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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Oct 30. 2023

터널을 나온 뒤, 마주한 일상이 꽤 무서웠어.

우울증 완치 중?

오늘도 더 눕고 싶은 나태한 마음과 물먹은 이불처럼 나를 잡고 늘어지는 무기력감을 털어냈다. 침구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고, 각을 잡아 이불을 개키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면 요즘엔 매섭고 꽤 차가운 바람이 갑자기 집안으로 들어와 나의 얼굴을 때린다. 정신이 번쩍! 하고 들 법도 한데 나는 아직 "무섭다. 나가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문밖은 나에게 늘 무섭고 두렵다. 그나마 지금은 부모님 집으로 들어와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얇은 방 문 하나'만 열면 갖가지 음식들과 신선한 물, 간식 그리고 싱그럽고 귀여운 조카들과 난초, 화분들이 있지만 혼자 살 때는 (그리 크지 않은 집이었기도 하고) 그렇게도 문이 크고 무겁고 무서웠다. 아무리 배달이 잘되어있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사람이 꼭 밥으로만 살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가끔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할 때면 전날 쉬이 잠에 들 수도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솔직히 꼬박 일주일 전부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도 긴장이 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두렵고 무섭고 눈물이 계속 흘렀다. 지금생각하면 유난스럽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지금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서, "내가 많이 나아졌구나."싶은 대견한 마음이 드는 정도다. 모쪼록 아침에 일어나 침구정리를 하고 간단하게 밥을 먹고 산책을 나선다. 만보를 조금 넘겨서 집에 들어오면 상쾌한 기분이 들고 그나마 좋아하는 샤워(물을 좋아함)를 하고 나면 하루를 정말 잘 보낸 것만 같고 나 자신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뿌듯한 기분이 들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런 기분을 '의욕 있다.'이라고 하는 걸까?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책상에 앉아 보통은 영어공부를 하는데, 오늘은 알바사이트를 보았다. 한 시간 정도만 보려고 했는데, 내가 키워드 설정을 잘못해 놓아서 검색설정을 바꾸느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렇다고 하기엔 지금 대략 3시간이 지났음)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 근무요일이 바뀌면서 다른 일을 추가로 해야 할 상황이라 겸사겸사 알아보는 중이다. 우울증으로 거의 누워있는 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상담을 계속했고, 상담 중에 '뭘 하며 살고 싶으세요?'이런 류의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까 내 생각이 정리되었는데, 호구지책을 마련하여 돈에 휘둘리지 않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대답을 늘 한결같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호구지책을 어떻게, 어떤 일로 마련을 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고민과 시행착오를 많이 겼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공부'가 머리를 많이 쓰는 일이다 보니 최대한 몸을 쓰는 일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 쓰는 일은 역시 운동신경과 근육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체력이 받쳐줘야 할 수 있는 일이라 나는 거의 서류나 면접에서 떨어지기 일쑤였고 겨우 붙었던 1곳에서는 일주일 만에 해고를 당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손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나, 몸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나, 말로 먹고사는 사람이나 하던 쪼(?)가 있으니 이 나이의 어정쩡한 아르바이트생을 가르치기도 애매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해 본 것이 지금 일인데 솔직히 '되면 좋지만, 안될걸?'이라고 생각한 일을 하고 있어서 신기하고 행복하고 그렇다. 그리고 내가 본업이라고 생각한 일(연구)에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 것도 같아서 더욱 기분이 좋다.


우울증 약을 먹던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오늘에 감사하고 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려고 하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어둡고 숨 막히고 무서운 터널을 혼자 걷는 느낌으로 기억된다. 질감은 파스텔이나 크레파스 같은 질감이다. 검은 먼지들이 뿌옇게 날리는 이미지로 기억되기 때문에 나에게 더욱 그런 느낌으로 남는 것 같다. 그렇게 깊고 짙은 어둠 속에서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나오게 되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우울증에서 어떻게 완치되셨어요?'라고 물으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빛 속에 있었어요.'라고 대답할 것 같다. (하지만 이리저리 살펴봐도 난 아직 완치는 아니라 그런 질문을 받을 순 없을 것) 아무튼 어둠 속이 아니라 빛 속에서 내 손과 얼굴을 마주하고 나는 너무 일이 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공부는 자꾸 피드백이 없고, 보수가 없으니 내가 한 노동에 대가를 받아보고 싶었다. 그런 단기적인 성취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알바를 시작했고 벌써 3번의 월급을 받았다. 솔직히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이지만 월급을 받고, 여기저기 통장에 나눠 넣으면서 이번 달을 상상하면 너무 행복하다. 처음 월급을 받아서 스킨로션을 샀고 두 번째 월급을 받아서 폼클렌징을 샀다. 세 번째 월급을 받아서 단백질음료를 사서 아껴먹고 있고, 다음 주즈음 네 번째 월급을 받으면 옷장정리함을 사서 옷장정리를 좀 해볼까 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이런 것일까? 싶어서 기분이 너무 좋다. 아직은 일이 적어서 그런지 '월요병' 같은 것은 딱히 없지만, 일이 많아진다고 해도 지금의 마음으로는 다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은 주 1-2회 일하는데, 주 3-4회 근무로 늘어나면 그만큼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일을 늘려도 괜찮을 것인지 망설였고 또 고민이 많았다. 그렇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들처럼 하루에 8시간씩 일하게 되는 일근육을 가지려면, 슬슬 늘려가는 것도 좋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에서 나온 뒤, 일상에 가득한 햇볕이 무섭고 그 햇빛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이 눈에 보여서 두려웠다. 약을 먹지 않으니 내 몸의 모든 감각들이 살아나 몇 년 만에 느끼는 감촉이 생경해서 무섭기도 했다. 아니 솔직히 지금도 조금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쉬었고, 또 넘어질 수도 있지만 넘어지는 순간까지 꾹꾹 눌러 걸으며 나아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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