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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Jun 29. 2024

낙인 같은, 거지 같은 꼬리표

한결같이 날 괴롭히다니, 대단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림없어!

어릴 때부터 오래된 우울증으로 인해 나의 학창 시절은 "내가 갑자기 충동적으로 죽어버리지 않을 수 있게 나 자신을 통제하는 것"에 온 힘을 썼다.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것 같은 폭탄 같은 마음을 그저 묶어두는 것에 온 에너지를 써버렸다. 약간 멍하고, 순진한 듯 멍청한 듯 애매따리 착한 성격에 학교에서 은따는 늘 내 몫이었고 내 앞에서 대놓고 비아냥거리거나 욕을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당황해서 대응하지 못하니 어느 순간 '그냥 그래도 되는 애'가 되었다. 그게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엄마가 나에게 하는 말에 비하면 타격감이 없어서 당황스럽지만 동시에 헤헤- 웃으며 잘 넘어갔던 것 같다. 나름대로는 '언성 높여 싸우지 않았으니' 잘 넘어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래. 엄마도 매일 하는 말인데, 가족도 아닌 타인이면 충분히 저렇게 말할 수도 있지. 저 사람의 인격이나 성격이 좋은 건 아니지만 뭐 이해 못 할 말도 아냐." 라며 상처를 내면화하는 것에 익숙했던 것 같다. 


그렇게 30여 년을 살다가 친구의 권유로 방문한 심리센터에서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되었고, 상담선생님들은 나에게 그런 무례를 참지 말라고 가르쳤다. 근데 정작 '무례하다.'는 것이 뭔지 몰라 상담선생님들이 '무례'란 무엇인가? 그리고 내 기분을 들여다보게 시켰던 것 같다. 내 기분은 내 것이라 사실 그 어떤 당위성 없이도 내가 그렇게 느끼면 그만이다. 근데 자꾸 내 감정을 무시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행위가 쌓이자 나는 몸도 마음도 병이든 셈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구겨진 마음을 하나하나 열심히 펼쳤다, 그리고 쉽게 구겨지지 말라고 약간의 힘을 주었다. 옛날에 와이셔츠 깃에 풀물을 먹이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하나 다림질을 했다. 상담샘들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의 애정을 받아서 흐물거리던 종이인형에서 테이프로 수제 코팅을 입힌 종이인형으로 발전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5년여 만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주변의 많은 걱정과 응원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마흐니가 코 앞인 내가 스무 살 남짓한 친구들과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내 동년배 사장의 훈계를 들으면서 이렇게 1년을 지냈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취업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나 역시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기에 젊은 친구들과의 알바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기껏해야 5-6살 많은 사장의 훈계는 정말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첫 인터뷰 때 결혼계획이 있냐고 묻기에 생각 없이 "사실 나는 이혼했다. 재혼생각은 없다. 오래 일하고 싶으니 잘 가르쳐 달라"라고 한 것부터 문제였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몇 번이고 그에게 소환당해 그의 얘기를 들어줘야 했다. 이런 것이 갑질일까? 이것이 위계차에 의한 권력인가? 싶을 정도로 친밀함의 가면을 쓰고 나를 불러냈다. 근무시간 앞뒤로 1-2시간씩 그의 일상적인 푸념과 즐거운 에피소드 등을 들어주고 응당한 '아랫사람의 리액션'을 하는 것도 내 몫인 것 같았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내 안의 경보등이 몇 번이고 울리곤 했다. "이건 돌려 말하는 거구나, 나를 지적하는 거구나." 싶은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내가 아직 병이 다 낫지 않아서 타인의 말을 왜곡하는 걸까? 싶어 수없이 반추해 봐도 그건 나를 지적하는 말이었다. 자세히 다 적기도 힘든 일들이 그렇게 있었다. 근데 나는 이렇게 겉보기에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대견해서, 누구나 이 정도는 힘든 거고 남의 돈 받는 건 원래 다 기분이 조금씩은 더럽다고 위안하고 또 다독이며 지냈다. 어느 날은 경보음이 미친 듯이 울렸지만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렇게 추운 겨울날 "왜 이렇게 힘들지? 또 약을 먹어야 하는 걸까?"라며 벤치에서 하염없이 울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울다가 연이어 터진 상황적 변화에 나는 퇴사를 말했다. 급하게 그만두겠다는 것도 절대 아니었고 두 달 남짓한 시간을 두고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그 사장은 나에게 "인생은 원래 힘든 거라며, 두 시간을 훈계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경보음이 울린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 "난 이 사람이 힘든 거였다. 일이 힘들었던 것이 아니다." 분명 그만두겠다고 했음에도 그 사장은 이것저것 예시를 들며 나를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며 훈계를 했다. 그러면서 생각할 시간을 줄 테니 일주일 뒤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지금생각하면 참 바보 같지만 그다음 날 입금되는 돈을 보고 그래, 조금만 더 해보자 그렇게 내 팔자를 꼬았던 것 같다. 그렇게 처음 그만두겠다고 했던 기한을 넘기고 심지어 두 달을 더 일했다. 업종 특성상 바쁠 수밖에 없는 기간이 있어 내 나름 배려랍시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나의 호구성을 더 뚜렷하게 부각해 줄 뿐이었다. 바쁜 텀이 지나 새로운 아르바이트생도 뽑혔고,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내 자리를 대신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기도 하여 조금 일찍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장이 계획한 인력 체인지 타이밍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훈계를 들어야 했다. 역시 호구는 호구일 뿐 자아가 있으면 안 되는 건데, 쓸데없는 배려도 가게 운영과 인력배치를 상상한 것도 어쩌면 감히 내가 월권을 한 것 같았다. 근데 정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버린 상태라 더 이상 뭘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훈계를 들으면서도 자꾸 헛구역질이 나오는 등 몸이 정말 너무 안 좋아졌기에, "죄송하고 또 그동안 감사했다."인사하고 나왔고 인수인계 내용을 톡으로 전했지만 답장은 없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원했을까? 인간적인 친밀함?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처음부터 친해질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고 위계적인 차이가 있으니 그 또한 불가했다. 그저 새로운 일을 하게 된 초심자로서 허들을 넘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었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훈계도 말도 많은 성격이지만 그래도 그중에 중요한 말들도 꽤 있어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굳이 왜 이렇게 오래 일했냐, 괜한 대미지를 입지 않았냐, 했지만 나는 딱히 실망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인건 익히 알고 있었고 기대한 바가 없어 실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한편이 좀 헛헛한 것은 있었는데 "일찍 피했어야 했다, 그때 그냥 그만뒀어야 했다." 같은 약간의 후회일 뿐 크게 상처받은 것은 없다. 


