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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꼴 Oct 06. 2024

영화 <깊은밤 갑자기> 에로와 호러 사이에서 길찾기

목각인형의 저주

내가 만난 최초의 공포는 '전설의 고향'이다.

"내다리 내놔!, 내다리 내놔!"

MZ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로 들리겠지만, 내가 어린 시절 전설의 고향은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워킹데드'와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왕좌의 게임'을 두루 섞은 자연산 공포였고 컬트의 시초였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 죽은 지 사흘이 안된 시체의 다리를 자른 여자는, 빗속을 뚫고 철벅철벅한 길을 내달리는데 뒤로는 다리 잃은 시체가 봉두난발을 하고, 콩콩콩 열나게 뛰어와 여자의 뒷덜미를 잡아챈다. 여자는 자신의 머리털을 쑹덩 잘라내면서까지 도망쳐 가까스로 부엌에 들어가 끓는 물에 다리를 첨벙, 집어넣는다.


밤새 고아 끓인 그 물을 마신 남편이 살아난다는 덕적골 부부의 이야기. 근데 알고 봤더니 시체의 다리가 아닌 산삼의 뿌리였더라. 그런 따뜻한 결말까지. 어째 훈훈하지 않은가.


그 비 오는 밤 묘지를 끼고 잡힐 듯 말듯한 덕적골의 그 추격씬은 전설의 고향의 레전드라 불릴 만하다. 전설의 고향 시그널은 콰과과쾅하는 천둥소리였는데, 그 소리가 나자마자 신속하게 이불을 뒤집어써야만 한다.


바람이 불면서 등장하는 소복의 귀신과, 묘지에서 벌떡 일어나는 관짝, 구미호의 백발과 찢어진 입꼬리를 단박에 만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름인데도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닭똥 같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귀신이 사라질 타이밍에 살짝 이불을 걷고 나와 '살았다' 숨을 내쉬다가 다시, 귀신이 튀어나오면 앜 소리를 지르며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기를 반복.


장난기 많은 언니가 "귀신 갔어"라고 해서 이불을 벗고 보니 구미호의 사백안이 티비 가득 클로즈업돼 내 눈과 딱 마주쳤고, 울고불고 언니를 쥐어뜯고 했던 내 공포의 고향.


 납량특집이 많았다. 대부분 권선징악이었고 여인의 한이 주축인 단선구조였음에도 매주 토요일 밤 다리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했던지. 지금 보는 ott의 맛과는 전혀 다른 뭐랄까......고전 컬트의 세계가 주는 안락함이랄까. 답을 알고 있으니, 안심이 되지만,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꼬리가 달렸거나 다리가 잘린 살아있는 시체들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긴장감이 동시에 충족됐던 그런 착한, 통제된 공포의 세계.


그리고, 내 찐 공포 체험은, 아빠엄마가 일을 나가고 빈 집에서, 유선방송으로 봤던 '깊은밤 갑자기'였다.


나는 그때 6학년 생이었다. 1981년 개봉한 영화였는데, 시간이 지나 유선방송에서 대낮에 재방을 해준 것이었다. 그 당시 에로 영화들 '애마부인', '무릎과 무릎사이', '뽕',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뼈와 살이 타는 밤'. 이런 대단한 제목들로 도배되었는데, 암울한 시대 이런 영화나 보고 집구석에 가만히 처박혀 있으라는 우민화정책의 일환으로 국민들을 얕본 바, 제목들이 이렇듯 적나라했다.


나는, 가끔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를 빠지곤 했던 조금 불성실한 학생이었고, 유선방송에서 하는 에로물들을 하나씩 섭렵해 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때의 나는, 전설의 고향의 착한 귀신들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고 이젠 그보다 더 확장된 세계로 발짝을 내딛는 걸, '성장'이라고 여기던 수 노란 아이였다. 


