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기획 입문기
당장의 힘든 기억도 모이면 하나의 인사이트가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쓰는 글.
2018년 7월 기획직에 첫 입문하고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거치다가 거의 2년 만에 커머스 사이트 기획을 맡게 되었다.
IT 기획의 꽃은 커머스, 금융, 그리고 보험이었나.. 아무튼 이런저런 정책이 모두 얽히고설켜있는 플랫폼이다 보니 그런 프로젝트를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엄청 큰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어깨 넘어 들었었다.
사실 다른 쪽은 몰라도 커머스는 개인적으로 장벽이 높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고? 맨날 쓰니까.
당장 생필품이 필요할 때 쿠팡을 켜서 로켓 주문을 하고, 출근길에 지그재그 앱을 눈팅하면서 사고 싶은 옷을 장바구니에 담(아만두)고 업무 중 짬이 나면 카카오 메이커스에 뭐 신박한 상품이 뜨진 않았나 한 번쯤 둘러보고, 자기 전에 오늘의 집에서 우리 집 분위기를 바꿀만한 소품이 있으면 고민하다 지르고.
평소에 쓸 때, 난 기획자니까- 하며 잘 되어 있거나 신박하거나 불편한 ux 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잘 캐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막상 백지에 와이어프레임부터 짜려고 보니 모든 ui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특정한 타겟을 대상으로 특정 브랜드가 추구하는 목적에 맞게 화면을 구성하고 어떠한 콘텐츠들이 나열되면 좋을지를 기획해야 하는데
일단 특정한 타겟에 대한 이해도도 낮고. 추구하는 목적은 제안서에 명시되어 있으니 알긴 알겠으나 이것에 맞는 화면 구성이 어떤 거일지는 판단이 필요하다. 콘텐츠도 마찬가지이고. 특히나 정해진 기간 내 개발 공수도 고려해야 해서 꿈과 희망이 가득 담긴 신박한 플랫폼을 기획하기 어렵다.
아니, 할 수 있어도 한 화면이 구축되기 위한 유관 부서의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가장 효율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이 무언지 판단된다면 어렵진 않을 것이다.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를 찾는다면 굉장히 많은 핑곗거리가 있을 텐데,
그걸 찾는다고 변하는 건 없고 주어진 일은 해야 하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제 제안서만 보고 와이어프레임 초안 작업만 밤 12시까지 했다.
물론 중간중간 수석님의 피드백 과정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는데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서 몸은 고되어도 성과는 있었다.
콘텐츠의 구성, 전시 순서, 전시 방법 등등 내가 그냥 눈에 익숙하거나 벤치마킹을 하다 ‘어? 이거 괜찮은데?’라고 생각이 든 것들을 짜깁기한 걸 기가 막히게 눈치를 채신 건지 계속해서 근거를 물으셨다. 당연히 답변을 할 때 막혔고, 그 논리와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짱구를 굴렸지만 큰 수확은 없었다.
제안서에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에 한해서 초안을 작성하고 바로 오늘 아침 고객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구체적인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방향성도 나름 명확해졌겠다, 전날 만들어둔 초안을 디벨롭해서 컨펌을 받아보니 도루묵이었다.
이유인즉슨,
1. 화면 구성 자체가 표현 방식만 다를 뿐이지 고객이 말한 것들을 다 녹이지 못했다.
2. 프로젝트 일정 내 작업하기엔 개발 공수가 큰 건이 포함되어 있다.
3. 각 영역의 논리가 부족하다.
세 가지를 합쳐보면,
고객이 말한 요건이 잘 녹여진 화면을 구성하되, 일정 내 작업이 가능한 ui 중, 사용자가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ux를 기획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지금 서비스를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커머스들이 이를 표현한 것이겠지.
이렇게 정리해보면 당연한 것들이고 평소에 내가 쓰던 대로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막상 와이어프레임을 그리면 엉망진창이 되는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당연한 것 그리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내지는 새롭게 보기의 관점이 필요하다.
평소에 시간 남을 때 기존 사이트들 분석도 해가며 경험치를 쌓아 둘 걸...라는 후회를 한 3초 동안 했다.
뚝딱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생각보다 쉽게 끝나지 않아 자존감이 순간 떨어졌다. 다행인지 아닌지, 수석님이 내가 초안 잡아놓은걸 보내면 보완을 해 볼 테니 내일 와서 어떤 게 달라졌고 어떤 걸 고려했는지 공부해보라고 하신다.
앞으로 내가 나아갈 방향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기획을 바라보는 연습,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탄탄해진 후 디테일을 높일 수 있는 것들 위주로 퀄리티를 높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잡았다.
지금 현재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작은 요소들 - 즉 평범한 ui에 반영해보면 나름 트렌디해 보이는 것들 - 에 꽂혀 마구잡이로 지은 집에 장식에만 신경 쓰는 중이라고 판단했다. 탄탄한 기반이 없으면 아무리 힙한 공간이어도 당장 무너질 수 있는 위험 지역이 되기에 거시적 관점으로 다가가 봐야겠다.
저녁 9시에 마지막 컨펌을 받고 너무 우울해서 눈물이 날 뻔했지만 글을 써보니 생각 정리가 되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도 되니 신중한 걸음을 내딛자고 다짐하며 글도 마무리 오늘 하루도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