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은 2008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소셜벤처 전문 임팩트 투자사다. 임팩트 투자란 ‘재무적 수익과 함께사회 및 환경적 영향을 창출하려는 의도로 회사, 조직 및 기금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풍은 한국에서 임팩트 투자는 물론이고 소셜벤처에 대한 개념조차 익숙하지 않았던 시기부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인 소셜벤처에 시드 투자를 해왔다. ['2019 에스오피오오엔지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리포트' 중]
자기 객관화 참 어렵다.
“나에 대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하지만, 데이터를 따져 묻는 검증과정 앞에서는 당황하게 된다. “당신의 특기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글쓰기를 잘하는 이유를 데이터로 입증해보세요”라는 질문이 더해진다면 말문이 막힌다. 질문과 답변 그리고 고민이 반복되다 보면 원론적인 의구심이 든다.
‘내 특기... 글쓰기 맞나?’
소셜벤처 창업가를 괴롭히는 딜레마다. 제안서를 작성하거나 심사위원 앞에 설 때마다 식은땀을 흘리게 한다. 숫자를 요구하는 질문에 응답자의 입술은 말라가고, 급조된 답변으로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한다. 일부는 말끝을 흐리거나, 화를 내 답변의 기회를 날리기도 한다.
숫자로 기록하는 주관식 답변
당초 재무성과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답변에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을 것이다. 매출, 고정비, 영업이익, 영업외 이익 등 특정 데이터를 매출 증가율, 부채비율, 총자산이익률(ROA) 같이 정해진 산식에 대입하면 원하는 답이 나온다. 무엇보다 매달 10만~20만원만 정도 부담하면 이 업무를 대행해주는 곳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회적성과는 다르다. 이는 주관식 답변을 수치화하는 작업과 비슷하다. 이상한 소리 같지만 사회통계를 연구하는 조사방법론에서는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글쓰기가 특기인지 그 여부를 알고 싶다면, “한 달에 글쓰기를 몇 회 합니까” “글쓰기로 수익을 냈다면 그 규모는 얼마입니까” 등의 질문으로 객관적인 답변을 유도한다. 이 같은 방식은 조작적 정의라 불린다.
조작적 정의. 사실 몰라도 된다. 조사방법론이 익숙하지 않다면 조작적 정의를 실전에서 유연하게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조작적 정의까지 들먹인 까닭은 “사회적가치(성과)는 수치화할 수 없다”는 변명을 막기 위해서다. 사회적성과도 충분히 객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많은 플레이어가 이를 증명해내고 있다. 그중 소풍(에스오피오오엔지, sopoong)의 숫자 사용법은 단연 눈에 띈다.
소풍은 임팩트 투자사다. 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성과를 동시에 고려해 투자를 수행한다. ‘돈을 벌 수 있다’만으로는 소풍의 투자심사에서 합격점을 받을 수 없다. 사회·환경 분야에서의 성과까지 고려되기 때문이다. 소풍은 옐로우독, D3쥬빌리(디쓰리쥬빌리), HGI(에이치지아이) 등과 함께 ‘국내 8대 임팩트 투자자’(더나은미래_2016년5월10일자 <‘투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로 꼽히기도 했다. 임팩트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 중 소풍의 영향력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풍은 어떻게 유명해진 걸까.
덜 중요한 수치 vs 더 중요한 수치
투자 규모만 따져 본다면 소풍의 특별함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6월 현재 소풍의 홈페이지를 보면 지금까지 총 66개 기업에 투자했다. 평균 투자규모는 4000만~5000만원 수준(<2019년도 에스오피오오엔지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리포트>). 어림잡아 지금까지 30억원 규모의 투자를 한 셈이다. 반면 또 다른 임팩트 투자사인 옐로우독은 지난 4년간 257억원을, D3쥬빌리(디쓰리쥬빌리)는 지난 9년간 215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THE VC).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다른 임팩트 투자사들과는 달리 소풍은 예비 창업자나 초기 창업자에 집중 투자(시드, Seed)한다. 심지어 액셀러레이팅, 정기 데모데이 등 초기기업 육성에 특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선택과 집중. 이들은 시장의 다양한 척도를 두루두루 충족시키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본인들의 지향점을 정하고 각종 데이터를 지도삼아 나아가는 방향을 수정한다. 그렇기에 방향성이 맞지 않는 데이터는 큰 의미가 없다.
출처 : 소풍 홈페이지(https://sopoong.net)
소풍에게 중요한 숫자는 무엇일까? 홈페이지,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리포트, 기사 등을 기반으로 소풍이 내세우고 있는 숫자들을 추려봤다.
#1
소풍은 국내 최초 임팩트 투자사다. ‘최초’는 모든 경쟁사가 탐내는 타이틀이다. 물론 최초가 최고(最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장의 문을 열었지만 더 이상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소풍의 경우 포털 미디어 빅데이터 분석이나 키워드 분석을 통해 시장에서 소풍의 포지션 점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팩트투자”가 포털 미디어가 369회 언급됐던 2017년 “소풍”은 131회 언급됐다. 이 수치는 2018년으로 넘어오면서 각각 564회, 131회로 뛰었다. 여전히 임팩트투자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까닭에 소풍의 최초에서는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40
2018년, 소풍은 젠더 관점의 투자를 공표했다. 성별에 따른 편견을 지양하고 모든 창업자들이 고르게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투자심사 프로세스를 보완한 것. 그 결과 소풍이 투자한 기업 중 여성 창업가 비율은 2018년 23%에서, 2019년 33%로 최근에는 40%까지 늘어났다.
#89
설립 3~5년 후 신생 스타트업 생존율은 50% 미만으로 알려졌다. 시드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소풍에게도 투자기업 생존율은 중요한 수치다. 6월 현재 소풍의 투자기업 생존율은 89%다. 덧붙여 후속투자유치 비율은 33%에 달한다.
#1,009,800,000,000
소풍은 포트폴리오 전체 기업의 가치를 1조98억원이라 밝히고 있다.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피투자사들은 사회적가치를 중시하는 소셜벤처인 데다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한 초기 창업기업도 있기 때문에 유의미한 재무성과를 산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소풍은 재무성과 가늠 척도로 기업가치 증가율과 매출액 증가율을 선택했다. 과거 대비 현재의 변화 정도를 보여주는 값인 만큼 초기 창업기업에게 유리한 지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