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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Jun 30. 2024

내가 다큐를 찍다니...(1)

브런치글로 방송섭외를 받았다.

1. 야~호~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마치 아무도 없는 산 꼭대기 위에 올라가 혼자 야~호~ 외치고 내려오는 것과 비슷하다. 후련하긴 한데 딱히 누군가에게 가닿는다는 느낌 없이 공기 중으로 말이 흩어사라지는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런치의 <제안하기>로 메일이 왔다.

내 글을 읽고, 내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방송을 함께 만들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내 이야기를 누가 듣고 있었던 거네...?


그러니까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은 공중으로 흩어 없어지는 말들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듣고 있고 메아리처럼 내게 제안으로 다시 왔다는 생각이 들어 신기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방송이라니..


방송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살고 있기에

처음에는 경계심부터 들었다. 아이들 얼굴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게 싫어서 그 흔한 SNS도 안 하는데, 레비라니... 영구박제되는 건데 중에 애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런저런 고민들로 결정에 시간이 걸리긴 했다.



2.  이유 없음의 이유


처음 내게 제안 메일을 보낸 사람은 프로그램의 막내작가라고 했다. 송팀에서 기획하고 있는 주제가 <아 낳기로 선택한 사람들>(가제)라고 했고, 산율이 0.6인 나라에서 그 다섯 배인 3명이나 낳기를 결심한 이유가 있지 않나 궁금하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딱히 아이를 낳은 이유가 없었기에 처음에는 완곡하게 거다.


그런데 저는 딱히 이유가 있어서 아이를 셋이나 낳은 건 아니라서요. 제 글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저희는 하나를 키우다가 너무 예뻐서 하나 더 낳아볼까 하다가 쌍둥이가 태어난 경우라, 셋을 낳겠다는 이유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없을 거 같아요.  


그러자 문의 답을 받았다.

 


이 답변을 받고 나니 어쩌면 나의 이유 없음이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커지고 있을 때 막내작가님의 마지막 말에 용기를 얻었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런 편지를 받으면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말이야말로 모든 행동과 생각의 시작이란 말,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분이 정말 귀하다고 생각한다는 말.


남편에게 메일을 보여주고 어떻게 할까? 물었더니 남편이 대답했다.


안 할 이유가 없지.


남편은 내가 글을 쓰는 이유나, 이 다큐멘터리를 만드 사람들의 기획의도나 비슷한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느끼는 일상의 깨달음, 확장되는 세 힘든 만큼 충만하게 채워지는 경험의 스펙트럼. 이런 것들을 일상에서 그저 흘려버리지 않게 잊지 않으려고 기록을 남기는 나,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이미지와 메시지로 영감을 주는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같은 목적인 거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 삶을 통해 깨달은 것을 텍스트로 남기고 싶어서 브런치를 하는 거였다.


그렇게 남겨두면 나 스스로 힘들 때에도 다시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고 비슷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송은 그런 나의 생각을 글 대신 영상으로 보여달라는 거였다.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통해서.


어쩌면 글이라는 매개보다는 영상과 인터뷰를 통해 전달하는 나의 삶과 나의 말들이 더 직관적으로 시지를 전달할 수다는 생각에 미치자,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렇게 우리는 방송을 찍기로 했다.



3.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다큐.


방송을 찍기 전 사전인터뷰에서 내가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피디와 메인작가였다. 내게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지 설명하고 나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한분은 내 또래로 아이를 낳고 복직한 지 얼마 안 된 워킹맘, 한분은 나보다 약간 높은 연배의 미혼 여성이었다. 나는 방송국 사람들을 만난 건 첨이라 긴장했지만, 막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누군가가 내 일상을 이토록 궁금해하고, 내 생각을 이렇게 궁금해하며 물어보고 내 말을 받아 적는 걸 보며 기분이 묘해졌다. 그들이 원하는걸 내가 갖고 있지 못할 거 같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내 걱정과 달리 두 분은 태평하셨다. 사전인터뷰에서도 내가 하는 말 중 몇 개는 잠시 멈추게 하더니 구체적인 이야기는 실제 인터뷰에서 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촬영에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의 생각과 삶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나와 남편과 아이들, 출근하는 우리 가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의 일상. 가족의 외출이나 여행에서의 모습 이런 것들도 모두 촬영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는 대본도 없고 연출도 없는 일상 모습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무슨 답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질문에 생각나는 대로 대답하며 수다를 떨듯 사전인터뷰를 했.


두 분의 방송국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들을 적고 추가적으로 질문하는 모습을 보며,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새롭고 신기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들이 대체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 건지 모르는 채로 첫 촬영날짜를 잡고 헤어졌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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