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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티켓 Apr 07. 2019

#1 <사는 세상 기억하기>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아주 가끔씩 꺼내보기 위해서

조금 쉬어갈 때 쓰려고 시작하는 글입니다. 너무 바쁘게만 살아가다 보면 놓치고 있는 것들이 보이기 마련이죠.
내가 보고 있는 풍경, 나를 둘러싼 대화, 그리고 나의 생각들, 이 모든 것들을 간직하려고 합니다. 정해놓은 주제는 없어요. 내가 살아가는 세상 이야기들이 담기게 될 테니, 되도록 다양한 주제와 글들이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가 자주 찾는 식당

왠지 모르게 순댓국을 자주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딱히 순댓국이라는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특히나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순댓국집을 찾게 되더라고요. 언젠가 한 번 "왜 순댓국 집을 찾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보았고, 아래는 그 고민에 대한 글입니다. 

큰 이유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니지만, 딱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되더랍니다. 그건 바로 위 사진 현수막에 담긴 내용에 있습니다. 

모자라면 더 드시고 국물 모자라면 더 드립니다. 많이 드시고 힘내세요


순댓국 집에 들어가면 꼭 볼 수 있는 문구, "많이 드세요"라는 말이 어느 순간 크게 와 닿았습니다. 순댓국을 자주 먹게 되는 이유는 특별히 순대를 좋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순댓국 집을 들어가게 되면 풍기는 고소한 향, 투박한 책상과 의자, 마음까지 데워주는 따뜻한 국물과 넉넉한 인심.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줄이면 "따뜻함"이라는 형용사가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어려운 말로 경험 마케팅(Experiential Marketing)이라 칭하기도 하더군요.


커피 맛이 유독 좋아서 스타벅스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커피가 아닌 그곳에서의 경험과 가치를 사기 위해 스타벅스를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저에게 순댓국 집이란, 하나의 경험을 구매하게 되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콕 집어 이것 때문에 좋다고 할 순 없어도 따지고 보면 이것, 저것 마음에 드는 것 투성이인 공간인 것이죠.


사람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한 사람이 좋은 이유를 딱 한두 가지의 이유로 말할 수는 없더라도 '그냥 마음이 그렇게 내키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이 좋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놓고 보면 그 사람의 외모, 말투, 생각 그 모든 게 마음에 드는 것일 수 있어요. 우리의 경험은 생각보다 이성이 아닌 감성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슬픈 이야기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지하철을 타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찾아보니 서울시에서는 2013년부터 임산부 배려석이라 불리는 일명 '핑크 카펫' 제도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 대한 이야기는 성별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러한 제도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리적 타당성을 따지는 글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바라보는 아주 슬픈 이야기입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타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한 여성을 보니 문득 이런 의문이 들더군요.

"과연 임산부가 맞을까?"

핑크 카펫, 즉 초기 임산부 배려석은 말 그대로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 임신 초기의 여성들을 위한 배려석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변인들의 "과연 임산부가 맞을까?"라는 의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고자 만든 자리인 것이죠. 


그런데 함부로 재단하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이 임산부가 맞는지, 앉아도 되는 사람인지 아주 자연스럽게 의심하게 되었던 것이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글은 해당 정책의 필요성 내지는 타당성부터 짚고 넘어가는 글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필요하다면 다른 글과 주제를 가지고 충분히 논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불신이 팽배한 우리 사회, 그리고 그 중심에 제가 있는 것을 목격한 슬픈 현실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얼핏 얼핏, 과연 임산부가 맞을까라는 눈초리로 한 여성을 바라보던 도중 그 여성이 쥐고 있던 조그마한 배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임산부 배지 출처: 서울신문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시 지하철과 보건소에서는 '임산부 배지'라는 것을 제공하고 있더군요. 임산부 배지를 처음 목격하게 된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임산부 배지, 이 작은 배지의 필요성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을까.
명백히 '내가 임산부 임을' 알리기 위한 신호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작고 예쁜 모양을 가지지만 더 이상 나를 의심하지 말아 달라는 처절한 몸부림은 아닐까.  


각종 언론과 또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말과 글들이 '성별 갈등'을 연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문제를 바라보기 전, 그 문제에 대한 뚜렷한 원인 내지는 핵심을 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저'는 본격적인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문제를 논하기 전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필요성'과 '해당 정책의 타당성'을 먼저 따져보았을 사람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원인'에 대한 논의를 앞서는 '현상'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과 그 중요성을 얼마큼 공감하고 갈 것인지에 대한 부분부터 출발하는 것이죠. 이번에는 여기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우리는 참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다'입니다. 


'배려'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서로를 의심하는 눈초리들, 그리고 그런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여러분. 의심하지 말아 달라는 서글픈 배지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주홍글씨. 이런 세상 서러운 배지가 필요한 사회,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배려와 희생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즉, 나에게 중요한 것을 내어주는 것만이 배려는 아닙니다. 오히려 배려는 '나에게는 덜 중요한 것이 상대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겠구나'를 인식하는 공감에서 시작됩니다. 신체 멀쩡 한 저는 하나의 지하철 좌석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임산부들에게 하나의 편안한 좌석은 '꽤나 중요한 것이겠구나'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 배려석 정책의 타당성과 더 나아가 이를 둘러싼 악의적 여성 이용자 따위의 실랑이들은 덜 중요하게 느낍니다. 임산부 배지를 처음 목격한 순간의 또렷한 기억이 남아있는 순간까지는 아마도 그럴 겁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히, 스타트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와디즈'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건 말하고 듣는 것이라, 꿈을 가진 창업가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 해보시면 제가 하는 일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해결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https://www.wadiz.kr/web/wcast/detail/6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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