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역사와 권력을 직접 마주한 첫 여정
3월 28일 (토) 여행의 첫째날
미국에 파견된 주재원으로 지난 1년 9개월을 보내왔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3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지난해 말부터 미국 생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동부여행을 추진해왔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대장정이었다.
우리 가족은 3월 28일 LA 웨스트할리우드에 위치한 집에서 국제공항(LAX)에 향했다. 점심 식사는 공항에 있는 우마미 버거로 해결했다.
LA에서 6시간여 비행기를 탔을까. 눈앞 화면 지도위에 '곧 뉴욕 도착 예정'이라는 표시가 보였다. 40년 이상 갈망하던 뉴욕 땅을 드디어 밟는다는 생각에 흥분되는 느낌이 들었다. 창가에 앉은 딸은 내게 핸드폰을 건네 달라고 얘기했다. 딸이 찍은 뉴욕의 야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우리 가족은 설레는 마음을 가득안고 퀸스에 있는 JFK 공항에 도착했다. 다음 날부터 시작될 동부투어를 위해 뉴저지에 있는 숙소에 가려면 우버를 타야했다. 우버비는 180달러로 살벌했다.
우버 드라이버는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 가족에게 관심이 있는지 여러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고 파키스탄 이야기, 인도이야기, 뉴욕의 우범지대와 갱 이야기 등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버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곳 미국에 와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 동남아를 비롯해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또 한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열심히 살고 있겠지. 이제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국적이 정말 다양해진 것 같다.
뉴욕에 초행길인 나는 뉴욕과 뉴저지의 거리가 이렇게 먼지 몰랐다. 우리는 거의 자정이 다 돼서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우 피곤했다.
3월 29일 (일) 여행 둘째날
아침에 숙소에서 투어 가이드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1961년생인 여행사 대표였다. 나이에 비해 흰머리도 없고 상대적으로 동안인 외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풍기는 외모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저는 태권도를 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투어는 워싱턴DC를 거쳐 나이아가라, 보스턴, 뉴헤이븐, 그리고 뉴욕으로 향하는 장장 2,000키로미터의 대장정이다. 우리는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7시에 워싱턴DC를 향해 떠났다.
"이곳이 바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델라웨어입니다"
나는 뉴스에서나 보던 델라웨어를 실제로 지나고 있었다. 나도 바이든 전 대통령이 수십년간 델라웨어에서 정치를 했다는 정도외에 다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바이든 웰컴 센터'라는 건물에 들러서 용변을 해결했다. 건물 안에는 바이든 전 대통령 내외가 다른 정치인들과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잠시 후에 볼티모어라는 곳을 지날 건데요. 전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도시 중 하나입니다." 가이드가 말했다. 실제로 멤피스와 디트로이트 다음으로 범죄지수가 높았다.
가이드는 지형적 특성도 설명했다. "서부는 도로변에 나무들이 많지 않잖아요. 국립공원에만 많고. 동부의 특징은 길가에 나무들이 빽빽하게 있다는 점입니다." 나 역시 서부에서 2년 가까이 살고 수많은 국립공원을 다녔기 때문에 곧바로 서부와 동부의 지형적 차이점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3시간30분 가량을 달렸을까. 드디어 우리는 워싱턴DC에 도착했다. DC는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사이에 있는 연방 수도다. 가이드는 "여러분 워싱턴 DC가 무슨 뜻인지 아나요? 'Distric of Columbia'로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된 수도를 뜻하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오늘 벚꽃 축제가 있는데, '노킹스(No Kings)' 시위까지 겹쳐서 차가 많이 막힐 것 같네요"라고 걱정을 했다.
워싱턴에 들어섰는데 저 멀리 뉴스에서만 보던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제59대 대통령 선거 결과,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에게 패하자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했던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 장소였다.