상처? 글쎄. 그냥 그동안의 불쾌감이 쌓인 것뿐이지 않을까? 처음에 말했던 페이와 다르게 지급한 것부터 불쾌감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다며 나에게 가게를 인수할 생각이 있냐고 한 것도 당황스러운 부분이었는데 심지어 가게를 인수해서 본인을 채용해 달라는 부탁을 꽤 오래 했다. 돈이 없다며 계속 거절하는 것도 불편한 일이었지만, 나중에 가게 인수하면 이런 것도 신경 써야 해~ 이러면서 인수인계하듯이 가르치는 것도 당황스럽긴 했다. 그저 그런 성격이겠거니 했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요즘 돈이 안되니 나보고 인수를 하라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싶어 그때부터 더욱 불쾌하긴 했다. 또 사사건건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것도 나에겐 힘든 일이라 "내가 이런 상사는 좀 힘들어하는구나."라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계기로 삼았지 그 정도는 뭐 스타일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간간히 나에게 일시적으로 맡겨지는 일이 있었는데, 보통 시세가 20-30만 원짜리의 일임에도 그냥 내 시급으로 퉁치는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경력이 짧으니 그럴 수 있다고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 부분은 좀 많이 불쾌했고, 불쾌감이 좀 오래갔다. 결국 올해 들어 "이런 일은 시급으로 받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요?"라고 돌려서 얘기하니 그 사람들이 말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은 수준이 달라서 시급이어도 괜찮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완전히 동문서답이었다. 다른 알바들의 대타는 모두 내가 도맡아 했는데, 정작 내가 아프다고 말할 때 "체력 관리를 했어야지. 나이 처먹고 개념이 없네? 다른 사람들이 너처럼 집에 있는 줄 알아?"라는 식의 태도는 남아있는 인간적인 어떤 무언가도 끊어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쌓인 불쾌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 나름대로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또 '호구병'이 돋지 않게 나도 내 마음을 잘 챙기면 그뿐이다. 그 사장은 지금도 앞으로도 여러 이유를 대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아르바이트생을 욕하겠지만, 정작 본인이 문제라는 건 여전히 모를 테다.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 반추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소소하게 남을 착취하면서 결과에 대한 질책도 남에게 넘기는 사람.. 솔직하게 말해. 나는 그 사장이 부러운 거지, 미운게 아니다. 어쩌면 근본부터 다른 사람. 영원히 아프지 않을 사람.. 부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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