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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l 24. 2022

보수적인 회사의 UXer 생존기

4년차 주니어 기획자의 회고록

나는 이제 갓 4년차, 그러나 세번째 회사이다.

첫 회사는 9개월, 두번째 회사는 2년 6개월만에 그만두고 바로 이직하여 지금의 회사로 왔다. 이직 사이에 한 3주정도 텀이 있긴 했다.


나의 커리어 조각모음의 시작


첫번째 두번째 회사 모두 에이전시에서 UX 기획업무를 맡아 하다가, 

산출물을 내고 나면 사용자 피드백은 커녕 회고할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달리는 바람에 

내 기획이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검증할 기회가 없었다. 

클라이언트와 사내 의사결정자들의 마음엔 들었을지 몰라도 사용자 마음은 모르니 

반쪽짜리 기획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 회사로 이직했다. 자체 서비스가 있고, 오프라인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나름 규모가 있어서 어느정도 체계적으로 GA를 분석하며 사용성 테스트를 겸할 수 있는 그런 곳. 인 줄 알았다.


이직한지 약 10개월차가 되어 이런 보수적인 회사에서 내가 어떤 걸 경험했고 배웠는지 기록하려한다.


솔직히 네거티브한 내용이 좀 더 많다. 어쩔 수 없다.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적은 것이므로 사실과 다를 순 있지만 팩트입니다.)

(사바사, 팀바팀을 전제로 합니다.)


1. 쉽게, 쉽게, 쉽게!


이 회사에서 제일 많이 느끼고, 배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단어 하나부터 UI 컴포넌트 한 요소까지, 

UXUI 프로젝트시 자주 쓰이는 단어나 용어를 썼다간 바로 퇴짜맞았다.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약 3년동안 기획을 하며 온갖 문서를 다 만들었다. 내부 공유용 리서치 문서부터 고객사 대표님 보고용 문서까지. 덕분에 장표 제작에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보노보노를 이길 순 없지


하지만 에이전시의 클라이언트 보고용 문서와, 회사 내부 의사결정권자를 위한 보고는 좀 달랐다.


에이전시에 있을 때는, 좀 [있어] 보이는 말을 많이 썼다. 

지금 회사에선 있어보이고 나발이고 바로 머리에 꽂혀야 된다.


예컨대 이런것

에이전시에서 Painpoint를 뽑을 때,   

화면 UI가 일관되지 않아 정보를 인지하기 어렵고 다음 단계를 고민하게 됨


이렇게 썼다면, 이 회사에서는   

목록과 상세 정보가 달라서 헷갈림


이렇게 초초초간단으로 적도록 훈련받았다.


지시를 내린 팀장님 왈, 말부터 어려우면 말을 해석하는 것 부터 시작인데, 

그렇게 되면 거기서 이슈를 종료해버릴 여지가 크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자는 전략이었다. 


이런 특성에서 내가 배운 점은, 어떻게 보면 실무를 하며 UXUI 용어가 아닌 심플하고 직관적인 사용자향의 언어를 배울 수 있었달까. 장점이라하면 장점이겠다.



2. 같은 회사 내, 같은 조직이라고 같은 편이 아니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 이 회사는 근속년수가 굉장히 긴 편이다. 오? 그만큼 다니기 좋은 회사인가? 싶었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고, 이 글에선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생략하겠다. 

에이전시를 다닐 때엔, TFT가 UXUI 설계 및 디자인은 물론, 카피 하나하나까지 고민하고 이미지는 어떤걸 셀렉해야할 지 고민하면서 내가 기획자인지 마케터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


이 회사의 서비스 앱 관련 부서는 UXUI (우리 팀), 기획팀, 마케팅팀, 이커머스팀, CRM팀 등등 이렇게 세분화 되어있다. 그래서 두근두근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우리 팀은 고객 경험에 집중하고 짜잔! 


이건 정말 동화 속 이야기였다. 