올해는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해라고 한다. 연방 노동청 건물에는 독립 250주년을 기념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노동자들을 최우선시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노킹스 시위가 격렬한 일요일이었던 만큼 이란 국기를 몸에 두르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졸작 중에 졸작이지만, 수년전 '트럼피즘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트럼프 비판서를 썼던 나로서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인근에 워프(Wharf)에 도착했다.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피자를 제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상 사계절이 여름이나 마찬가지인 LA에서 온 우리 가족은 추위에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는 국회의사당 후문쪽에서 우리를 내려줬다. "여기서 사진들 찍으시구요." 국회의사당에서 바로 뒤를 돌아보자 워싱턴 기념탑이 보였다. '스파이더 맨'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와 미드에서 봤던 바로 그 기념탑이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사진을 찍은 후 우리는 스미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에 향했다. 라이트형제가 만든 비행기를 비롯해 각종 전투기, 우주선들을 볼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백악관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업무를 하고 잠을 자는 백악관을 가다니. 그동안 내가 기사를 쓰면서 수십번 자료 사진으로 썼던 백악관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설렜다. 하지만 약간 실망감이 들었다. 보안 때문인지 사진 찍는 곳에서 백악관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사진을 카메라 줌으로 바짝 당겨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백악관은 리모델링이 한창이었다. 백악관 펜스 안쪽에 공사를 위한 흰 천막 등을 볼 수 있었다. 현재 미국은 백악관 리모델링 때문에 논란이 한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500평 규모의 연회장을 짓기 위해 백악관 동관(이스트윙)을 철거한 것이 발단이 됐고, 국가역사보존협회(NTHP) 등은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이나 적절한 심의 절차 없이 역사적 가치가 높은 백악관 건물을 마음대로 개조하는 것이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내가 백악관 앞에 다녀간 이틀 뒤인 3월 31일 워싱턴DC 연방법원은 "대통령은 백악관의 관리자이지 주인이 아니다"라며 공사 중단 명령을 내렸다. 의회의 명시적 허가 없이는 공사를 계속할 수 없다는 취지다. 앞으로 이 사안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안갯속이다.
백악관을 지나 우리는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도착했다. 거대한 맘모스가 한 가운데에 있는, 영화 속에서 많이 봤던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을 관람한 후 우리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에 방문했다. 인공 저수지인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 너머에 워싱턴 기념탑이 보였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서의 대부분을 작성했고, 미국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만들었다. 독립선언서에는 너무도 유명한 'All men are created equal.(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문구가 담겨있다.
특히 제퍼슨은 1803년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해 미 영토의 크기를 단번에 2배로 만든 성과가 있다. 또 '작은 정부' 철학을 통해 중앙정부 권한의 최소화를 주장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보수·자유주의의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퍼슨 기념관 관람을 마친 우리는 링컨 기념관으로 향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나라를 극심한 분열에서 구한 대통령이다. 남북전쟁(1861~1865)에서 북부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1863년 노예해방선언을 하며 이후 노예제 공식 폐지를 이끌어 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1위에 해당한다. 나도 어렸을 때 링컨 대통령의 위인전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 대통령은 노예제 폐지에 반대하던 존 윌크스 부스에 의해 백악관 인근의 포드 극장에서 1865년 4월 14일 암살당했다. 우리 일행도 포드 극장 주변을 차로 지나갔는데, 많은 관람
객이 포드 극장 주변에 서 있었다.
링컨 기념관에서 6m에 달하는 링컨 대통령의 동상을 바라보자 전율이 일었다. 어렸을 때 배웠던 'for the people, of the people, by the people'이란 그의 문구가 절로 입에서 튀어 나왔다.
링컨 동상 뒤에 적혀 있는 “IN THIS TEMPLE AS IN THE HEARTS OF THE PEOPLE FOR WHOM HE SAVED THE UNION THE MEMORY OF ABRAHAM LINCOLN IS ENSHRINED FOREVER.(이곳에서, 그리고 그가 지켜낸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링컨은 영원히 살아 있다)"는 문구도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링컨 기념관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는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있었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들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었다. 학생과 성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역사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견학하는 것을 발견했다.
기념공원에는 우비를 입은 19명의 병사 동상이 있었다. 6.25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숫자만 4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자유 수호를 위해 파병을 결정한 미국 정부와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미국 젊은이들에게 가슴 깊이 감사의 뜻을 보낸다.
우린 워싱턴DC 여행을 마치고 버지니아 경계로 넘어왔다. 소위 천조국이라고 하는 미국의 국방을 책임지는 펜타곤이 있는 지역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펜타곤 근처에서 미 공군 기념비를 봤다. 하늘로 솟은 높이 80m, 3개의 곡선은 '공군의 비상'과 '비행궤적', '상승하는 힘'을 표현한다고 한다. 2001년 9.11 테터로 펜타곤에선 비행기 탑승자 64명을 포함해 총 184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차로 이동하며 살짝 펜타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버지니아의 아난데일이라는 곳에 있는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상가들이 한인들 소유라는 가이드의 설명도 들었다. 한국인의 힘과 영향력, 정말 대단하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페어펙스에 위치한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이날 이동거리는 대략 212마일(340km)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