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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Jun 30. 2024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에

호구의 역사.  (실제로 저장되어 있던 2018년의 글)

2018년 5월의 어느 날에 쓴 글이고, 약간의 편집과 수정만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사람이 있었다. 아니, 이름을 어떻게 잊겠나. 잊을 수 없는 사람이고 잊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오늘 어렴풋하게 실루엣이 비슷한 사람을 봤는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내가 트리거 없이 이 글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그 사람은 학교에서 만난 사람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도대체 왜 그랬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새로운 학교, 새로운 환경에서 꽤 밝고 재밌는 사람으로, 가능한 한 원만하게 이 무리에 잘 적응하고 싶었다. 다들 그러겠지만,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밝고 재밌고, 우울하지 않은 사람을 다들 좋아하는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보고 싶었다. 원만하게, 두루두루 좋은 평을 듣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때, 그 사람이 다가왔다. 수업시간 외에 무얼 하는지, 잠깐 커피를 마실 수 있는지 물었다. 드디어 친구가 생기는 순간이라고 생각했고 기분 좋게 답장을 하고 또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고 수업에 들어갔다. 초등학생도 아닌데 수업 전에 만나 같은 커피를 사들고 강의실에 들어간 것이 뭔가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왜인지 이곳에서는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전에는, 그러니까 교회에서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내가 힘들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좋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런 기대감과 설렘 같은 것이 있었다.


그렇게 커피 한잔 마신 뒤로, 그 사람은 종종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버스가 오지 않아 발표자료를 출력해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내가 학교에 좀 일찍 왔어! 내가 대신 뽑아줄까?"라고 선뜻 손을 내밀었고 답장으로 귀여운 이모티콘들이 왔으며 나는 복사실로 갔다. 흐뭇하게 웃었지만 시간을 날 기다려주지 않았고 나는 그 사람의 출력물을 가지고 빠듯하게 교실에 도착했다. 교실에 들어간 나에게 빨리오라며 손 짓하는 그 사람의 다른 손에는 아메리카노가 들려있었다. 수업에 늦을 까 허겁지겁 달려간 나에게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 다은이 아니면 어쩔 뻔했어. 난 커피가 너무 먹고 싶어서 오는 길에 사 왔어. 한 입 먹을래?"라고.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버스가 빨리 오거나 늦게 오거나 하는 일은 종종 생기는 일이니까 하며 넘어갔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런 일은 그 사람에게만 유독 자주 생겼다. 그래서 당연하게 그 사람의 발표자료를 출력해 가는 것은 늘 나였고, "고맙다"는 말과 커피 한 잔도 아닌, "커피 한 입"으로. 나의 노동은 상당히 기괴하고 이상한 방식으로 교환되었다. 그래, 더 솔직하게 적자. 여기서까지 감추어 무엇하겠는가. 발표자료뿐 아니라, 수업에서 읽을 논문을 출력하는 것도 전부 나의 몫이었다. 아니,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부탁하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와중에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집에 프린터기가 없으면 불편하기도 하겠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테니 번거롭겠다..라고,


그렇게 이상하고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인쇄대리자'가 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말보다는 호구라는 말이 적절하겠다. 이쯤 되면 당신은 '설마 출력한 돈은...? 안 받은 것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리라, 맞다. 나는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저 나의 노동력과 출력금액은 '커피 한 입'으로 퉁쳐졌다. 다른 사람과 빨대를 공유하지 못하는 나는, 사실 그 마저도 먹지 못한 사람이다. 호구.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세미나의 리더가 되었다. 세미나의 리더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있는 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집에 일이 생겨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나보고 대리참석을 부탁했다. 어떤 회의인지 설명도 없이 그저 선배와 밥 한번 먹는 자리이며 그냥 상투적인 자리니 밥만 얻어먹고 오면 된다고 했다.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 대답하고 플래너에 날짜와 시간을 받아 적었다.


