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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꼴 Sep 27. 2024

영화 <유전> 오하이오 랩소디

유전의 힘

아. 불편다.


그런데, 독창적이다.

호불호가 극명한 영화, 유전.


2018년, 나는 망원동에서 어떤 수업을 들었는데, 그중 한 명이었던 창비 편집자가 '유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유전 보셨어요?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그가 유전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의 '오컬트의 혁명'이란 말 때문이었는지, 아직 보지 않는 사람들은 꼭 보겠노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실은 그중에서 유일하게 나는 그 영화를 본 사람이었다. 악마숭배, 불우하고 이상한 가족에 관한, 할머니에서 딸과 손자로 이어지는 가스라이팅과 사이비종교 벌이는 초현실적인 이야기였고, 불친절한 작가주의 영화란 느낌 때문에 아, 진짜 나는 오컬트 안 맞는구나, 했던 영화였다. 

호평에 인색한 유명평론가가 별 네 개를 준 영화이기도 했지만서도.

  

또, 주말에 둘째 아이가 기말시험이 끝났다며 파자마파티를 한다고 튀어나다. 념으로 포영화를 볼 예정이니 절대 전화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그럼에도 난 밤늦게 남자애들끼리 허튼짓을 하지는 않을까 자정쯤 전화를 걸었고, 아이는 한참 후에 전화를 받았다. 녀석이 짜증을 내면 어떡하지 하던 중,  


"엄마, 우리  무서운 영화 보는 중이야. 끊어 끊어!"



그게, 유전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놓친 뭔가가  있다는 건가. 그렇게 자정 넘은 시각 찜찜하게 모니터를 켰고, 유전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당신들은 알고 내가 모르는 게 대체 뭐냐고. 그 야릇하고 복잡한 영화 어디가 그렇게 무섭냐고, 분석 한번 해보자고 이러면서.




유전은 표면적으론 파이몬이란 악마숭배 집단에 희생당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엘렌 일가 3대에 걸쳐, 딸 가족 모두가 죽, 마지막에 손자 피터가 파이몬이 돼 부활하는 그 과정이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아 잘 풀어야 하는, 불친절한 영화다. 그만큼 플롯이 어렵다.


영화는 애니의 엄마 엘렌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미니어처 만드는 일을 하는 애니는 엄마가 죽었는데도, 슬픔보다 홀가분함을 느끼는 듯보인다.

"내가 더 슬퍼했어야 했나"라고 말하는 애니.


애니어머니는 비밀스러운 사람이었다고 조문을 읽는데, 딸 찰리는 딱!  틱소리를 낸다. 이 소리는 영화전반으로 내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찰리가 죽은 후에도 가족들을 따라다닌다.


애니의 엄마 엘런의 유언장은 기이하다.

"우리의 희생은 그 보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희생이라니. 뭔가 숨기는 게 있는데, 그게 대체 뭔지 이 영화는 손에 딱 쥐어 주지 않는다. 카메라는 서서히 화면을 비추고, 그 파이몬이 이 가족들을 바라보는 시선임을 알게 되면서부터 대단히 불쾌해진다. 그 시선은 투명한 빛으로 가족들을 쫓아다니고, 이 빛은 찰리가 죽고 나서는 피터에게 옮겨간다. 


할머니의 죽음을 가장 슬퍼하는 찰리. 앨런이 살아생전 찰리를 키웠고, 애니가 모르는 사이 아이를 자신의 숙주로 만든 듯하다. 새의 목을 잘라, 조형물을 만들고 앨런의 환영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틱소리를 내며, 부모의 깊은 사랑을 받는데도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우울하다. 아, 찰리는 파이몬의 숙주구나, 하는 가정은 애니의 강요로 피터의 파티에 함께 가 땅콩 알레르기 때문에 발작을 일으키고 이후 교통사고 현장에서, 참수된 찰리의 나뒹구는 머리를  순간  더 확연해진다.


