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의 장기휴직 후 직장으로 돌아간 지 6개월 차.
폭풍 같은 적응기를 보내고 조금 정신이 들어 깨달은 바를 기록해 본다.
1. 남들이 다 한다고 해서 쉬운 건 아니다._마치 임신과 출산처럼.
맞벌이 다들 하는 거 같고 다들 애 키우면서 일하는 것 같은 세상. 남들도 다 하는 거 까짓 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복직하자마자 바로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다고 해서 그게 쉬운 건 아니라는 것.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과 '그 일이 쉽다'는 것은 별개다.
많은 사람들이 임신과 출산을 하지만, 임신과 출산이 만만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건 아닌 것처럼. 이렇게 의료기술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출산으로 생명을 잃는 사람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많은 여성들이 직업을 갖고 있고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 후 다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쉬운 건 아니었다. 다들 죽도록 힘들고 험난하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거였다.
퇴근과 동시에 연체동물이 된 것처럼 몸이 녹아내리고, 와불처럼 옆으로 누워서 아이들에게 대답도 간신히 하고, 요리는커녕 퇴근하며 급하게 사온 꼬마김밥만 애들 입에 넣어주면서도, 9시도 되기 전에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워킹맘이 된 진짜 내 모습이었다.
호수 위에 평화롭게 떠다니는 줄 알았는데 수면 아래로는 발에 땀나도록 발길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워킹맘들의 세계였다. 모두들 힘겹게 아침을 시작하고 장렬히 쓰러지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복직하자마자 2킬로가 빠지고 저녁 9시가 되기도 전에 기절해 씻지도 못하고 잠이 드는 생활을 무슨 정신인지 모르게 하루하루 보내면서, 나는 지금 결코 쉽지 않은 일을 하겠다고 겁도 없이 덤벼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 워킹맘은 기본이 투잡_ 일을 한다고 육아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워킹맘이 힘들 거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은 내가 하려는 일이 기본적으로 범주가 '투잡'이라는 거였다. 원래 하던 '육아'라는 업무가 없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에서 업무가 하나 추가된 거라 기본적으로 직장이 두 개다. 그리고 육아에는 끝이 없다. 이미 한계가 없는 업무를 하고 있는데 여기다가 사회적 직업까지 일정 수준이상으로 해낸다는 것은 2명분의 삶을 하루에 집약적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당연히 과부하가 될 수밖에 없고 일상 여기저기에 구멍이 생긴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구멍에 발이 빠졌다. 어린이집에 수저통을 빼먹고 보내거나, 유치원 행사에 필요한 체육복을 안 입혀 보내는 것은 애교다. 항상 산발인 머리로 찍혀오는 유치원 사진이라던가, 기침이 나도 약을 먹여 등원시키고 끝나면 병원에 데려가는 일상을 보내다 보면 무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무엇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지도 구별이 잘 안 된다. 여기저기 펑크를 내는 것도 '나'고 그런 펑크를 해결하는 것도 내 몫이다. 남편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도 버겁고 시간이 안 날뿐더러 모든 기관에서 연락이 오는 대상도 항상 나다. 내가 엄마라서 그렇단다. 아빠에게 연락해 달라고도 하다가 어떨 때는 일의 일부를 남편에게 그대로 토스하기도 했다. 이건 여보가 처리해 줘. 다행히 남편은 알려준 일에 대해서는 군말 없이 해주었다.
그러나 이런 일의 배분도 내 몫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매일 투잡을 뛰는데도 희한하게 손에 남는 건 별로 없다는 점도 이상했다. 여기서 돈을 벌어 저기서 돈을 갖다 바치는 구조라서 그런가. 아이들이 아프지만 않으면 그래도 굴러가는 생활이지만, 가끔 아이들이 자다가 기침만 해도 걱정으로 새벽 내내 뒤척이게 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기본전제가 2인분의 삶이라는 사실을 잊고 해내지 못한 일들과 일상의 구멍들에 자괴감을 느낀다. 비교대상이 없음에도 항상 못하는 쪽은 나인 것만 같다.
3. 관대한 엄마는 여유에서 나온다_ 시간 거지, 체력 거지.
복직을 하기 전까지 나는 굉장히 관대한 엄마였다. 길거리에서 애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인성을 의심했다.(지금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복직하고 바로 깨달았다. 당장 내일 할 일이 태산인데 밤 11시가 되도록 안 자고 있는 자식을 보면 단전 깊이에서 화가 올라와 주체가 안된다는 사실을.
분노조절은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가 관대한 엄마일 수 있었던 것은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있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처럼 '시간 거지', '체력 거지'일 때 나는 작은 실수에도 분노발작 버튼이 눌러지는 헐크의 영혼을 가진 엄마가 된다. 퇴근하고 한번 꼬옥 안아주고 이뻐해 준지 5분도 안되는데 빨리 먹여서 재울 생각부터 한다.
