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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돈균 Oct 22. 2019

패턴화 된 일상, 반복 불가능한 사건으로서의 사랑ㆍ시

영화 <패터슨>에 부쳐

일상이라는 반복성


버스운전사의 삶은 시계의 움직임과 같다. 그는 늘 같은 시각에 일어나 출근하며, 그의 버스는 일정한 시간을 주기로 일정한 속도로 일정한 간격의 정류장에 멈추었다가 다음 동네로 이동한다. 마치 시계의 초침, 분침, 시침이 그렇게 각 구간을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통과하듯이. 일정한 규칙성이 반복될 때 그것은 하나의 리듬이 되는데, 이 리듬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아닐까.



주인공 페터슨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페터슨과 동일한 이름을 지닌 버스운전사다. 그는 아침마다 그를 깨우는 시계처럼 단조로운 일상의 규칙성에 속박된 생활인인 동시에 그 일상의 경계에서 관찰자로 존재한다. 생활인인 동시에 생활의 관찰자로서 그의 이중정체성은 영화 내내 페터슨의 위치를 모호하게 한다. ‘시인’의 대리표상인 주인공의 이름과 동네 이름이 같다는 것은 오늘날 일상과 예술이 지닌 일체성에 대한 노골적 암시다. 즉, 이론적으로 일상의 모든 풍경은 시가 될 수 있으며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신선과 용과 비극적 영웅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나날의 노동과 하잘 것 없는 생활의 단조로움이나 유치한 연애 스캔들을 묘사하는 형이하학이 시와 예술의 조건이 된 세계,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이름인 '현대'인 것이다.


그래도 누구나 시를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주인공 페터슨은 모든 등장인물과 일정한 심리적 간극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는 전적으로 일상에 녹아들 수도 없는 부유형 인물이다. 이러한 페터슨의 모호한 정체성은 현대시의 창시자인 보들레르가 이미 오래 전 간파한 현대예술가의 정체성에 대한 관점에 감독 짐 자무시가 수긍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독은 시인을 ‘천재’로 이해하던 낭만주의적 문학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시인은 일상인이며, 그러므로 그가 쓴 시도 일상 체험에 근거한 것이다. 버스정류장을 지나는 버스의 움직임, 요일별 에피소드가 그가 쓴 시의 리듬의 근간을 이루며, 버스 안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이미지의 중핵을 이룬다. 그러나 이 재료들이 그 자체로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페터슨은 버스운전사고 아직 정식 출판을 한 일도 없는 ‘잠재적 시인’이지만, 자신의 시가 아내의 컵케익이나 기타연주·노래 같은 ‘아마추어리즘’일 수는 없다는 자의식을 분명히 지니고 있지 않은가. 누구나 시쓰기를 시도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시인이 될 수는 없다.  



시도 사랑도 반복되지 않는다


페터슨의 시노트가 애완견에 의해 다 찢겨졌을 때 보인 아내와 페터슨의 인식 차는 이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패턴’ 무늬에 집착하는 성향을 지닌 그의 아내는 찢어진 노트를 붙여 그의 시가 ‘다시’ 컴퓨터로 옮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페터슨은 패턴화된(반복되는) 일상을 재료로 삼은 시라 하더라도, ‘작가’에 의해 시로 전환된 예술적 가공은 동일한 형태로 반복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노트 사건 이후 연인과 결별한 이웃과 페터슨이 마주치는 장면은, 페터슨-짐자무시가 사랑의 유일무이성과 시의 반복불가능성을 같은 성격의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 명의 사랑의 대상은 그 자체로 유일무이하며, 설령 이후에 그가 세상에서 또 다른 사랑의 '재료'로서 한 사람을 만나 기쁨을 느끼는 행운을 누린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실연에 깊은 상처 속에 빠져 있던 한 인간은 그때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다만 '새로' 사랑할 수 있는 매우 운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페터슨은 차라리 (지워진) 빈 노트가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본 작가의 말을 받아들인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일지라도 시의 창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늘 시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패턴화 된 시간에서조차 반복 불가능한 풍경을 포착하고 이 풍경을 유일무이한 작가적 체험으로 가공할 수 있는 ‘관점의 드라이빙’이다.

시는 바깥에 있지 않다. 내 마음이 시를 만든다. 무수한 사랑의 대상과 반복되는 삶의 계기가 생활에 존재하지만, 유일무이한 사랑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동력은 바로 나 자신이다. 모든 사랑은 그래서 엄밀히 말해 '풍경'이 아니라 '드라마(drama)'다. 그리스어로 드라마란 '행위'란 뜻이다. 행동해야, 저질러야 사랑도 발생한다. 그때 당신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 행동은 당신의 인생에서 실존을 흔드는 유일무이한 시적 사건의 새로운 도발이라는 사실을.



함돈균: 문학평론가.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지냈다. 미학적 전위와 정치성을 결합한 문학ㆍ예술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문학평론에 집중해 왔다. 시민의 일상성과 문명의 구체성에 대한 관심으로 글쓰기의 영역을 확장하여 새로운 경험적 글쓰기를 실험하고 있다.

인문정신의 공공성 실현과 시민교육에 대한 관심 때문에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을 설립했고 대표를 지냈다.  진화한 미래 교육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실천하기 위해  '공존-세계시민-생명' 가치에 기반한 사회디자이너 양성을 목표로 지구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사회디자인대학 '미지행' 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고려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예술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문학, 예술, 철학, 인문고전 등을 강의해 왔다. 문체부, 교육부, 삼성리움미술관, 삼성전자R&D센터 등 여러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인문예술 교육프로그램을 기획ㆍ자문ㆍ심의ㆍ강의해 왔다.


인문철학에세이집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이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들이 뽑은 2018ㆍ2019 여름의 책'으로 연속 선정되었으며, 『사물의 철학』이 ' 2016 문체부 책의 달 인문서'로, 스탠포드대학 폴김 교수와의 교육대담집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가 '책따세가 뽑은 2017 교육 부문 상반기 인문서'로 선정되었다. 문학평론집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예외들』『얼굴 없는 노래』, 문학연구서 『시는 아무것도 모른다』 를 출간했다. 김달진문학상 젊은평론가상, 고려대문인회 신인작가상, 서울문화재단창작기금, 대산문화재단창작기금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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