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리 Dec 04. 2023

고시생 시절 부러웠던 것

내가 변리사 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던 기간은 만으로 4년 정도 된다. 20대 중반의 그 시절, 내 미래가 불안하고 도전이 두려웠던 때였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시작은 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길고 어두웠던 시간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가야 할 곳도 없고 나에게 주어진 일도 없었다. 내가 선택한 바에 따라 1년에 한 번 치르는 시험을 준비하는 공부를 해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도서관에 출근하고 도서관 문 닫는 시간까지 하루 종일 공부하는 시간을 보냈다. 시험이 코앞에 있을 때는 공부하느라 바빠서 다른 생각을 할 정신이 없었지만 시험이 끝나고 발표를 기다릴 때나 시험이 한참 후에나 있을 시기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긴 시간을 보내기 힘들기도 했다. 다른 시험 준비생들은 스터디 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면서 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지만, 나는 성격 탓인지 혼자서 공부를 했다. 그렇게 혼자 공부하던 시기에는 막연히 다른 사람들이 부러웠었다. 


컴퓨터가 놓여있는 사무실

새벽같이 일어나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거나 도서관을 갈 때 창 밖을 보고 있다 보면 번듯한 건물의 불 켜진 사무실이 보이기도 했다. 자리 주인이 출근하기 전의 책상들이 놓여있는 사무실을 멀리서 보다 보면, 곧 출근하여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로 일을 할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나도 어서 자격을 갖춰 저런 사무실에서 일을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던 것이다. 


직장동료들끼리의 회식

언젠가 친구가 불러 영화를 보러 갔었다.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직장 동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네다섯 명 모여 즐겁게 얘기를 하면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부러웠다. 그때는 학교도 졸업하고 혼자 도서관을 다니던 때라 친구도 거의 만나지 않고 무엇보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지내는 것에 주눅이 들어 있던 때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냥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들끼리 커피 마시러 같이 나가고,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밥도 먹으러 가는 일상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공부에 매달리며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모든 인간관계를 차단하다시피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바쁘게 일하는 직장인

공부만을 하는 일상은 스스로 그렇게 바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리에서 책을 보다가 갑자기 공부가 안되면 그냥 밖에 나가 머리를 식히고 들어올 수도 있고, 하고 있던 공부에 마감시한 같은 것도 없다. 다만, 시험이 임박하면 그동안 공부해 놓은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느라고 바쁠 뿐이다.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 같고 하나도 생산적이지 않은 것 같은 공부만 하는 내가 가치 없는 사람같이도 느껴졌다. 자기가 맡은 일이 있고 그 일을 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그냥 부러웠었다. 



그러니까 내가 고시생 시절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부러워했던 것은 열심히 일하는 일상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소통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이 부러웠던 것이다. 혼자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고 있다 보면 내 스스로 세상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 같이 느껴지면서 세상 밖으로 나가 무엇이라도 일을 하며 살고 싶던 시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변리사는 직장에서 울면 안 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