첫 번째 제물은 앨런 자신.

두 번째 제물은 찰리.


패닉에 빠진 애니우연히 만난 조앤을 통해 영매의식을 알게 되고, 그리운 찰리를 소환하려다가, 조앤의 숨은 의도대로 파이몬을 부활시키는 의식을 갖게 된다.


대낮 '빛'으로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압도하고, 죽은 찰리의 시도 때도 없는 '딱'소리, 교주 엘런의 드레스 입은 사진, 파이몬의 경전 속 잘린 세 개의 머리, 애니의 집과 똑같이 만들어진 미니어처. 이런 상황이나 장치들의 개연성을 찾아  의미를 이해하면, 놀랍도록 소름 끼친다.


미니어처인 트리하우스와 애니의 집이 서서히 비치면서 시작하는 오프닝 역시 복선에 의미가 있다.


애니의 16살 오빠는 '엄마가 내 몸에 자꾸 뭔가를 넣으려고 해'라는 말을 남긴 채 자살을 했고, 아빠는 곡기를 끊어 죽었으며, 엄마는 해리성장애를 갖고 있다고 알고 있 애니의 불행한 가정사가 모두 파이몬을 향한 계획이고 앨런의 큰 그림이었다는 사실은 찰리 죽음 이후 점점 선명해진다. 


큰애 피터를 낳고, 정신과 의사인 남편이  장모 앨런을 끊어냈지만 둘째 딸 찰리를 낳으며,  앨런이 애니의 가족들에게 드디어 마수걸이를 한 셈인데, 그 장면이 애니의 디오라마에 표현돼 있어 그 디테일이 너무 놀랍다. 아기 찰리를 안고 침대에 누워있는 애니에게 앨런 자신의 젖가슴을 드러내고 다가가는 그 장면을 보라.  


그러니까 파이몬은 남성의 몸에 깃드는데, 그러려면 세 개의 머리가 필요하고 그래서 엘런, 찰리, 애나까지 희생양이 돼 피터가 파이몬의 사제가 되는, 그런 결말이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사이비종교에 발짝을 들인 사람은 단 한 명, 막내이모였다.

막내이모는 그때 나이 열일곱 살이었다.

막내이모를  신앙촌에서 업고 뛴 사람은 아빠였다.

이모는, 피죽도 못 먹은 거죽만 남은 실밥 터진 인형처럼 그렇게 가족들에게 돌아왔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아빠가 이모를 들춰업고 밤길을 달렸다는 그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가 의심이 가기도 했던 사건이었다.

키가 작았던 아빠가 아빠키만 한 이모를 택시가 있는 곳까지 업고 뛰었던 그 산길을 생각하면, 평생 기관지염을 달고 살았던 아빠의 쌕쌕거리는 숨소기가 들리는 듯했다.

"그때 내가 걔를 데리고 안 나왔으면 그날 밤 죽었어!"

아빠는 이모가 쌍둥이를 낳고 한참이 지나서까지 이 말을 반복재생했는데 이는, 내 이날의 업적을 오래도록 알아달라는 하소연처럼 들렸다.


근데,  업고 뛰는데 너무 가벼워서 이게 사람인가 허깨비인가 했는데 갑자기 목덜미가 뜨거워서 보니 벌건 피가 흘러 가슴팍까지 젖었다고 말을 했다. 이 부분은 가끔 가슴팍이었다가 목덜미였다고 뒤통수였다가 하면서 조금씩 바뀌었는데 어쨌거나 그렇게 이모는 결핵을 안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이야기는 외가 식구들 사이 반세기가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특이한 일이다.


이모는  현재 오하이오에서 사는데 손재주가 좋아 옷수선일을 칠십이 넘은 나이까지 하면서, 잘 산다. 곧 연금을 받게 된다며, 가끔 페이스톡으로 연락을 해오데, 이모는 나를 아직까지 아가라고 부른다. 그리고 종종 운다.


