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개월 간의 백수 생활
지난 2014년 12월에 시작한 백수 생활이 끝나간다. 실질적으로 오늘(2015년 9월 13일)이 마지막 날이다. 한 동안 소득 없이 모아둔 돈, 부모님 돈을 야금야금 쓰며 보내왔던 10개월 여의 시간이 끝나간다. 묘한 기분이다. 다시 일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충만했던 자신감은 백수 마지막 날 다소 약해졌다. 그렇지만 싫은 기분은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많은 것들을 배웠던 것 같다. 그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애초 목표했던 영어 공부에 모든 것을 올인하며 보내지는 못했으나 삶을 배웠고, 사람을 배웠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고마운 시간이었다.
3월부터 5월까지의 시간은 '혼란' 그 자체였다.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일은 나 때문이었다. 나 답지 못한 나, 사랑이라는 것에 목말랐던 내가 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불확실한 운명에 불나방처럼 나를 내던졌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로 인해 나를 아껴주던 이들에게도 본의 아니게 큰 스트레스를 줬으니 이 두 달 간의 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교훈을 남겼다.
사랑이라는 것이 행복한 인생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이 사랑인지, 사랑이라는 탈을 쓴 착각인지 잘 구별해야 한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지만 나를 버려가면서 까지 할 필요는 없다. 사랑-엄밀히 말하면 사랑 아니었다-이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일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은 중요하지만, 원초적인 사랑의 감정, 강렬한 끌림의 감정만으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나는 자유로웠다. 위에 언급한 2달의 시간, 그리고 그 일을 이겨내는데 필요한 시간 외에는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스스로 정한 원칙을 깨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먼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날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집에만 있는 날은 절대 없어야 했다. 영어 학원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운동을 하며 몸을 가꿨다. 공부를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최대한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미국 드라마 보기, 영화 보기, 영어 팟캐스트 듣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 다음으로는 조급함 버리기에 대해 많은 노력을 했다. 목표를 갖고 시작한 백수 생활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갖고 있는 자금이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조급함이 생겼다. 이 조급함은 백수 생활에 가장 큰 적이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대단한 도움이 아니었다. 고민을 들어주고,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준 지인들과 부모님의 큰 사랑을 느꼈다.
어떤 것이든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보컬 트레이닝을 절대 놓지 않았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게다가 보컬 트레이닝은 즐겁다. 기회가 될 때에는 직접 요리를 했고, 집에 있을 때에는 주방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된 이후에는 주제를 가리지 않고 무언가 '쓰는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다. 최대한 유의미한 일을 하려고 했다.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존재의 가치가 약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소중한 존재다. 현재 브런치 매거진 '동글'에 참여하고 있는 두 명의 후배, 동생이자 이제는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그들은 큰 활력과 동기를 부여해줬다. 우리는 모두 꿈을 좇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 당장 백수에 창업 준비생일지 몰라도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셋의 만남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인생은 길고, 중요한 것은 방향성과 목표, 그리고 그에 도달하기 위해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해 나가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하고, 많은 것들을 겪을 것이다. 10개월 동안의 백수 생활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들이 중요한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23살부터 32살 때까지 바쁘게 지내온 시간 동안 놓치고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한 번에 깨닫느라 멘탈이 부서지고, 반성하고, 자존감을 다시 갖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제는 끝났다. 인생 2막이 시작될 것이다. 더 멋진 삶,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도록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나가며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