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리 Nov 20. 2020

발명 상담 전에 가져야 할 배경지식에 대하여

특허와 관련된 상담을 하다 보면 발명자로부터 쏟아지는 어려운 용어들로 인해 곤란하거나, 내가 모르던 기술 내용으로 인해 곤란했던 경험이 많았다. 특허 일을 하면서 처음 그러한 일을 겪었을 때는 내가 고객 앞에서 그 기술 내용을 모르는 것을 들키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변리사이기 때문에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 당황스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화장품 기술에 관한 발명 상담 중

예전에 화장품 기술에 관한 발명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상담을 하러 왔던 화장품 연구원은 아이섀도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발명은 분말 상태의 원료를 굽는 과정을 거쳐 보다 단단한 성상의 제형을 만들 수 있다는 기술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연구원은 나에게 "구워서 나오는 아이섀도 안 써보셨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아이섀도 자체를 잘 안 써봤기 때문에 그런 제품이 있는지도 몰랐었다. 그래서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리고 왠지 그 연구원이 구워서 나오는 아이섀도를 안 써본 사람이 어디 있냐는 것 같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참을 지나고 보니 내가 화장품 기술에 관한 특허 상담을 한다고 하여 모든 유형의 화장품을 다 써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 기술에 관한 발명 상담 중

의대 교수님과 발명 상담을 하던 때의 기억도 있다. 워낙 훌륭하신 교수님이라 그분과 특허 상담을 하는 것 자체가 아주 부담스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미팅을 하기 전 그 교수님이 이전에 냈던 특허리스트를 뽑아보고 사전 리뷰도 철저히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교수님과 발명 상담을 하다 보니 내가 모르는 영어로 된 용어들이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자주 나오는 용어들에 대해 그게 어떤 용어인지 물어보게 되었다. 교수님은 깜짝 놀라시면서 한국말로 바꿔서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었다. 그때부터는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들이 다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사전에 숙지하였던 선행특허들의 연장선에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 교수님과 발명 상담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질 수 있었다.



특허 업무라는 것이 워낙 새롭게 개발된 기술을 문서화하는 것이고, 다루어야 하는 기술의 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아무리 경험이 많은 변리사라고 하더라도 모든 기술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허 일을 하던 초기에는 발명자의 기술에 대한 배경지식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발명자들도 자신의 기술을 상대방이 잘 모르거나 배경지식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발명자가 특허 전문가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기술을 어떻게 특허로 잘 풀 수 있는지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것이지 자신의 어려운 기술을 이해하거나 배경지식을 잘 알고 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경험이 쌓이면서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특허 출원서의 구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