 이모는 신앙촌에서 나와 시골로 내려가 요양을 하며 건강을 되찾았고, 몇 년 후 결혼을 해, 쌍둥이를 낳았다. 그리곤, 서울에 살며, 이모부소유의 건물에서 우리 집과 일층, 이층으로 나란히 함께 살았다. 


이후 이모부가 건물을  도박으로 날리고 나서, 남양주로 이사를 갔고, 우린 신림동에 자리를 잡았다. 이모는 그 이후에도 우리에게 생긴 모든 불운한 일들에 앞뒤 재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줬고,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이타적인 걸로 따지면 현재 오하이오 인근까지 통틀어 아마도 가장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 내 막내이모. 


이모가 열일곱 살에, 살았던 소사 신앙촌.

1955년 박태선이 만든 종말론을 추종하는 이 신흥종교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탄을 예수라고 주장하는, 성욕 식욕 탐욕을 죄악으로 터부시 하고 지구가 지옥이라고 하는 사이비 종교다. 제대로 먹지못한 공동체  사람들은 쇠꼬챙이가 돼서 눈만 형형한 채 볼트와 너트처럼 일해 생활용품과 악기, 간장, 메리야스, 카스텔라 별별 것들을 만들면서 세뇌된 채 인류종말을 기다리며 살아갔던 것인데. 인류 종말을 기다리는데 웬 간장과 메리야스란 말인가.


내가 신앙촌에 대해 아는 건, 이모가 죽을 뻔한 종말론자들의 집합소. 그리고 우리 집을 오갔던 보부상 아줌마들에 대한 기억이다. 그들은 큰 보자기에 양은 냄비부터, 옷, 양말, 메리야스, 빵, 캐러멜 같은 걸 갖고 와 팔았다. 나는 엄마 어깨너머 그 물건들을 구경하고, 저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 다니나, 생각했다.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냈고 물건을 팔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포교의 일종이었다. 순박하고, 정겨웠던 그 사람들의 얼굴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잘못된 신념이라도 백그라운드가 있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고요한 얼굴이랄까. 마치 관속에 누워있는 앨런처럼.  지금의 희생이 나중에 올 보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념무상의 얼굴.


신앙촌 아줌마가 물건을 갖고 오면, 이집저집 여자들이 우리 집 안방으로 모였다.

누구는 부침개를 하고 누구는 신앙촌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뱅글뱅글  패션쇼를 하고, 누구는 양은 냄비를 두드리며 까르르 웃었다. 그러다가 막걸리가 한 두병 등장하고, 신앙촌 아줌마가 보따리를 싸면 서로 아쉬워서 더 있다 가라고 잡고 뿌리치고 했던, 포교현장인지 동네잔치인지 모호했던 그러니까 딱 응답하라 1988 쌍문동 분위기였던 현장.


 

 


다시 돌아와서,

애니는 최선을 다해 엄마앨런에게서 아이들을 지켜내려고 노력했지만, 그 유전된 악마를 향한 끌림, 그 자기장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특히나 이 가족에게 악마의 기운이 스미는 장면들이 압권이다.

잠잠하던 애니의 몽유병이 재발해 아들 피터를 위협하고, 사고로 목이 잘린 찰리의 사고현장을 디오라마로 재현하며, 학교에서 죽은 찰리의 '똑'소리가 들려오고 똑같이 찰리처럼 목이 부어오르고 팔이 꺾이는 현상을 겪는 피터.


강령술로 찰리의 영혼을 불러오면서 남편이 불길에 휩쓸려 타 죽고, 애니 자신마저 빙의돼 거실 천장구석에 붙어 피터를 내려다보는 그 장면. 그리고 잠옷바람으로 피터를 우사인볼트처럼 쫓아가, 천장에 붙은 채로 머리 다락문을 오바로크 치듯이 박는 그 장면.

빙의된 자신의 목에 줄을 감고 목을 참수하는 자해 장면은 그로테스크하다는 말로도 좀 부족하다.