그날은  비가 왔고, 나는 '깊은밤 갑자기'라는 제목을 보고, 애마 부인의 아류 정도 영화겠구나 하며 어둑한 방에서 좀 야릇한 기분에 젖어들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거였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상했다.


자꾸 허연 가부같은 도끼든 목각인형이 맥락 없이 등장하는 것이었다. 중간중간 야한 장면들이 등장할 때면 아, '에로영화 맞네' 하다가, 스산한 효과음과 동시에 목각인형의 존재감이 점점 더 커져가더니, '이건 에로와 공포의 합성인가'. 긴장감이 고조되고, 미옥이 죽고, 목각인형이 살아 움직이다가, 여주인공 인형에 귀접한 미옥 덕적골 저리 가라 추격전이 펼쳐지면서. 

오마이갓.


참다 참다가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벌떡 일어나, 육성으로 아아아앜 소리를 지르며 마당으로 뛰쳐나가기에 이르렀다는 것 아닌가, 그 영화가 바로 '깊은밤 갑자기'다.


나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서서 하염없이 언니를 기다렸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언니를 향해 나는 너무너무 무서운 영화를 봤다며 신들린 래퍼처럼 두서없이 얼굴이 하얀 목각인형이 사람이 됐고, 그 과정이 엄청나게 희한하고 무서웠다는 설명을 했는데, 언니는 내 상기된 얼굴을 보고는 심드렁이 물었다.

"제목이 뭔데?"

"깊은밤 갑자기"

언니는 또 야한 영화를 봤다고 엄마에게 이르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아니 야한 영화 아니라고! 진짜 무서운 영화라고! 그래도 소용이 없었던 기억.


나는 '여곡성'과 '월하의 공동묘지'도 유선방송을 통해 만났다. 그때의 유선방송은 19금이 설정돼 있지 않고 무작위로 틀어대는 영화들이란 게 공포든 로든 국적을 초월한 19금이 현저히 많았는데, 대체 무슨 까닭으로 정부는 그런 야동들을 틀어대는 업체에 허가를 내줬나, 섹스와 스포츠 스크린으로 도피하라는 전국민적인 가스라이팅의 한 방편이었을 테지만. 3류 모텔에서나 틀어대는 그런 방송을 나는 자주 봤고, 해서 사춘기가 일찍 왔고 그렇게 호러와 에로물을 자양분 삼아 쑥쑥 콩나물처럼 자랐다.


그리고 나는 이 리뷰를 쓰기 위해서, '여곡성 두 편'과 '깊은밤 갑자기', 그리고 '월하의 공동묘지'까지 모두를 두루 다시 보기에 이르렀다. 깊은밤 갑자기는 디지털 리마스터링 돼서, 최근 영화 못지않았으며, 월하의 공동묘지는 어랍쇼 칼라판이 아닌가. 여곡성의 지렁이국수와 월하의 세련된 눈매, 깊은밤 갑자기의 유럽풍 저택과 르노 자동차, 널찍하고 한적한 테헤란로까지 그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찾는 즐거움이 있었고, 과거로 가는 환상특급 열차에 올라타는 짜릿함이 있었다.  


이 영화는 내가 앞서 소개한 최강 공포로 꼽았던 '나이트메어'보다 3년 앞서 태동한 귀한 영화다. 그리고 음향과 분위기가 흡사한 부분이 있는 1977년 다리오아르젠토감독의 서스페리아보다는 4년 늦게 나왔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곤충박사인 남편 유진은 동료들과 집에서 나비의 슬라이더를 돌려보며 샤머니즘과 마녀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나비들 사이에 갑자기 등장하는 하얀 목각인형. 그때부터 목각인형은 선희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유진은 두메산골에서, 갑자기 불이 나 엄마를 잃은 무당의 딸 미옥을 가정부로 데려다.


미옥목각인형을 신주라고 여기며 무척 아낀다.

