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장마 700자
잠수교 옆 간이화장실은 장마에 쥐약이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다. 박 씨는 물에 젖어 잔뜩 불어난 박스 껍데기들을 꽉 움켜쥐었다. 2년 남짓을 살았다.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2평 남짓한 장애인 화장실이 그의 집이었다. 노숙인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인근에 위치한 편의점 덕에 쓰레기통엔 먹다 남긴 라면이며 치킨이 즐비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교체한 핸드 드라이어는 성능이 꽤 좋아서 젖은 팬티나 양말 따위를 금방 말릴 수 있었다. 변기 위에 올라가 팔을 높게 뻗으면 편의점의 와이파이를 훔쳐 쓸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 보이는 반포 신축 아파트의 야경이었다. 차가운 타일 바닥에 등을 붙이면 창문 너머로 아파트의 매끈한 허리가 보였다. 박 씨는 그걸 보며 종종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문제는 침수였다. 서울시 화장실 개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타일을 갈고 거울에는 스티커를 붙였지만 여전히 장마철에는 발목까지 물이 찼다. 올해 장마는 유독 거셌다. 화장실을 채운 빗물은 어느새 박 씨의 무릎까지 차올라 있었다. 박 씨는 비틀대며 변기 뚜껑 위에 올라섰다. 그때 박 씨가 쥐고 있던 휴대폰이 연달아 진동했다. 와이파이가 연결된 모양이었다. 한강 수위 상승에 따라 잠수교 통행을 제한한다는 재난 경보였다. 박 씨에겐 그게 퇴거 통보로 들렸다. 그는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jtbc 10기 인턴 취재기자 2번 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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