방학이었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놀다가 학교에 갔다. 문제는 그 선배 C라는 사람이 정말 꼰대짓의 AtoZ를 모두 시전 했으며, 언어적 성폭력과 여혐발언을 거의 2시간을 했다는 것이다. 막말로 멘털이 혼미해졌으나, 회의 내용은 끝마치고 싶어 회의내용도 굳이 진행을 했다. "절대 이 사람과 커피까지 마시는 일은 없어야겠다!"라는 일념하에 식사와 회의를 모두 마쳤다. 혼미한 정신을 누구에게 하소연할 길이 없어 너털 걸음으로 집에 가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회의 잘했어? C선배 거지 같지? 근처에서 술 먹고 있는데 언니도 와." 내 귀를 의심했다. 집에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집에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일은 잘 해결된 거야?" 안부 차 물었다. 분명 내가 대신 온 회의였으니까. 그러니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아니~ 나 C선배랑 밥 먹기 싫어서 언니한테 부탁한 거야~ (웃음) 거지 같지? 여기 누구누구랑 다 같이 있어. 술 마시러 ㅁㅁ로 와." "아니야, 이것 때문에 일부러 학교에 왔어. 다음에 봐."라고 화가 나서 말했다. 그러니 A의 대답. "알았어~ 술 사주려고 했는데 학교에서 봐~"


그때 알았어야 했다 사실은. 내가 호구로 포지셔닝되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나는 그때도 "얼마나 싫었으면 그랬을 까, 나도 한번 밥 먹으니 두 번은 싫던데"라고 생각했다. 정말. 호구. 정말 호구 중의 호구였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의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와 알게 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됐다는 것이다.

 

그런 식의 호구짓은 점차 거리를 두었다. "나도 빠듯하게 도착할 것 같네~"라든가 "글쎄 내가 일정이 있었던 것 같아"라든가 하는 말로 적당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런 거리 두기는 적절히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세미나에서 "아씨~ 아무도 안 뽑아줘서 내가 발표자료 다 뽑았어! 돈 쓰기 싫은데~"라고 말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나만 거리를 두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내 새로 들어온 신입생이 그 친구 발표자료를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스스로 호구를 자처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을 자꾸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학교 다니기에 빠듯한 경제사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해해보려고 한 시간이 1년이다. 부모님이 돈이 많다며 자랑을 했지만, 그 돈은 부모님의 것이지 그 돈이 다 자식에게 귀속되는 것은 아니니 충분히 생활이 힘들 수도 있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한 시간이 있었다. "고마워~ 바로 이체해 줄게"라는 말은 한 번도 이행되지 않았지만, 왠지 이걸 계속 기억하는 내 마음이 쪼잔한 것 같았다.

 

돈과 노동이 점철된 호구짓은 적절히 1년 동안 정리가 된 것 같았으나, 나름의 거리를 둔다며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을 때 즈음 나는 그 사람에게 '감정쓰레기통'으로 재 포지셔닝 되고 있었다. 돈으로 감당 못할 호구라면 감정이라도 처리해야 하는 걸까?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묘하게 피해자로 설정된 자신의 삶을 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힘듦, 친족과의 비교의식 등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와중에도 난 또 내가 받아야 할 돈들을 잊고 그 친구의 힘듦을 이해하고 있었다. "힘들었겠다. 나 역시 그런 일이 있었어. 힘내" 그리고 힘내라는 의미로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고 케이크도 사줬다. 늘 그랬듯이 계좌 이체는 이행되지 않은 채. 

 

혹시라도 그 친구가 이 글을 읽는 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좋은 언니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어이없다. 재수 없고, 배신감 든다!"라고 말할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밥도 커피도, 케이크도 다 사주면서 온갖 감정을 다 받아주는 박다은. 나도 갖고 싶은 언니다. 그러나 그 언니가 사람이고 인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최소한 감정이라도 돌려줬어야 한다. 돈이 궁핍한 어느 시절을 지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진심 어린 감정이라도 그 좋은 언니에게 돌려줬어야 한다. 그렇게 그곳에 언제고 있는 '감정쓰레기통'으로 사용하지 말았어야 한다. 정말 '좋은 언니'였다면 말이다. 당신이 정말,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낄까? 당신의 감정과 분노, 걱정 따위를 밀어두는 쓰레기통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와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저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의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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