아이들은 똑같다. 똑같이 실수도 하고 떼도 부리고 잠을 안 자고 놀고 싶어 하는데 엄마가 관대하냐, 분노하냐는 엄마에게 달려있다. 나는 그렇게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할 수 있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겸손해졌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일 수 있다. 화내기 전에 생각해 보자. 나 저녁은 먹었나. 어젯밤에 잠은 잘 잤나.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이유 없이 화가 나면 생각해 본다. 내가 너무 피곤한 건 아닌가, 내가 먹은 게 부실해서 그런 건 아닌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화를 내기 전에 거울을 들여다보며 숨을 고르다 보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조금씩 보인다. 기억하자. 관대한 엄마는 여유에서 나온다. 이상한 데에 열받고 화내지 말고 스스로를 잘 달래 심신의 여유를 찾자. 일단 화가 나더라도 밥부터 챙겨 먹고 침대에 일단 누워보자.
4. 다 잘할 수는 없다_ 그런 워킹맘은 없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주인공인 앤디가 출근하는 장면이다. 멋진 옷에 신발과 가방을 바꿔가며 예쁜 모습으로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출근하고 싶어졌다. (장기휴직의 폐해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거였다. 앤디는 미혼이고 나는 애가 셋이나 딸린 워킹맘인데... 내 출근은 앤디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세수를 하고 얼굴에 뭔가를 찍어 바를 시간도 없이 문밖을 나가며 아이들 입에 빵이라도 하나씩 물리기라도 한 날이면 낫다. 곤하게 자고 있는 모습만 보거나 엄마 출근하지 말라고 양다리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떼놓고 나오기라도 한 날에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회의가 들었다. 나중에 아이들 사춘기 때 내가 아이들 다리에 매달리면서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면 어쩌지?
출근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그 순간 나는 일을 하러 나가는 게 맞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그렇게 편치 않은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막상 직장에 도착하면 직장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미혼 때, 애가 없던 시절에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잘했고 얼마나 잘 나갔는가, 하는 것은 지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워킹맘으로 시작은 다시 맨땅에 헤딩이다. 어리다고 실수를 봐주고 친절히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잇값을 못하면 뒤에서 수군댈지언정 앞에서 하나하나 붙잡고 가르쳐 줄 사람이 있는 거도 아니다.
먼저 숙이고 물어보고 배우고 실수하면 고쳐가며 그렇게 하나씩 새로 길을 내어야 한다. 일을 한다고 해서 가정에 소홀히 해도 되는 것은 아니기에, 집에서 생겨나는 이런저런 일들도 그때그때마다 나름의 최선을 찾아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저 그날 그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일상의 조그마한 구멍들은 대세에 큰 지장을 주는 게 아니면 넘어가야 한다. 매사를 철두철미하게 살 수는 없다.
완벽주의가 불가능한 직업. 그게 워킹맘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_내 일이 주는 만족감.
위의 네 가지만 봤을 때 워킹맘을 선택하면 단점만 있는 것 같지만, 이 네 가지에 불구하고도 좋은 장점이 있다.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불리고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인간인가에 대한 명확한 안정감을 주었다.
그러니까 내가 오랜 휴직기간 동안 잃고 있는 것은 바로 '자기 효용성'이었다. 자기 효용성은 무형의 것이지만 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다는 사실을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무엇을 잃고 있는지는 다시 되찾고 나서야 알 수 있다.
육아와 가사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맺고 끊음이 없어서였다. 티 나지 않은 일을 눈뜨고부터 눈감을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일이 육아와 가사였다면, 직장은 최소한 출근과 퇴근이 명확하고 때 되면 째깍 들어오는 월급이 있다. 이런 '맺고 끊음'과 돈이라는 '즉각적이며 일정한 보상'. 이런 것들이 주는 안정감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컸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의 자아를 잠시 잊고, 직장인으로서의 자아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뭔가 모르는 활력이 몸에 차오름을 느낀다. 그러니까 이런 활력, 자신감. 이런 것들은 무형의 것이라 단순하게 비교하기가 어렵지만 막상 다시 직장에 돌아와서 느끼는 긴장이 나쁘지만은 않다. 긴장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 내 생활의 권태를 깨기 위해 적절한 긴장은 활력을 될 수 있다는 것. 이런 점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예상한 것과 다른 결과를 만나면 당황스럽다. 워킹맘 생활이 쉬울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나의 체력이 달려 자주 아프고 심지어 깁스를 해야 할 정도로 다치기까지 할 거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복직을 하며 아이들이 아플까 봐 걱정했지 내가 아플 거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해 기준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에게는 더 관대하게 할 일도 스스로에게는 더 높은 기준을 세우고 달성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말은 이렇다.
못하는 것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항상 플랜 B를 만들어 두자.
에너지의 80%만으로 생활을 해야 남은 에너지로 체력을 챙길 수 있다.
오늘만 살면 안 된다.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남겨두자. 무리하지 말자.
잠과 음식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오래 할 수 없다.
도움을 요청하고 질문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은 감수하자.
이런 말을 되뇌다 보면 이제는 워킹맘이라는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 같다.
많이 깨져가며 나의 바운더리를 넓혀가고 있다. 생각의 틀을 조정하고 있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렇게 스며들고 있다. 워킹맘의 생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