가 보태져 언젠가는 반드시 임금 하나쯤 나올 길지(吉地)라는 영문도 모르는 소문이 풍설로 돌았다. 


 삼산은 땅이 질척거린다. 태화강이 평상으로 펼쳐지는 지형이다. 울산의 땅 형세는 바탕이 형산강 구조대로 깔려 분지형을 이루고 풍수지리상 양기 명당(陽基明堂)의 이상적 자세를 갖추고 있다. 이른바 동평(東坪), 남저(南低), 서북고(西北高)의 형태다. 이 구조는 한반도의 전형적 명당 구조로 삼태기 형상이라 부른다. 바로 그 삼태기의 한 가운데 아홉 마리 용을 위한 소반이 차려진 땅이 삼산이다. 여기서 아홉 마리 용은 다섯 봉우리 사이의 네 골짜기가 용의 형상으로 동해로 내달리는 지세를 표현한 구룡반취다. 다섯 봉우리는 고헌, 가지, 신불, 간월산과 태백준령의 끝자락 무룡산이며 그 사이로 흐르는 수맥이 외황 회야 여천 태화 동천강 물줄기다. 


 울산 최초의 인문지리지 학성지(鶴城誌)에 삼산은 영험한 땅으로 기록돼 있다. 전설처럼 전하는 세 개의 봉우리는 높이가 10여장(어른의 신장이 1장(丈))에 봉우리 세 개가 열을 지어 서 있고, 삼면은 바다와 진펄이라고 했다. 염전이 사방에 펼쳐져 소금을 만드는 사람 수백 호가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바로 그 삼산 봉우리에 서면 염전과 개펄, 태화강과 대숲이 장관이었다는 전언이다. 삼산평야를 따라 태화강과 동천이 석양에 물든 형상은 울산만 전체를 황금 덩어리로 타오르게 만들어 울산이 태양의 땅 북방민족의 정착지였음을 웅변해 준다. 바로 그 삼산은 지금 학성교 아래 아파트 단지부터 돋질산까지 이어졌다. 조선 성종 12년(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삼산(三山)은 자라 모양을 하고 있어서 자라 '오(鰲)'자를 붙여 '오산(鰲山)'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이래저래 영물이 많은 땅이다.


 삼산은 조선 숙종과 영조 때는 신리(新里)라는 단일 마을이었다. 정조 때 신리와 삼산 두 개 마을로 나뉘었다가 1914년의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 삼산리(三山里)로 합쳐졌다가 달동으로 흡수되는 부침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995년 달동과 분리돼 삼산의 원래의 이름을 찾았다. 삼산은 북쪽으로는 태화강을 경계로 하고 있다. 태화강 건너편의 중구 옥교동과 학산동과 학성동, 반구동, 명촌동과 마주 보고 있다. 태화강을 잇는 다리로는 번영교와 학성교, 명촌교가 지나고 있다. 서쪽으로는 번영로를 따라 신정동과 달동에 접해 있다. 번영로와 함께 울산의 주간선도로인 삼산로를 따라 달동과 나눠져 있다. 남쪽으로는 여천강을 경계선으로 여천동과 접해 있다. 


 삼산이수라 부를 때 이수는 바로 태화강과 여천강을 말하지만 지형상 태화강과 동천을 이수라 우기는 이들도 있다. 삼산의 위치로 미뤄 볼 때 이수는 마지막 봉우리 돋질산과 이어지는 여천강이 맞다. 삼산평야 한가운데 자리잡은 삼산의 수난은 일제강점기 때 시작됐다. 3개의 봉우리 중 2개는 일제가 비행장을 만들며 갈아엎었다. 한반도 최초의 비행장이다. 여기서 일본으로 직항로가 열렸다. 


 마지막 남은 돋질산은 울산의 안산(案山)이다. 풍수에서 안산은 길흉의 핵심이다. 말 그대로 편안한 형상의 산을 말한다. 땅의 귀함과 장소의 영험성을 드러내는 풍수의 심장이다. 그래서 풍수에서 안산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의 집 앞에 적절한 형상으로 위치해 있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안산의 조건을 갖춘 택지를 선택하면 사람의 후천적 운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한다. 마치 후원자와 같이 운을 더해주는 산이라는 이야기다. 바로 그 돋질산은 돼지의 주둥이가 북쪽으로 튀어나온 듯 자리해 길상으로 여긴다. 형상은 투박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울산의 주산이라 할 함월과 무룡, 문수산이 모두 다소곳하다.


 여기서 팁 하나. 왕생이 들에서 왕이 나왔을까. 혹자는 대마도 소왕국의 뿌리를 왕생이들과 연결하지만 근거가 부족하다. 영남알프스와 내부의 문수, 함월, 무룡의 진산, 그리고 돋질산의 안산 지세는 왕의 기운이 충분하다. 그 왕이 재복이든 권세든 학문이든 어느 한자락으로 드러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 부활하는 울산의 아기장수가 곧 기지개를 켤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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