그렇게 애니는 세 번째 제물이 된다.


엑소시스트처럼 현란한 기교가 없고, 오멘만큼의 음산함과 기승전 드러나는 플롯이 없음에도 분위기 자체가 멀미를 유발한다.


마지막 파이몬의 대관식이 있는 트리하우스에 넋이 나간 피터에게 관을 씌우는 조앤과 피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 드디어 이 사건의 전말이 뭔지 그제야 알게 된다. 그전에는 참을성 있게 하나하나 연결고리를 맞춰나가야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게 애니의 몸에서 빠져나온 빛이 피터에게 스며들고 머리 없는 시신들이 피터에게 절하며, 파이몬의 대관식은 완성된다.   


참수된 시체 앨런과, 방금 셀프 참수한 엄마 애니가 피터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는 이 장면은, 감독이 살면서 대체 어떤 식의 불화를 겪었기에 이런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다시 카메라가 뒤고 빠지면서 이 트리하우스의 기괴한 대관식은 미니어처로 되살아나는데 애니의 디오라마가 현실과 겹치는 장면을 의도한, 아리 에스터 감독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1970년대 후반 이민을 간 큰 이모 가족은 우리 가족과 막내 이모 가족 모두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완전히 잊고 있을 무렵 그러니까 1995년 근 20가까이를 기다려 드디어 이민허가가 떨어졌다. 한량 남편 때문에 힘들게 살던 막내이모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짐을 싸, 미국으로 갔고 우리 가족은 한국에 남았다. 그리고 엄마만 일 년에 한두 번씩 오가며 영주권을 유지했.


이모는 성탄절에 몇 번 엽서를 보내왔는데, 성탄절과 관계없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배경으로 한 사진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고 멋있는 곳이 없다며 꼭 미국으로 늦게라도 와야 한다는 신신당부와 함께.


나는  이모가 한국에 살았다면 나이아가라 폭포는커녕 인근 계곡도 놀러 가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됐기에 그냥 이모에게 전화가 오면 우와! 정말! 좋겠다! 와 같은 감탄사를 남발하는 것으로 이모의 제2의 인생을 응원했다. 그리고 미국에 가기 바로 전 ,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이모는 장례식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 가장 많이 오랫동안 울었다.


그 오래전 그날 밤의 도주극과, 아빠의 등짝에 피를 토하면서 움켜쥐었던 삶의 희로애락이 례식장이 주는 헛헛한 분위기와 편승해 슬픔을 자극했을 것으로 짐작하는 바,

한편으론 아빠가 반복재생했던 사람 살리는 일을 했던 그날 당신의 업적이 그렇게 맹탕은 아니란 반증이기도 했던 이모의 통곡이 주는, 위로가 내게는 있다.


사족으로, 엄마는 영주권 때문에 이모가 사는 오하이오를 다녀오면 내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말이 안 통해 노인네들이 너무 불쌍하게 사는 곳, 너무 심심해서 벤치에 앉아 오리를 보거나 공놀이를 하는 곳, 일찍 일어나 고사리를 캐야 하는 곳.


엄마가 대체 뭘 봤기에 저런 소리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봤는지 영 아리송한 소리를 했고, 그 말을 한 이후, 미련 없이 여권을 반납했다.


그리고 아들 녀석은 밤을 새웠는지, 얼굴에 개기름이 낀 채 이른 아침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왔다.

"어디가 그렇게 무서웠는데?"

"그냥 다 무서웠지. 그 아줌마가 천장에서 머리 박을 때랑, 목 잘린 귀신들 으아아아 엄마 말하지 마."

"그런데 그 영화 악마숭배자들 얘긴 거 알지? 피터가 대관식 한 장면에서 알아챘어?"

"뭐라고? 피터가 뭘 했다고? 악마가 나와? 그 영화에서?"


이런 덜 떨어진 녀석.

꼭 어릴 적 나를 닮았다.

그것이 유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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