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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dy Nov 12. 2019

#003 나는 정말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었는가?

이제 혼자가 싫다고 솔직히 인정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외동이다. 내가 외동이라고 하면 '계속 혼자 자라서 외로움을 많이 타겠구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사실 쭉 혼자였기 때문에 외롭다고 생각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외동이라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진 덕분에 보통의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어렵게 여겼던 혼자 밥 먹기, 혼자 영화 보기 등등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3년 전, 친구와 그리스를 여행하기 전까지 여행도 거의 언제나 혼자였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다. 그리고 혼자라는 사실이 익숙했다. 아니, 익숙한 줄 알았다.








출장 기간 중 몸져누운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엔 거의 일주일을 너무 크게 아팠다. 아마도 오기 전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과 긴 비행 (나는 미국을 오는데 뮌헨을 거쳐 대서양을 건너왔다...) 그리고 출장 첫 주에 있었던 미팅에서 큰 부담을 느꼈던 게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다가 일교차가 큰 건 둘째치고 매일같이 기온이 변덕스럽게 바뀌는 이 곳의 기후 덕에 급격한 날씨 변화에 매우 취약한 나는 아주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무리해서 꾸역꾸역 아침 일정을 소화하고 몸이 휘청거릴 때 느꼈다. 아 이대로 있다간 내가 이 병원비 비싼 나라에서 정말 구급차를 탈 수도 있겠구나...라고... 15분이면 숙소까지 걸어오는 거리인데도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우버를 타고 돌아와 그대로 3일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삼일 동안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나보다 먼저 와 있었던 동료... 는 아니고 고참 쌤이 계셨고 그분이 이것저것 많이도 도와주셨지만, 일로 연결된 분이기 때문에 아프다고 해서 응석을 부리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이 분이 가장 많이 도와주셨고, 이 일을 통해 관계성도 많이 변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행히, 첫 주 워싱턴에서 손수 운전해서 내쉬빌까지 와 준 친구 덕분에 냉장고는 넉넉하게 채워뒀었기 때문에 굶어 죽을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자다 깨다를 반복 하면서 정신이 들 때마다 드는 감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독감과 슬픔이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지 못해 출장지에서 마저 건강문제로 고생한다는 자책감이 먼저, 너무너무 아픈데 (정말 오랜만에 눈꺼풀도 못 뜨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팠다.) 아프다고 말할 사람도 아프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는 게 이렇게 서러운 건 줄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지금 일하고 사는 곳은 한국과의 시차가 거의 없으니 아프면 가족이든 친구든 어디든 전화해 내 상황을 알리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위로보다도 더 마음이 든든했던 건,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하루를 넘기지 않고 달려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 든든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곳은 달랐다. 나의 시간과 그들의 시간은 다르고, 나는 이 땅에서 철저한 이방인이자 외지인이었다. 



아프고 난 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어려워졌다.


삼 일간 끙끙 앓고 이 곳에서의 나의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저녁 5-6시까지 학교에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남은 일을 하다가 책을 읽던가 넷플릭스를 보던가 하는... 원래 나의 생활 패턴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숙소 앞 카페에서, 바에서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나의 시간을 충실하게 잘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마음은 허전하고 쉽게 고독감을 느꼈다.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프고 나서 마음이 약해진 건 아닌가...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물론, 낯선 곳에서 크게 앓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이제야 내가 왜 혼자 있는 시간을 그토록 즐길 수 있었는지를...



나에겐 든든한 백이 있었다.


전화하면 바로 달려올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내가 일상을 보내는 곳에는 언제든지 나를 위해 달려와 줄 사람들이 있었다.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그래도 늘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이모가 2시간 거리에 살고 있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친구들도, 적어도 반나절 안에는 닿을 수 있다. 물리적 거리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들과 함께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같은 시간대 속에 살면서 순간순간 내 속을 내보이며 친구 그리고 가족의 속내를 전화로나마 들어가며 그들은 나에게 든든한 심리적 백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나에겐 내가 혼자를 즐길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이유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이 굉장히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큰 착각이었던 것 같다. 나는 매일매일 가족과 친구에게 혼자이지만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로 큰 의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고맙게도 나의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나의 순간을 살아가는 데에 큰 지지와 성원을 보내면서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 같지만, 나는 이런 건 꼭 크게 아파야 깨닫는 것만 같다.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나는 혼자가 싫다. 혼자여도 괜찮지 않다. 물론 여전히 혼자 보내는 시간은 소중하고 즐겁다. 숙소의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자판을 두들기는 지금 이 시간도 혼자이지만 즐겁다. 앞으로 분명 혼자 여행할 시간이 많을 거라 생각하고 그리고 그 시간 또한 즐거울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게 즐거울 수 있는 건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건 이제 쉽게 잊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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