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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꼴 Sep 13. 2024

영화 <알 포인트> 손에 피묻은 자 돌아갈 수 없다

굿바이 솔저

베트남전에 다녀온 걸 아빠는 훈장처럼 여겼다.

"여기 봐라 여기 봐"

아빠 종아리에는 엄지 손가락만 하게 살점이 푹 파여 있는 흉터가 있다.

당신은 그 총알이 종아리가 아닌 심장에 박혔다면, 내가 태어나지 못했을 거라며 하늘이 너와 나를 살렸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걸 즐겼다.

그 종아리의 상처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친척들, 그리고 양 씨 주인집 내외와 그의 결혼한 자식들까지 알고 있는 베트남 참전 용사의 역사였다,고 말하고 싶지만


밤마다 시달렸던 우리 가족은 베트남이고 나발이고 다스서클이 질질 끌리는 얼굴들로 벽시계를 바라보며 '잠이나 얼른 처잤으면 좋겠네'라고 비는 게, 매일의 숙원사업이었다.



1부에서 생사의 기로에 선 종아리 총상의 사연이 끝나면, 바로 2부에선 고엽제 후유증으로 죽거나, 정신병을 앓거나 암에 걸린 전우들 얘기 태엽 풀린 새 자동반사돼 나왔다.

마지막 3부는 총체적인 신세한탄인데 이땐 정수리까지 알딸딸한 기운이 오른 때라 말이 느려지고 감정이 격해졌으며 눈앞에 베트콩의 유령이라도 본 듯 어깨를 씰룩고 팔다리를 허우적댔다. 그리곤 벌떡 일어나 군기 바짝든 이처럼 각 맞춰 걷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우린 테이프가 늘어진 시트콤 보듯 각자의 자리에서 하품을 하거나 손톱을 깎거나 새우깡을 먹으며 그의 술주정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대부분은 3부에서 객의 박수도 없이 지리멸렬하게 끝났는데 가끔은 이때다 싶어 엄마와의 연애담을 언급하기도 했다.


"무슨 여자가 처음 만난 날, 갈비를 뜯냐 뜯기를!"


그때 당시 신문에 파병 군인들의 몇몇 사진이 실렸고, 그중의 한 명이 자신이었으며, 자신의 얼굴에 반한 엄마가 일방적으로 펜팔을 보내와,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 만났는데,


"아니, 첫 만남에 갈비탕집 가자고 하는데 니미럴"


엄마는 탕에 들어간 갈비를 하모니카처럼 들고 뜯었다고 했다. 그 얘기가 나오면 엄마는 개던 빨래를 바닥에 패대기치고,  문짝을 발바닥으로 세게 차고 나갔다. 그러면 우리도 주섬주섬 과자와 손톱깎이를 챙겨 방으로 건너갔다. 고등학생이었던 언니와 나는 학교에서 세계사시간에 베트남이란 말만 나와도 짜증이나 기절할 것 같다며 베트남앵무새인 아빠를 뒷담 하기도 했었다.  

 

결론적으론 해외여행을 많이 가던 시절이 아닌데도, 내가 베트남이란 나라를, 제주도 보다 더 가깝게 여기게 된 까닭은 이리도 어수선하다.


한번 말문이 터지면 새벽까지 가족들을 앉혀놓고 잠을 재우지 않아 실제 베트콩이라도 튀어나와 아빠를 어디로라도 끌고 사라져 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 동네 시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초라했던 가족의 초상.


그리고 아빠는 베트콩들이 두더지처럼 어나왔다고 말하곤 했는데 난 아빠의 말이  주정뱅이의 허언이라는데 한 치의 의심이 없었다.






아빠는 1967스물 살, 맹호부대에 속해 파병됐다.

아빠가 파병되고 나서 할머니는 아빠가 전사할까 봐 평소 피우던 연초를 몇 배 더 피웠고 평생 사포로 성대를 긁는 듯한 목소리에 뭉근한 객담을 뱉었다. 그렇게 찐 골초로 살았다. 새엄마였음에도 아빠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전해졌다.


