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강철저 May 10. 2024

기록한다는 것은 매일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

침식되어 가는 기억들

쌍둥이를 낳은 해가 2020년이었으니 딱 코로나 시기와 겹쳤다. 아무 데도 나갈 수 없어 집 안에만 있어야 했고 가뜩이나 몸과 마음이 피폐한데 고립되고 보니 쉽게 침울해졌다. 갑자기 늘어난 두 아이와 만큼의 짐은 가뜩이나 좁은 집을 더 좁게 만들었다. 하루하루 가슴이 갑갑해져 왔다.


아이를 무사히 낳았다는 기쁨이 1이었다면 세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막막함이 9였다. 새벽 수유를 하려고 깼다가 걱정과 불안으로 다시 잠들지 못하기도 했다. 


그즈음 나는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반복된 일을 하기에 몸은 녹초가 되었음에도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 느낌이 없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뭔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별거 아닌 일상인데 굳이 남겨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뭐라도 써야 이 하루가 의미 있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종이노트에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며 하루를 끝맺음하거나

새벽에 일어나 생각을 양동이로 쏟아붓듯 글을 쓰고 나면 뭔가 개운했다. 생각이 정리가 되고 하루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힘을 얻었다. 


'여기까지 오늘이니까 이제는 쉬자.' '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으니 힘내자.'  되뇌며 하루맺고 끊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기를 2년 정도 쓰고는 일기들을 모아 글쓰기 공모전에 냈었다. 작은 상이지만 막상 내 글로 상을 받고 나니 신기했다. 내가 스스로 쓰면서 치유가 된 글이 남에게도 와닿을 수 있구나.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이후 누군가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를 추천해 주었다. 어플을 깔고 들어갔더니 백지에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 흔한 광고나 팝업도 없이 하얀 화면과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으니 마치 나에게 지금부터 맘껏 달려보라고 하는 신호 같았다. 


처음으로 브런치에 나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쓴 글이 바로 <나는 내가 다둥이엄마가 될 줄 몰랐다>였다. 똥으로 시작해서 똥으로 끝나는 그 글은 쓰면서도 재미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글쓰기에 본격적인 재미를 느낀 게.

 

브런치는 글을 맘껏 쓰도록 판을 깔아줬고 나는 어렴풋이 떠오르고 지나갈 생각들을 붙잡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종이노트에 연필로 글을 쓰는 건 그만두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도 일기장에 되는대로 썼다면 브런치에는 글이 되게끔 고민하고 배치하고 다듬어 써야 했다. 글을 발행하기 전에 생각을 좀 더 정리하기도 하고 깊이 확장하느라 계속 고치고 또 고친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가 늘기도 했지그 대신 정돈되지 않은 글은 남지 않게 되었다.


결국 나는 일상의 권태로움은 기록하지 않게 되었다. 일상의 반복되는 지겨움을 기록하지 않게 되면서 내가 어떤 일을 권태로워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았고 그 결과 기억에도 남지 않게 되었다. 기록하지 않은 것은 기억에 오래 남지도 못했다.


최근에 무심코 옛날에 쓴 일기장을 열었다가 완전히 잃어버린 기억들을 발견했다. 놓지 않았더라면 전혀 기억하지 못할 일들이 빼곡하게 써 있었다. 


읽으면서 그때의 배경은 흐릿하게 떠오르는 반면 그때 느낀 감정은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가 이런 일들에 괴로워하며 몸부림쳤구나, 이런 일들에 힘을 얻어서 하루하루를 살아냈구나.


일기장은 아무도 보는 게 아니니까 좀 더 여과 없이 쓰고 감정적으로 쓰고 필터 없이 썼다 보니 좀 더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 다시 써야겠다.


지금의 이 생생한 고통과 갑갑함과 상념들을 붙잡아서 기록해두지 않으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마치 어젯밤의 꿈처럼. 감정은 남고 기억은 남지 않는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다. 다만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 때에는 뭘 배우는지 알 수 없다. 벗어나면 보인다.


일기장을 보다 보니 고통 속에 있는 과거의 내가 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불안해하는 과거의 나를 이미 터널을 나온 지금의 내가 바라본다.


지금의 나는 또 다른 터널 속에 있다. 다시 기록해야겠다. 매일의 무의미에 맞서며 지난하고 권태로운 과정을 거쳐 얻는 게 무엇인지 지금은 알 수 없으니 그저 쓰면서 찾아가 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공부를 덜 했으면 네가 좀 더 편하게 살았을 텐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