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시작한 후배가 있다. 푸릇푸릇 채소 사진으로 가득한 후배의 인스타그램을 볼 때마다 ‘독한 것’ ‘대단하다’ 탄식하게 된다. 고기를 끊다니. 나는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고소한 기름 냄새와 입 안에서 터지는 육즙. 그리고 기분 좋은 포만감까지. 고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 많다.
내 취향과 달리 채식주의자 인구는 매년 늘고 있다. 한국채식협회 통계를 보면 2019년 기준 국내 채식주의자 인구는 약 150만 명이다. 2008년 15만 명이었던 채식주의자 인구는 10년 만에 10배가 됐다.
채식이 개인의 신념, 취향을 넘어 인류의 생존과제로 언급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중 14.5%가 축산 부문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가스보다 소들이 내뿜는 메탄가스가 온실효과에 더 크게 기여한다고 한다(한겨레_채식 위주로 바꾸면 온실가스 70%까지 감축).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싶다면 전기차를 타는 것보다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채식주의자 인구는 늘어날게 될 것이다.
이기적이라 할지 모르지만. 동물들이 불쌍하고, 지구 환경도 걱정되지만 고기가 먹고 싶은 건 여전하다. 대안은 있다. 가축을 기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고기. 도축이 필요 없고 비 채식주의자도 만족시킬 수 있는 고기. 푸드테크 일종인 대체육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는 배경이다.
비욘드미트 '더 비욘드 버거'(출처: 동원F&B)
대체육 시장은 크게 식물성 고기와 배양육으로 나뉜다. 식물성 고기는 콩 같은 식물성 원료에서 추출된 단백질로 만든 대체육이다. 콩을 가공해 만든 ‘콩고기’와 비교하자면 식물성 고기는 사실상 ‘고기’라 할 수 있다. 반면 배양육은 소, 돼지, 닭 등 가축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실험실 고기’다.
비욘드 미트는 식물성 고기 시장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비욘드 미트의 창업주 에선 브라운은 동물 애호가다. 그는 청정에너지 연구 중 축산업과 온난화의 관계를 알게 됐고 식물성 고기 개발 시작했다고 한다. 이 회사는 100% 식물성 원료로 만든 닭고기를 출시했고, 성공했다. 빌 게이츠, 맥도날드 전 최고경영자(CEO) 돈 톰프슨,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이 투자한 기업으로도 알려졌다. 지난해 5월 비욘드 미트는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나스닥 상장 첫날, 공모가 25달러로 시작된 주가는 하루 만에 65.75달러로 뛰어올랐다. 2020년 8월 27일 현재 비욘드 미트는 한 주당 125.52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어림잡아 주가가 4배 이상 상승한 꼴이다.
비욘드 미트의 실적은 그리 좋지 못하다. 2018년 매출 8790만 달러, 순손실 2990만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은 2억 9790만 달러로 전년 대비 올랐지만 순손실(-1245만 달러)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제품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다. 비욘드 미트 제품은 국내에서도 판매 중이다. 현재 ‘비건 패티’ 1팩(227g)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1만 2000~1만 29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같은 날 마켓컬리에서 ‘호주산 냉장육’(250g)이 1만 1900원, ‘국내산 무항생제 삼겹살’(500g)이 1만 59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출처 : Memphis Meats
배양육 시장에서는 멤피스 미트가 독보적이다, 멤피스 미트 창업자는 심장학을 전공한 의사 출신 우마 발레티다. 그는 어린 시절 도축 장면을 목격했고 이 끔찍한 도축 방식을 바꿀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왔다고 한다. 우마 발레티는 지난 2015년 줄기세포 전문가 니콜라스 제노베세와 손잡고 이 회사를 세웠다. 멤피스 미트는 2016년에 소고기 미트볼을, 이듬해에 배양육 닭과 오리고기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냈다. 공장 설립 등 상용화 절차를 밟고 있다고 알려졌다. 빌 게이츠, 농업회사 카길, 세계 2위 육류회사 타이슨 푸드 등이 멤피스 미트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욘드 미트와 멤피스 미트 뿐 아니라 임파서블푸드(식물성 고기), 햄튼크릭(식물성 식품), 미요코의주방(식물성 치즈) 등 다른 푸드테크 스타트업 역시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주요 고객층(채식주의자)이 한정된 비즈니스 모델인 데다, 시장 경쟁력도 장담할 수 없고, 재무성과마저 좋지 않지만. 푸드테크 스타트업들을 향한 투자자들의 러브콜은 이 어지고 있다.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축산시장을 주도하는 선두그룹과 다크호스의 순위가 전환되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다. 대체육은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이다. 대체육 시장에 배팅하는 유수의 투자자와 굴지의 농업·축산기업도 비슷한 생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육식의 종말이 아닌, 축산의 종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