누구는 월남에서 돈을 가마니로 벌어와 땅을 사서 부자가 됐다는 둥, 나도 좀만 버텼다가 탄피나 씨레이션을 더 빼냈어야 했는데 하며, 펜팔을 보내온 엄마를 원망했다. 면서 양키들이 베트콩들에게 쏟아 부운 총알이 한 명당 한 가마니가 넘을 거라며, 이야! 이야!하는 추임새를 넣었다. 이렇게 궁시렁거리기를 십수 년. 어쩌면 그런 궁시렁 시절이 더 좋았던가 싶기도 하다. 동생이 어린 나이에 사고사한 이후 아빠는 더 이상 월남 얘기를 꺼내지, 엄마와의 연애담을 언급하지도 않았니까. 방안에 날개 떨어진 무당벌레처럼 동그랗게 앉아서, 혼잣말을 하거나 화를 냈고, 그렇게 자기안에 갇혔다.



미국에선 베트남 참전 용사들이 돌아와 베이비 킬러라는 오명을 쓴 채, 평생 PTSD에 시달리거나 노숙자나 마약중독자가 된 사례들이 많다고 했지만, 한국에선 참전용사들은 뿔뿔이 흝어져 일부 현실주의자들은 시골에 작은 땅이나 소 샀고, 일부는 돌아오지 못했고, 일부는 병을 앓고, 일부는 아빠처럼 빛바랜 영웅담을 웅얼거리는 독한 술꾼이 됐을 거라 짐작하는 바이다.


런데 과연 월남에서 돌아와 소와 땅을 사서 거부가 된 군인이 있는가. 아빠 말대로 어떤 기회에 편승한 이들이 일부 있었겠지만은, 참전 병사들의 월급은 쥐꼬리 만했고, 전사자의 경우엔 60만 원 정도 지급됐다고 알려졌다.


파병 군인들 덕분에, 10억 달러이상을 벌어들이고, 이후 한강의 기적이 시작됐음에도, 정부는  아빠를 모른척했다. 하다못해 한강유람선 할인 티켓이라도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할머니는 아빠의 참전 이후, 밭고랑을 매다가 눈물을 찍으며 먼산 바라보는 게 일이었고 같은 자리에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서너 대 태우고 그 힘으로 아빠를 기다렸을 터이다.  그 습성은 아빠가 돌아오고 한참 돼서도 반복되었고 그 밭고랑과 먼산과 담배는 할머니에겐 자동반사신경에 다름 아니었을 터.

불운하게도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먼산을 보며 담배를 태우다 후진하는 5톤 트럭 깔려 즉사했다.     


영화로 돌아가서,


2004년에 개봉된 알포인트는 1972년 베트남전이 배경이다.



영화는 한 밤에 울리는 통신본부의 무전기 신호음으로 시작된다. "하늘소하늘소 응답하라. 우린 당나귀 삼공. 우린 다 죽는다." 무전기에서 흘러 나는 목소리는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


6개월 전 작전 지역명 로미오 포인트에서 모두 죽은 걸로 아는 수색대원들로부터 구조요청이 온 것. 죽은 병사가 3일 전 연대본부에 세 번이나 때린 무전. 그중에 온몸에 붕대를 감은, 당나귀삼공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병사가 "우린 모두 다 죽었어. 내가 군번줄을 다 가져왔어!"라고 말하는 이 상황에, 최중사 부대는 라이언일병대신 유령 부대의 실체를  찾아가는구나 렇게 짐작했다.


그러니까, 알포인트는 두더지 셋 부대가, 실종된 당나귀 삼공 부대 즉 얼마 전 무선을 보내온 병사와 그 부대원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이나 실체를 찾으러 가는 7일간의 이야기.


