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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이 Feb 27. 2019

버려지는 반려동물

근거도 없이 달랑 이거?

아무런 자료가 없는 이런 통계를 믿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화면을 공중파에서 보냈냐죠. 통계나 객관적 사실 따위 안중에도 없는 이른바 선동가들이 언론계에 많다는 것은 둘째 치고, 이들은 왜 이런 화면을 내보냈을까요? 우리는 확률보다는 길거리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버려진 동물들이 왜 존재하냐를 물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라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세상은 정수만큼이나 변수도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려동물은 의무가 아닙니다. 싫어하는 사람은 키우지 않아도 됩니다. 즉, 반려동물을 버리는 이들은 스스로 키우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본인들이 선택한 것은 어떠한 변수가 생겨도 책임져야 합니다. 그것이 엄청나게 고통스러울지라도 말이죠. 애완동물을 기르기로 결정했고, 데려왔다면 그 순간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동물을 책임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동물의 최후까지 보살펴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죽은 고양이 '진두'. 부모님이 키우셨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동물을 키우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냥 표면적으로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동물의 먹이와 배변 문제는 기본이고, 짖거나 울어서 타인에게 줄 피해를 방지하는 것도, 산책이나 훈련 등에 소비하는 나의 시간이나 먹이에 드는 비용 등까지 말이죠. 애완동물은 갓난아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산책을 나갔다 오지도, 먹이를 스스로 구해서 먹거나,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것을 자제하는 인내력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심지어 당신이 없을 때에는 엄청나게 외로워하기도 하죠.

흰둥이는 동물이 아닙니다.

동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동물의 모든 것을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갓난아이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밤에 우는 것까지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은 그것을 감내합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갓난아이와 동물을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책임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고, 동물을 포기하고 버리죠.


그런 사람들 전체를 싸잡아 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정말 복잡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함께 사는 가족 중에 유일하게 동물을 키울 줄 알았던 사람이 죽어서 어쩔 수 없고, 우리 모두는 동물을 싫어한다'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사정이 있는 가정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요? 이런 복잡한 사정만 있는 사람들만이 동물을 버렸다면 세상에 버려진 동물은 아마 극소수일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뉴욕주 Hartsdale에 있는  미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애완동물 묘지

결국 우리는 애완동물을 기를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은 따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에 기를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춤을 좋아하는 사람과 ‘잘 추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말이죠. 게다가 그저 기를 수 있는 능력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노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변치 않는 관심과 애정은 물론이죠. 자신이 사랑받는지 아닌지 동물은 아니까요. 애정 담긴 동물의 눈빛을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애완동물을 죽을 때까지 함께한 사람에겐 존경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은 기꺼이 책임을 지겠다고 선택했고, 끝까지 노력한 '능력자' 분들이시니까요.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저는 동물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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