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주제로 책이 될 때까지 글을 써보려고 한다. 끝을 낼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책을 시작하는 마음을 아래와 같이 써보았다(아이에게 건네는 말투로 작성):
엄마의 엄마를 회상해 보았어. 외할머니와 지낸 시간을 곰곰이 돌아보면, 별 잔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네. 엄마가 잔소리 들을 짓을 많이 안 했다기보다 기다려주셨던 것 같아. 예전에 TV를 바보상자라고 불렸거든. 저녁 7시까지만 딱 보기로 하였지만, 가끔씩은 더 보고 싶어서 그 시간이 지나도 우두커니 TV앞에 붙어 있었어. 나중에 할머니께서 그러시더라고. “저걸 그만 보라고 하고 싶은데 정말 꾹 참았다.”
왜 참으셨을까? 아니, 어떻게 참으셨을까? 할머니께서 그러시더라고. “스스로 하기를 바랐다.”라고. 그 바람에 굳게 의지하여 딸을 신뢰하는 마음으로까지 가고 입술이 들썩거려도 기어이 그 시간을 참고 기다리신 게 아닐까 싶어.
그에 비하면 엄마는 많이 부족하지. 굳이 변명을 하자면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관리할 항목이 너무 많아진 탓이랄까? 이 순간 그냥 두었다가, 또는 주의를 주지 않았다가 내 아이가 ‘괜찮은 것’이라고 여기고 계속하려는 쪽으로 가서 나중에는 관리하기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많이 불안해하는 거지. 그 모든 것은 엄마의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 새끼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지금의 엄마의 알량한 말과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 같아. 조언이나 훈계를 하지 말자 결심하면서도 엄마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올 때 속으론 참 기가 막히더라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겠지만 엄마의 불안을 관리하지 못해서 우발적으로 튀어 나는 경우도 참 많거든. 이 글을 쓰는 지금 엄마의 엄마를 가만히 품으며 생각해 본다. 다시 다짐하게 돼. 더 정리하고 숙성시켜서 너에게 건네어봐야겠다고. 너에게 꼭 전하고 싶은 삶의 원칙이나 덕목을 훗날 네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꺼내보게끔 준비해 놓으려 해. 조급한 건 일을 그르치는 것이니 한 호흡 후에 정리 한번 하고, 꼭 필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렇게 써 내려가보려고.
그렇다고 외할머니께서 엄마에게 아무런 잔소리를 안 하신 건 아니야. 그때는 잔소리었지만 지금은 정신적 유산으로 남아있는 것이 꽤 되거든. 이를 테면, ‘은근과 끈기’를 강조하셨는데, 당장 결과나 끝이 보이지 않아도 일단 참아내면 뭐든 된다는 말씀을 강조하셨거든. 그 말씀이 시간차 공격으로 나중에 더욱 깊이 와닿았지. 그 가치관이 현실로 구현된 사례가, 할머니가 밭을 가꾸시던 시절, 삽 하나로 언덕을 따라 길을 내셨어. 차가 3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너비와 길이였지. 어떠한 중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긴 시간 동안 ‘개미처럼’ 조금씩 조금씩 끈기 있게 하신 거야. 엄마로선 엄두도 못 낼 일이야. 그러고 보면 할머니는 굉장히 시간이 걸리는 일을 그 과정을 즐기면서 끝까지 하곤 하셨어. 아마도 그러한 성취가 한 번 두 번 쌓이다 보니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은 거 같아. 그런 할머니는 얼굴에 미소도 거의 늘 있었어. 삽질 한번 해서 생기는 그 작은 변화에 그렇게나 기분 좋아하시는 거야. 많은 일들에 그런 태도를 가지셨던 것 같아. “예쁘지?” “아이 기분 좋아!” 이렇게 말씀하시던 그 음성이 귓전에 들리는 것 같다.
엄마와 이모를 데리고 여행도 참 많이 다녀 주셨어. 그 당시 인터넷도 없었는데 어디서 여행 정보를 수집하셨는지 말이야.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고 싶으시구나라는 것을 어렸던 엄마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 여행을 다닐 때마다 할머니가 늘 말씀하셨어. 여행은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고. ‘누구’와 함께 과정에서 무엇을 보고 얘기하고 즐기느냐가 중요한 거라 하셨어. 그 말씀이 지금은 마치 엄마가 원래부터 해왔던 말인 것처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서 얘기되곤 해.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사고방식이지. 그때 그 말씀이 때가 되면 엄마의 마음속에 사악 퍼지며 자리 잡곤 해. 그래서 엄마도 딸에게 그렇게 전해질 말들을 여기 차곡차곡 정리해 보려고. 네가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써볼게.