그들의 행방을 찾으러 가는 최중사와 8명의 부대원들은 각각의 캐릭터가 있다.

적군이든 아군이든 가는 곳마다 피를 본다는 최중사, 진짜 군인이지만 상관의 말대로 빨리 실종자 문제를 처리해야 했던 진중사, 색소폰을 잘 불고 여자를 밝히는 섹스박 박하사(이선균의 젊은 시절), 취사병 출신 짬밥이라 놀림받는 마병사, 실종된 친구의 사진기를 친 오병장,  마지막에 눈을 다치고 살아남은 형대신 군대를 왔다는 18세 장병장, 무전병 변상병, 탄피 들고 다니는 이상병, 장의사집 아들 조상병, 6개월 전 실종된 철모를 쓰고 있어 얼굴이 안 보이는 정일병 유령.


알포인트는 다양한 해석들로 분분한 영화이므로, 등장인물들을 알고 넘어가면 좀 쉬워진다.


불귀(不歸). 손에 피 묻은 자, 돌아갈 수 없다.

낡은 비문의 등장.



실종된 대원들의 시체나 군번줄만 찾아 돌아가면 되는 미션을 수행하는 중 그들 역시, 앞서 당나귀 삼공 부대원들과 같은 일을 겪게 고(추정) 이후에도 온갖 미스터리한 일들이 생겨난다.

알포인트로 들어가기 전 사진을 찍는 장면부터가 그렇다.

9명이 가서, 10명이 된 이들은 정일병이 죽고 나서야 그가 당나귀 삼공 부대원이었단 걸 안다.

사진을 찍어줬던 정일병이 첫 번째 귀신.


알포인트에 들어서며 벌어지는 총격전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베트남 여자.

이 여자가 두 번째 귀신. 최중위를 쫓아다니고, 방울 소리를 내고 마지막 서로가 빙의돼 죽고 죽이는 그 현장에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나 피눈물을 흘리며 웃고 섰는, 베트남전쟁 속 원한 가득한 혼령.


프랑스부대원 폴과 자크형제에게 걸려오는 무전과, 느닷없이 나타나는 미군들.

이들 역시 이미 한참 전에 죽은 병사들이란 사실.

이들이 세 번째 귀신무리.



그러니까 최중위의 부대원들은 모두 귀신과 싸우는 중이고, 나중에 빙의(눈으로 귀신이 들어오는 듯)돼 눈을 다친 그리고 손에 피를 묻히지않은 정상병만 살아남는 스토리다. 그런데 다시 들려오는 무선.


하늘소 하늘소 여긴 두더지 셋 두더지 셋 그리곤 시끄러운 총성과 비명소리. 이처럼 저주는 돌고 돈다.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이 장화홍련과 더불어 가장 무서운 한국영화로 꼽곤 하는데, 내겐 세계열강의 베틀무대였던 베트남전쟁 당시의 공포와 패닉을 빙산의 만 보여줬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영화자체는 무섭다.


비문이 등장하고 나서, 물안개 속에 드러나는 프랑스 저택. 정상병의 목 잘린 시신. 실종된 유령병사들과 풀숲에서 조우하는 장면, 피눈물을 흘리는 여자, 당나귀 삼공 무선을 친 이미 부패 통신병.

밀폐된 건물과 타국에서 귀신에 놀라 정글을 헤매는 병사들의 심박수가 높아질수록, 관객들은 함께 빙의된 듯 놀라서 눈을 껌뻑껌뻑 거렸던, 알포인트의 현장.





그런데 실제 네이탄이 터지고 발가벗은 채 달리는 소녀의 사진 한 장이 찐 공포가 아닌가.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수십 년간 나왔지만 그 실상을 어떻게 영화로 표현할 수 있을까.




베트남전은 17년 동안 어마어마한 화력이 들어갔고, 미국이 최초로 패전한, 세계열강들의 더러운 밑바닥이 드러난 전쟁이다.

