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예민함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한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니까." (눈부신 안부-백수린)
다시 찌르르한 문장으로 열어봅니다. 지극한 정성과 수고라. 맞아요. 낭만은 강렬하되 찰나의 순간이며, 실은 굉장히 애를 써야만 하는 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또 괴롭기만 하냐면 그건 또 아니란 말이죠. 뭐랄까 당신을 위해 기꺼이 애를 쓰리라. 이런 느낌일 거예요. 당장 힘들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웃는 얼굴, 그 하나를 보려 먼 길을 한달음에 내딛는다거나.. 아, 낭만이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지극한 정성과 수고, 스스로에게 쏟아본 적 있나요? 물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지요. 그 과정에서 자아가 많이 깎여나가기도 하죠. 이런 당연한 사회화 과정이 아닌, 지나치게 자신에게 박한 것이 아닌가 같이 돌아보자는 거예요. 예민하기 때문에 자신을 잡도리하는 경우가 더 많지요?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날카로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면서요.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리기도 하고요. 계속 이렇게 지내면 겉은 어찌어찌 꾸미겠는데 속이 곪아요. 그러니 우리, 정성과 수고 한 조각이라도 나에게 베풀었으면 해요. 이런 맥락에서 예민함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계속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아까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는 사회적 존재예요. 타인, 집단, 환경과 분리되어 살 수가 없어요. 그만큼 영향력이 지대하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예민함의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자유분방한 특성에 유연함이 강점인 예민인이 있다고 가정할게요. 그런데 이 사람이 엄격하고 수직적인 조직에 속해있다면? 나름 두둑한 월급을 받는다 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고단하고 날카로워질 가능성이 높겠지요. 이때 자신의 예민함을 탓하는 게 도움이 될까요? 아닐 확률이 더 높습니다. 내 탓이오 하며 맞지 않는 곳에서 시들어가는 것보다 내가 어디에 발 담그고 있는지, 이 집단의 특성이 무엇인지, 이곳과 내가 어느 정도로 불화하는지, 이건 견딜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이와 같은 질문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게 훨씬 이로울 거라 생각해요. 이런 방식의 접근은 나의 특성을 고정 값으로 두는 거죠. 나 예민해. 이건 그냥 사과가 빨갛다는 것과 똑같은 특징일 뿐이지. 그러면 환경을 바꾸는 게 조금 더 쉽겠네? 이런 방식으로요.
근데 참.. 이게 말은 쉽거든요. 예민한 나는 그대로 두고 환경을 바꿔보세요☆ 요런 느낌일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처럼 선택에 대한 기회비용이 지나친 때에 당장 밥벌이를, 해 오던 것을 바꾸라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물론 이 부분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훨~~~ 씬 큽니다). 여기에서 적용하면 좋은 것이 구체적인 기간 설정이에요. <문제: 회사랑 안 맞음, 이상: 이직 또는 퇴사, 현실: 대출과 할부>. 이런 상황이라면 당장 회사를 그만두기보다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어느 정도가 되는지, 경제적인 여건은 어떤지, 만약 버텨야 한다면 원하는 것을 위한 자금 마련의 수단으로 비틀어서 보는 거죠. 그게 1년 정도다? 그러면 생각보다 버틸만합니다. 우리가 막막해지는 것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라는 막연함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서, 구체적인 기간 값을 정해버리면 무엇인가 해볼 수 있는 것으로 변화하거든요. 요건 메타인지나 인지적 재평가(정서조절 기술)와 비슷한 맥락일 거예요.
버티는 동안 약간의 심리적 기술을 적용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라운딩 기법이라 부르는데, 마음 챙김을 바탕으로 한 명상이 가장 대표적이겠고요. 다만 명상은 혼자 각 잡고 하기가 조금 어려우니 매체(유튜브, 어플 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혹은 편안하게 누은 채로 호흡 자체에 집중하기만 해도 나름 효과가 있답니다. 심리적 기술의 본질은 '현재'에 집중하는 거예요. 우울은 과거의 후회들로부터,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있는 경우가 많으니 호흡과 같은 신체 감각에 집중하면서 우리를 지금에 머무르게 만드는 거죠. 이 본질만 기억한다면 기술의 종류나 방법은 부차적인 거랍니다.
(그런데 만약 상사가 지독하게 괴롭혀서, 지나치게 과중한 업무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든다? 이건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리는 게 스스로를 살리는 거예요.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 중요한 과업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자기 자신을 대하는 데 조금 더 수고를 들이기로 해요.
그럼 예민함이 예민함인 채로 괜찮아질 수 있을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