그런데  목각인형 들어온 날부터 선희의 집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미옥과 남편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악몽에 시달렸고 이 일이 환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어 점점 더 히스테릭하게 변해간다. 그런 자신을 환자로 내모는 남편과 백치미를 장착한 미옥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고사를 위장해 미옥을 죽이는 선희. 사건은 마무리되고, 평화가 찾아올 법한 데 사라졌던 목각인형이 여기저기서 출몰한다.


그리고 집에 혼자 남은,  깊은 밤 갑자기, 목각인형에 혼이 씌어 나타난 미옥의 영혼과 악천후 속에서 난투극을 벌이다 마침내, 스스로 목각인형에 빙의돼 발견되는 그런 이야기다.


40여 년 전, 개봉한 영화임에도 환각과 현실을 오가는 스토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여주인공의 불안과 의심을 증폭시키는 만화경 같은 화면 구도와 높은 음조의 기계적인 사운드는 당시엔 매우 신선한 시도였으리라.


선희의 편집증적인 분열증상을, 마치  카메라에 컵을 씌운 듯 화면 가장자리의 윤곽을 둥그렇게 만들고, 웅웅 울리는 진공 소리를 만들어 내어, 그녀의 심리를 관객이 엿볼 수 있게 만들었다.


게다가 관객들은 선희의 의심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그래서 성공이다. 옛날 영화들의 공식을 뒤엎고, 끝까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구분 지어주지 않았으니까.




한편 목각인형과 한 몸이 된 미옥의 혼과 싸우는 선희의 그 추격씬은 샤이닝의 오마주로 보인다. 도끼로 문을 내리찍는 미옥을 피해 문짝 뒤에서 하얗게 질려있는 선희는, 오버룩 호텔에서 귀신 씐 잭과 웬디가 아닌가.


기술력은 현재와 비교하면 비록 조악하지만, 카메라 워크는 세련됐고 영리하다. 부감촬영으로 선희의 심리와 저주 깃든 집안을 더 괴괴하게 표현하는 부분도 그렇고,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영화와 비교해 기시감이 드는 부분들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을 듯.


마지막 장면은 '사바하'의 쌍둥이 괴물 '그것'을 헛간에서 봤을 때보다 더 그로데스크 하다. '그것'과 목각인형에 빙의된 선희가 오버랩된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듯.


감독은 40여 년 전,  뇌에 어떤 이상 전류가 흘렀길래, 이런 비범한 마지막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당신의 디테일 때문에, 에로물인 줄 알고 덤볐다가 찐 공포를 체험한 사춘기 아이들은 한동안 밤에 화장실 가기도 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가.


마지막 대결씬에서 목각인형이 미옥으로 겹쳐 보이는 장면 위로  수많은 나비들 빨갛고 파란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판타지는  '서스페리아'의 기괴함과 맥이 닿아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여곡성과 쌍벽을 이룬다고 하지만 나는 이 히스테릭한 서스펜스와 오컬트를 넘나드는 '깊은밤 갑자기'에 한표를 주고싶다. 물론 여곡성의 '지렁이 국수'의 임팩트를 당할 수는 없겠지만.

또 세월이 흘러 처기와 애나벨을 만나고, 최근엔 AI 메까지 만났지만 그중에 승자는 미옥의 목각인형이더라.





엄마는 내가 19금 영화를 보고, 밤엔 만화방에 가서 셔터를 내릴 때까지 앉아 있는 걸 모른 채 했다.

당신은 그냥, 하루 무사히 살았으면 됐다, 밥 먹어라, 자라. 그런 위주의 모성을 지닌 사람이었고,  그 자체를 별문제 삼지 않았다는 게 진실이다. 하늘이 무너지거나 전쟁이나거나 유성이 지붕위로 떨어져야만, 이게 무슨 일이냐 할 그런 사람. 신의 마음에 충실했던 자의식의 화신이었다 할까.