19세기 베트남에 들어간 프랑스, 2차 대전 프랑스가 정신없는 와중에 잠시 그자리를 비집고 들어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베트남인들을 200만이나 굶겨 죽인 일하며, 그 뒤로 베트남과 그 일대가  도미노처럼 공산화까 노심초사하던 미국이 들어와, 제대로 엿 먹고 돌아가는 그런 미치광이들의 용광로.


6.25 사태 이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미국이 얕보고 들어간 베트남에서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은 블랙코미디다. 북베트남과 척지지 않은 남베트남의 인민들은 군복을 입지 않은 거의 전 국민이 게릴라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들 중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리냔 말이다. 베트남을 들고나는 열들에게 당할 데로 당한 이들이 얼마나 악에 받쳤을지는, 그 원한이 알포인트 영화 속 프랑스 형제 자크와 폴도 죽이고, 한밤중 맥주를 들고 방문한 미군들도 죽이고, 당나귀 삼공과 두더지 셋 부대 전부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알포인트의 유령은 지금도 수풀 속을 떠돌고 있을 만 같다.


구찌땅굴을 지하 4층까지  팠고 250킬로에 달하는, 그 개미굴에서 먹고 자고 싸고  회의까지 하 베트콩을 덩치 큰 프랑스군과 미군들은 대체 어찌할 수가 없었다. 네이팜탄으로 불 싸지르고, 고엽제로 깡그리 정글을 말려버려도 그들의 원한은 땅굴의 300미터 깊이보다 더 깊고 싸늘했을 것임으로, 전쟁 중 쏟아 부운 미군의 포탄이 2차 대전의 화력 두 배였음에도 그들의 묵은 원한과 살벌한 분노를 넘어서지 못했다.

원한도 원한이고, 미군은 반전여론 때문에 퇴각하고 만다.


그리고 실제로 베트콩들은 두더지처럼 튀어나와 미군들을 교란시켰다고 한다. 아빠의 말처럼.


그들의 참호는 너무 유명해서, 나는 보는 거 자체로 숨이 턱 막힌다.

공황장애 환자들은 아예 보지도 말 것을 권한다.

    





아빠가 베트남전에 가지 않았면, 할머니는 골초가 되지 않았고, 먼산을 바라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불운한 죽음을 맞지도 않았을 것인가. 엄마는 펜팔을 하지도 갈비 뜯지도 않았아니면 잽쌌던 여타 병사들처럼 탄피와 맥주캔이라도 짊어지고 와서 팔았더라면, 도시에서의 첫출발이 순조로워 고등학교도 다니고 대학도 다니며 청춘을 누렸을 것인가. 

그리고 이후에 닥칠 불행들이 우리가 아닌 다른 동네나 다른 행성으로 떠나갔을 것인가.



집정리를 하며 맹호부대의 앨범 속, 아빠를 봤다.

아빠는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진 다음날 집에서 돌아가셨다. 그의 나이 52세. 사인 간경화.


사진 속 아빠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45도 각도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아빠뿐 아니라 다른 군인들도 다 그런 어색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을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 앨범을 봐와서, 그 45도 각도의 아빠 나이가 스물 살이란 걸 전혀 알지 못했다. 마흔 살이라고 해도 믿었을 거다. 그 어린 나이에 남의 나라 전쟁판에 가서 저 이상하고 어색한 포즈를 짓고 대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건가. 판에 바람이 불고,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드문드문

폭우에 맨홀뚜껑이 들썩이는 듯한, 그런 울렁거림 빠를 생각할때마다 찾아온다.

 

당신은 어떤 시간에 머물렀기에 렇게 빨리 갔나.

어린 아들을 서둘러 만나러 갔는가.


종아리에 후시딘이라도 한번 발라줬을 걸.


뼈아픈 후회.






(이번주 일요일 '떡국이의 밥그릇' 연재는 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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