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와 MIT, 10분 거리의 두 거인이 서로를 인정하는 방식
4월 1일(수)
보스톤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여행사를 이용한 투어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오늘은 아이비리그 캠퍼스를 둘러보는 날이다.
“보스톤은 미국 최초의 도시입니다. 주택들이 다른 지역과 많이 다른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가이드가 말했다.
보스톤 투어를 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이 도시가 미국 역사에서 갖는 의미다.
보스톤은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니다. 오늘날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미국 역사의 출발점은 16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교적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고, 보스톤에서 약 40~50km 떨어진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그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세웠고, 이것이 훗날 미국 사회의 뿌리가 된다.
이후 보스톤은 단순한 정착지를 넘어, 영국 식민 통치에 맞서는 저항의 중심지로 성장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이다. 영국이 차에 세금을 부과하자, 식민지 주민들은 보스톤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영국 상선에 올라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항의가 아니었다.
“대표 없는 과세는 인정할 수 없다.”
이 구호와 함께 분노는 독립운동으로 번져나갔고, 결국 보스톤은 미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이 된 도시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보스톤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작’을 따라 걷는 일에 가깝다.
우리는 투어의 첫 목적지인 하버드대로 향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모인 곳. 그곳에 직접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하버드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4월 초의 캠브리지는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회색과 벽돌색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오히려 차분하고 묵직한 분위기였다.
캠브리지 지역에 들어서자 붉은 벽돌 건물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하버드 인근은 크림슨 색 건물이 많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버드대학교는 1636년, 아직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기에 설립됐다.
청교도들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교육받은 성직자’가 필요했고, 그 결과 케임브리지에 작은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1638년, 존 하버드라는 젊은 목사의 기부를 계기로 이름을 얻는다.
그는 자신의 재산 절반과 400여 권의 장서를 기증했고, 학교는 그의 이름을 따 ‘하버드 칼리지’로 불리게 된다.
초기의 하버드는 철저히 종교 중심 교육기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법학, 의학, 과학 등으로 확장되며 오늘날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성장했다.
결국 하버드의 출발은 단순했다.
새로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는 필요였다.
하버드 캠퍼스의 중심은 ‘하버드 야드(Harvard Yard)’다.
말 그대로 ‘마당’이라는 뜻이다. 초기 대학은 건물 몇 개와 마당이 전부였고, 그 중심 공간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존 하버드 동상 앞에서는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의 왼발을 만지면 하버드에 합격한다는 속설 때문인지, 발 부분만 유난히 반짝였다.
우리는 졸업식이 열리는 테런트너리 시어터(Tercentenary Theatre)에서 모자를 던지며 사진을 찍었다. 잠시나마 이곳의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버드를 뒤로하고 우리는 MIT로 향했다. 차로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MIT는 1861년, 미국 산업화 시기에 맞춰 설립된 대학이다.
기존의 인문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이론과 실무를 함께 이해하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마음과 손(Mens et Manus)”이라는 철학 아래, MIT는 강의실보다 실험실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캠퍼스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그레이트 돔’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들은 하나의 도시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실제로 내부에는 ‘무한 복도(Infinite Corridor)’라는 구조가 이어져 있었다.
가이드는 한 장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 때 경찰이 숨진 곳입니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이후 도주하던 범인과의 총격전에서 경찰 션 콜리어가 이곳에서 사망했다.
캠퍼스 한쪽에는 그를 추모하는 공간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MIT는 첨단 기술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의 불안과도 맞닿아 있는 공간이었다.
MIT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바로 ‘Hack’이다.
여기서 말하는 핵은 범죄가 아니다.
“창의적이고, 익명성이 보장된 장난”
학생들은 밤새 설계하고 계산한 뒤, 어느 날 캠퍼스에 기묘한 작품을 남긴다.
내가 본 학생회관의 경찰차 역시 그런 결과물이었다.
그 무거운 차량이 어떻게 그곳에 올라갔는지 상상조차 쉽지 않았다.
이 문화에는 규칙이 있다.
-다치지 않을 것
-파괴하지 않을 것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의적 일탈.
MIT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장난이 종종 하버드를 향한다는 것이다.
전통의 하버드와 혁신의 MIT.
두 학교는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인정한다.
MIT를 둘러본 뒤 우리는 퀸시마켓으로 향했다.
롱펠로우 브리지를 건너며 바라본 보스턴의 풍경은 차분하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퀸시마켓은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전통 시장이다.
지금은 다양한 먹거리와 거리 공연이 어우러진 관광 명소로 바뀌었다.
우리는 화려한 음식 대신 핫도그 하나로 간단히 허기를 채웠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이 도시가 가진 역사와 공기가 더 크게 느껴졌다.
(다음화 예일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