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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이 Apr 29. 2018

날 울린 책

고등학교 때 일이었습니다. 친구가 갑자기 책을 읽고 있다가 눈물을 흘리더군요.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도 그 책을 읽었지만 울만한 부분은 전혀 없었거니와 책을 읽다가 운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상실의 시대에 마음도 아파보고, 별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동도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이 마음 밖으로 넘쳐 흘러 나온 적은 없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활홀한 표정이 된다거나, 소리를 치고 싶다는 욕망이 들거나 눈물을 흘리는 그런 것들 말이죠.

세월이 많이 흘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다가 저는 처음으로 울컥했습니다. 물론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친구가 책을 읽다가 운 그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운 부분은 스포일러가 아니기에 그 부분을 옮겨봅니다.

[뭐, 그런데 그때  당신의 형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제 턱수염을 움켜쥔 채 저를 질질 끌고 다니다가 술집에서 광장으로 끌어냈는데 때마침 그때 학생들이 학교를 나오는 길이었고 일류샤도 그들 틈에 끼어 있었던 겁니다. 제가 그런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자, 일류샤는 곧장 아빠, 아빠!’라고 외치면서 제게로 달려들었습죠. 저를 붙들고 껴안고 저를 빼내려고 하면서 저를 모욕하는 그에게 소리치더군요. ‘놓아주세요, 제발 놓아주세요, 이분은 우리 아빠예요, 아빠를 용서해 주세요.’ 그렇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소리쳤습니다요. 그 고사리 손으로 그 사람을, 그것도 그의 손을 붙들고서 그의 손에 입을 맞추기도 했지요……. 저는 그 순간 그   의 얼굴이 어땠는지 눈에 선합니다, 잊을 수가 없고, 또 잊지 못할 겁니다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민음사.


이렇게 옮겨와보니 감동이 덜 하긴 하네요. 직접 책을 읽어보시면 좀 다를겁니다.


사실 운 것도 모자라그리고 책 내용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적도 있고, 중학교 1 학년 이후로 늘 부정적이었던 기독교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고,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방법을 알려준 책이 되었습니다. 제게 이렇게 다양한 부분에서 영향을 준 문학은 없었습니다. 이런 책이 제 인생 책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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