10개월차의 눈으로 봤을 때는 

협업해서 우리 서비스를 쓰기 좋게 만들어야지. 라기 보다는

우리팀 KPI 달성해야되는데, 이거랑 저거랑 버무려서 올리면 되겠다. 의 성격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저쪽 팀에서 요청해온 것들의 설계를 할 때

이게 과연 사용자를 위한건지, 본인 팀 실적을 위한건지 모호할 때가 잦다. 


다행이도 우리 부서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신 전무님은 사용자 경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계셔서

우리 팀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주고 계시다. 


덕분에 미운오리새끼가 된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3. 소속감은 직장생활에서 생각보다 굉장히 큰 요인이다.


바로 위 언급된 미운 오리 새끼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직하고 첫 몇 달은 그저 적응기이기 때문에 소속감이 덜 생기는거라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1년이 채 되지 않아 긴 시간은 아니지만 

도무지 '우리' 회사 가 입에 안 붙는다.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소속감이 안 든다.

하지만 서비스에는 '우리' 서비스가 붙는다. 조직보다는 서비스에 애정이 좀 더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어떤 느낌이냐면, 구두 쇼룸에 갑분 나타난 운동화 느낌이다.

아니 어쩌면 신발이라는 같은 카테고리가 아니고, 신발과 커피 이런 것 처럼 아예 관련성이 없는 느낌이다.


어쨌든 개인과 개인이 만나 조직을 이루고 문화를 형성하는거라 생각하여

그 '개인' 들 에게도 선뜻 마음이 안 열리는 것 같다.

이건 온전히 나의 선입견이라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이긴 하다.


그래도 그 개인들과 일을 할 때 기획안을 받고 '이건 왜 이렇게 하신거에요?' 라고 의도를 물으면


그 : 아.. 팀장님이 이렇게 하라셔서요.

나 : 이렇게 하면 오히려 사용자 동선이 꼬여서 복잡해질 수 있는데 이러저러하게 수정하는건 어떠세요?

그 : 아.. 팀장님께 여쭤볼게요! 

(잠시 후)

그 팀장 : 아니~ 이게 왜 꼬이는거에요?

나 : 네?

그 팀장 : 나는 이렇게 나오는게 더 좋을거같은데? 직관적이잖아!

나 : A 케이스에선 그럴 수 있는데, 

그 팀장 : 난 잘 모르겠고~ 이게 더 편할거같으니 이렇게 갑시다 오케이?

나 : 

탄수화물 그만~!

보수적인 회사의 수직적 구조에 UX가 만났을 때의 상황이다. 

10개월간 나와 우리 팀 동료들이 겪었던 일을 버무리자면 저런 상황이 8할 이상이다.


우리 팀은 항상 다른 팀장님의 의견에 반(反)하는 팀이라는 포지셔닝이 되어

눈엣가시의 존재가 된 느낌이긴 하다. 실제로 뒷담화 아닌 뒷담화 하는 것을 듣기도 했고.


소속감 이슈는 계속해서 악순환을 그려가는 것 같다.




조직에 융화되어 가는 것도 개인의 역량이고 몫인 것도 맞다.


3년전 느낀 '세상에 완벽한 회사는 없다' 에서 처럼 나와 100% Fit 한 곳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고

혹시나 찾았다면 정말로 운이 좋은거라고 생각한다.


100% 맞지 않더라도, 사실 회사가 나에게 맞추긴 어려우니 내가 맞출 수 있는 데까지 맞춰가며 나와 회사의 시너지를 높이는 방법을 강구해야하는데 현재 회사에서 그럴 가능성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 


솔직히 이 글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글은 아닐것이다.


어떤 사람이 본인이 소속된 회사의 네거티브함을 쏟아내는데 어느 누가 좋아할 것인가.

글을 적으면서도 살짝 - 아 나중에 포폴에 브런치 url도 넣을건데, 괜히 긁어 부스럼인가? - 이런 생각이 들긴 한다. 


짧게 말해, 내 얼굴에 침 뱉는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0개월 8일 경력의 나는 지금 이런걸 경험하고 있고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 기억하고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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