그런 엄마는 가요를 좋아했고 노래를 잘불렀으며 라디오프로에 사연을 자주 보냈다. 친구가 많았고 흥이 있었으며, 자식들이 그냥 자신의 사정거리안에서 잘먹고 잘자는 것만으로 감사했던 그래서 한번도 내게 공부하란 소리를 안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초등3학년 때, 생일이었다.

엄마는 그때 아빠와 함께 대방동에서 건재상을 운영하셨는데, 가게로 나와 그곳 뉴욕제과에서 케이크를 가져가라고 하셨다.


소문난 길치였던 나는 그나마 102번 버스를 타고 대방동 사거리, 꽃집이 눈에 띌 때 빨리 내리면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내렸어야 하는데, 그만 지나치고 말았다. 한정거장을 지나쳤을 뿐인데 다시 한번 사거리를 지나고, 지하도를 지나 버스가 멈췄다.


나는 울면서 안내에게 '나를 좀 살려달라'라고 말을 했던 걸로 기억을 한다. 안내은 어이없다는 듯, 건너편에서 같은 버스를 타라고 알려줬는데 나는 생일에 길을 잃었고 케이크는 날아갔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막막함에 통곡을 했다. 하늘이 까맣게 보이고 심장이 덜컹였다. 가상세계가 아닌 진짜 현실의 공포. 그러니까 전설의 고향 열배의 공포. 뒤에 앉은 아줌마 한분이 내게 백 원을 쥐어주며, 아가, 그만 울고 내려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라, 고 말을 해주었다.


정류장에 버려진 나는 울면서 공중전화를 찾았지만, 6차선 도로 어디에도 전화부스는 없었다. 너무 크게 울고 있으니, 정류장 앞 담배가게 아저씨가 나와 나를 데리고 가게로 들어가, 엄마에게 연락을 해주었다.


나는 정류장 앞으로 나가, 엄마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던 거 같은데, 저 멀리서 엄마가 보였다.

나는 엄마얼굴을 보자 다시 울음이 터졌다. 그런데 엄마는 너무 천천히 걸어오는 거 아닌가.



가을이었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도로변 화단 쪽에는 코스모스가 억새군단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가을빛이 엄마 얼굴에 닿았는지 한 손으로는 이마에 차양을 만들고 한 손바닥으로는 코스모스를 쓸어가며 엄마는 그렇게 슬로 모션으로 걸어왔다.  어쩌면 엄마는 콧노래도 부르고 있었던 거 같은데, 이건 내 기억의 왜곡이었는지도 모르다. 그렇게 천하 태평한 얼굴로 천천히 걸어와 내게 말했다.

"가자."

엄마는 수퍼에 콩나물사러 보냈던 아이를 대문앞에서 만난듯, 내손을 잡고 다시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뉴욕제과에 가서 케이크를 사서 나는 뒤늦게 집으로 돌아와 퉁퉁 부은 눈두덩이로 친구들과 함께 촛불을 껐다.

그날의 일은 내게 각인됐는데. 그건, 엄마와 코스모스길, 그리고 나의 두려움이 짬뽕이 된 특이한 경험이었다.

 

세월이 흘러 한번 이 일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 그때 내 생일에 버스 지나쳐서 엄마가 데리러 왔던 때 말이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니?"

"나 그때 엄청 울고 있었는데, 엄만 왜 그렇게 천천히 왔어?"

"난 뭔 소린지 모르겠네."





그날 엄마는  손을 잡고 걸어오며 말해주었다.

 정거장을 더지나쳤으면 다시 돌아서 걸어오면 됐다고. 그런 일로 울지 말라고, 아무 일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 특이한 엄마의 모성이 나를 '에로와 호러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것인가. 처럼 흥분하지 않고 멋대로 살아도 다시 되돌아나오면 된다는 그런 개똥철학.


내 이상한 엄마가 살아갔던 방식.

그 천연덕스러움,


어쩌면 그것이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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