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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Jul 02. 2024

.... 진심이세요?

호구의 역사를 끊고, 무례함에 대처하기.

18년도 여름에 쓰다 저장해 놓은 글을 보니, 만만했던 나의 과거가 생각난다. 



오늘은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내가 왜 자꾸 이럴까. 

오래간만에 착용한 브래지어 때문일까, 화장 때문일까 고민하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왔다.

여름이라 브래지어를 벗어버릴 수 없어 원통할 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화장을 해서 답답한 것도 아니고 여름이라 속옷이 답답한 것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는 예전 직장에 들렀다가 나에게 온갖 폭언과 가스라이팅을 했던 과장님을 만났고, 

안부를 가장해 나를 깎아내리는 무례한 말을 한참 듣고 와서 분노가 올라오는 것이다.



그와 일한 기간은 5개월 남짓, 그러나 그 사람에게 온갖 가스라이팅을 당해 덕분에 나는 공황장애가 생겼고 사회적 불안 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게 되었다. 퇴사 직후에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산재판정도 대대적인 소송도 불가능했지만 내 인생을 돌이켜 데스노트에 이름 한 자 쓸 수 있다고 한다면 기꺼이 이름을 적어주고 싶은 사람이다. 아, 세트로 적어드리고 싶은 사람도 있지.


당시에 나는 석사를 수료하고 강아지를 키우며 유유자적하게 논문 주제를 정하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없어 염치 불고하고 전화했다. 혹시 일해줄 수 있냐"라는 선배의 부탁에 나는 그 선배와의 인맥이 소중해서 기꺼이 일하겠다고 했고 그 과장의 팀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쓸데없이 길고 긴 잔소리와 트집 그리고 "여기가 학교인 줄 알아?"라며 모든 업무를 비밀리에 혼자 처리해 놓고 "이것까지 내가 해야겠어? 내가 과장인데?"를 달고 살던 그 사람을 나는 어떻게든 좋아해 보고 친해져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업무의 효율도 인간관계도 제대로 못하는 어정쩡한 사람이 되어있었고 이상하게 업무는 나 혼자 다 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한 질병도 나만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기간 끝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야. 2년만 더 버텨봐."라는 말에 혹한 것도 사실이고 또 그렇게 정말 2년을 더 일했다면 나는 지금 정규직이고 뭐고 그냥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이 만큼의 진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어."


요 며칠, 만만하게 여겨졌던 호구인생을 돌아보니, 나는...  '진심을 외치는 진심 무새'였던 것 같기도 하다. 직장이든 학교든 어디든 맺어진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능하면 길게 이어나가려고 했던 것 같다. 애초에 그런 인연은 인생에 몇 번 되지 않는 것이고, 또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그런 인연을 만난다면 평생을 감사하며 서로 잘해나가면 되는 것인데 나는 이상하게 '관계'에 또 '인연'에 '진심'을 운운하며 늘 맞춰주려고 하고 만만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자처하고 또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런 무례한 사람들을 끊어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 솔직하게 말해서 '진심'이란 말은 아무래도 연애 관계에나 써야 하는 말이지 않나? 특히 연애고민을 해결해 주는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말이지. 나는 '그 사람이 너무 좋은 순수한 마음'인데, 그 사람은 그저 단순하게 '가볍게 연애할 상대'를 찾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럼 고민들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진심'이지 않나? 그리고 그런 사연들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패널들도 그렇고 시청자들도 당장 헤어지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복잡한 '진심'이란 감정을 왜 자꾸 노동 현장에서 찾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이제와 생각하면 참 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의 나는,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약국에 들르느라 10분 정도 늦을 것 같다는 내 말이 팀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갔을까? 환절기라 몸이 안 좋나 보네요. 천천히 오세요.라고 말하는 직장동료 혹은 상사의 카톡은 얼마 큼의 진심을 가지고 나에게 전송되었을까? 하며 걱정을 했다. 업무는 업무일 뿐인데, 일을 하는 과정들과 얽히는 관계들 속에서 어떤 '지향점'에 동의하는지가 너무 중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일하는 스타일이 얼마나 맞는지, 함께 협업하고자 하는 의욕과 시간할애 방식, 에너지 투입의 정도 등 일에 대한 마음의 무게와 그 모양들이 과연 얼마나 같은 지에 대해 늘 고민했던 것 같다. (예전에 쓴 글을 수정하면서) 지금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다. "굳이..? 일할 때 진심일 이유는 뭐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동시에 진짜 밥벌이 즉, 노동을 할 때 우리는 정말 감정 없이 일만 해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노동은 그저 밥벌이. 돈을 주니까 하는 일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직장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들은 왜 자꾸 서운함과 섭섭함을 같이 동반하는 것일까?라는 궁금함도 생긴다. 내가 저 직장동료와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닌데 자꾸 저 사람의 오늘 기분이 신경 쓰이고 아침에 인사할 때의 표정과 말투 눈빛이 마음에 걸리는 것일까? 사소한 고민들을 적어놓은 2018년의 박다은이 귀엽기도 하고 여전히 똑같은 2024년의 박다은이 속상하기도 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오늘도 나에게 일을 떠넘기는 저 사람의 말을 그냥 들어주고 싶다. 2018년의 박다은은 일을 대신해줬는데도 불구하고 다음 날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저 사람에게 섭섭함을 느꼈지만 2024년의 박다은은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땐 해주지만 아닐 땐 거절할 줄도 알고 또 상대방의 표정이나 감정이 나를 향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저 이 사무실에서 제일 만만하고 거절을 못 할 사람에게 귀찮은 일을 떠넘긴 것뿐일 것이고, 저 사람은 나에게 엄청난 감사를 말한다고 해도 속으로는 '할만하니까 하겠다고 했겠지.'라며 죄책감도 감사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 결국 병을 얻었고, 상담과 진료에 꽤 많은 시간과 돈을 쓰면서 "그들은 절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런 마음을 기대하는 나 역시 잘못한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직장에서 친구를 만들지 마세요, 같은 상투적인 말이 아니다. 직장에서도 좋은 인연은 얼마든지 만들 있지만 적어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절대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는 그리고 그런 마음을 기대하는 역시 잘못이라는 것이다. 진심을 준다고 진심이 돌아온다는 법은 없다. 내가 스스로 하는 노력 역시 보상받으리라 기대하면 되는 것인데 하물며 사람에게 전한 마음이 그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최대한 빨리 깨달아야 할 것 같다. 또한,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 정말 쉼 없이 기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구조적 문제니 심리적 문제니 사회문화적 어쩌고 하면서 분석하려고 들지 말고, 그저 나 자신을 지키고 그들의 무례에 정중하게 불쾌감을 드러내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 또 혹여나 듣게 되는 무례한 말과 행동을 내면화하면서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인가?"라고 진지하게 돌아보는 버릇도 고쳐야 한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내가 지키고 내 기준과 다른 (나에 대한 나쁜) 의견을 들었을 때 불쾌한 기분을 털어내고 똑같은 하루를 사는 것, 그리고 나를 향해 쏜 악의적인 화살을 피하는 것, 그런 활쏘기를 좋아하는 류의 사람들과 최대한 가까이하지 않는 것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스킬을 하나씩 하나씩 배우며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음에 감사하려고 한다.



추신:

혹시나 저와 비슷하게 무례한 사람들 때문에 고민이라면, 이 영상을 추천합니다!

https://youtu.be/usAVPAp1Lyw?si=zi2U43Rd7zxcsm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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